플레이오프 삼성 라이온즈의 키플레이어 중 하나인 박해민. [연합뉴스] 손가락 인대를 다친 박해민(31·삼성 라이온즈)이 운동화 끈을 고쳐 맸다. 그가 다시 뛴다.
박해민은 자타공인 KBO리그 '대도(大盜)'다. 2015년부터 4년 연속 도루왕에 올랐다. 올 시즌에도 전반기를 도루 2위로 마쳐 통산 5번째 타이틀에 도전했다. 그러나 후반기 명성에 금이 갔다. 도루 성공률이 고작 44.4%(18회 시도 8회 성공)에 그쳤다. 2013년 데뷔 후 올해 전반기까지 그의 통산 도루성공률은 80.1%였다.
그의 발을 묶은 건 손이었다. 박해민은 지난 9월 12일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다 손가락을 접질렸다. 검진 결과 왼 엄지 인대 파열이 확인됐다. 복수의 병원에선 "수술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최악의 경우 시즌 아웃까지 예상했다. 한 구단 트레이너는 "인대나 힘줄 파열은 골절 다음으로 큰 부상이다.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완전 파열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해민은 부상 2주 뒤인 9월 26일 1군에 돌아왔다. 부기가 빠진 뒤 한 차례 주사 치료만 받고 그라운드를 다시 밟았다. 모두가 놀란 복귀였다.
문제는 경기력이었다. 타격과 수비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가장 자신 있던 주루에 빨간불이 켜졌다. 아픈 손가락은 그의 몸을 굳게 했다. 특히 머리부터 들어가는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할 때 손가락을 또 다칠 수 있다는 부담이 컸다. 도루 실패가 쌓이면서 자신감도 떨어졌다. 상대 견제마저 심해졌다.
박해민은 "(출루하면) 뛸 생각은 하지 않고 돌아올 생각(귀루)만 하고 있더라. 100%로 (전력을 다해) 2루까지 뛰어도 찰나의 차이로 살까 말까 하는데, 스타트가 늦어지니까 도루자(아웃)가 많아졌다"고 돌아봤다.
박해민은 반성했다. 그라운드에서 주저하는 건 그답지 않았다. 박해민은 "시즌 막바지 많이 위축됐다. 강명구 주루코치와 많이 얘기했다. 난 뛰어야 하는 선수다. 지금까지 그렇게 야구를 해 왔다. 자신감을 되찾는 게 우선"이라며 "팬들은 나이가 많아서 느려진 것 아니냐고 하는데 포스트시즌에선 그런 게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과 키움의 경기. 3회초 1사 1루 상황에서 삼성 박해민이 안타를 친 뒤 강명구 코치의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2014년의 데자뷔다. 그해 박해민은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손가락 인대를 다쳤다. 왼 약지 인대가 50% 정도 손상돼 정상적으로 경기에 나서기 어려웠다. 하지만 "팀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나가고 싶다. 주사를 맞고 (통증을) 참고서라도 뛰겠다"며 복귀했고 3차전부터 출전을 강행, 우승에 힘을 보탰다. 부상 방지 장갑을 끼고 그라운드를 달리는 그의 모습은 팀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됐다. 올 시즌 삼성이 6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멈춰 있던 그의 가을 야구 시계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또 손가락이 아프다.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는 이번에도 팀을 꿈틀거리게 한다. 정규시즌 막판, 삼성 베테랑 이원석은 "몸이 성하지 않은 데도 팀을 위해 헌신하는 주장(박해민)의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허삼영 삼성 감독도 "보시는 대로 모든 팬이 박해민을 원했고, 팀도 원했다. 그런 분위기가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반겼다.
박해민은 사자 구단의 주장이다. 공격과 주루에선 테이블 세터로 공격의 활로를 뚫는다. 수비에선 센터 라인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삼성이 플레이오프를 넘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기 위해선 그의 역할이 중요하다. 박해민은 "2014년에는 인대와 우승 반지를 바꿨다. 이번에도 인대와 우승을 바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프지만 우승 반지를 낄 수 있다면 기분 좋은 징크스가 될 것 같다"며 "(시즌 종료까지) 몇 경기 남지 않아서 손가락 상태를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얼마나 내 야구를 펼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마지막에 웃었으면 좋겠다"고 굳은 각오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