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난 친구 김성훈의 등번호(61번)를 달고 프로 데뷔 첫 승을 올린 한화 배동현. [사진 한화 이글스] 한화 신인 투수 배동현(23)은 지난 5일 대전 두산전에서 프로 데뷔 첫 승리를 따냈다. 올 시즌 15경기 만에 얻어낸 값진 수확이었다.
경기가 4-3으로 끝나고 팀 승리가 확정된 순간, 그는 자연스럽게 한 친구의 이름을 떠올렸다. 2019년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투수 김성훈(전 한화).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같은 유니폼을 입고 기쁨을 함께 나눴을 동반자다.
배동현과 김성훈은 경기고에서 함께 야구를 한 동기생이다. 배동현은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동네에 살아서 서로 이름 정도는 알고 지냈다"며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집도 가깝고 성격도 잘 맞는 걸 알게 돼 아주 친해졌다"고 떠올렸다.
고교 졸업 후엔 잠시 다른 길로 갈라졌다. 김성훈은 신인 2차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한화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직행했다. 내야수였던 배동현은 프로 입성에 실패해 한일장신대에 진학했고, 투수로 포지션을 바꿔 새 출발 했다.
그럼에도 둘의 우정은 변치 않았다. 녹록지 않은 프로 생활과 투수 전향의 어려움을 공유하면서 늘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했다. 1군 무대에 선발 등판해 공을 던지는 김성훈의 모습은 막 투수를 시작한 배동현에게 좋은 자극제가 됐다. 배동현은 "나도 꼭 프로에 가서 친구와 함께 활약하겠다"고 거듭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그 희망은 끝내 이뤄질 수 없게 됐다. 2019년 11월 23일, 청천벽력 같은 비보가 날아들었다. 마무리 캠프를 마치고 부모를 만나러 광주로 갔던 김성훈이 건물 난간에서 발을 헛디뎌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61번을 달고 한화에서 뛰다 2019년 11월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김성훈. [연합뉴스] 프로 데뷔전을 치른 지 1년 4개월 만에 유명을 달리한 친구. 앞만 보고 달려가던 배동현은 망연자실했다. 절치부심 끝에 가능성을 인정받아 2차드래프트 5라운드에서 한화의 지명을 받았지만, 친구와 함께 뛸 기회가 영영 사라진 안타까움은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운명처럼, 김성훈이 생전 몸담았던 팀에 입단하게 돼 더 그랬다.
배동현은 한화 유니폼을 입기 전 "앞으로 성훈이 몫까지 내가 잘해내겠다"고 결심했다. 김성훈의 등 번호였던 61번을 자신의 번호로 골라 유니폼 뒤에 새겼다. 배동현은 "내가 61번을 선택한 건 오직 친구 때문이다. 성훈이만 생각하면 여전히 남다른 마음이 든다"고 했다.
김성훈은 2년간 25경기에 등판했지만, 데뷔 첫 승은 올리지 못하고 하늘로 갔다. 배동현도 첫 14경기에서 승리를 따내지 못한 채 고전했다. 하지만 결국 '그 순간'이 왔다. 2021년 10월 5일, 배동현은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첫 승리를 거머쥐었다. 친구의 등 번호를 달고, 친구가 남겨 놓고 간 꿈을 함께 이뤘다.
배동현은 "(첫 승을 하고 나니) 성훈이와 함께했던 시절이 많이 생각난다. 하지만 내가 성훈이 몫까지 잘 해내려면 아직 한참 부족하다. 앞으로 더 많은 공을 던지고, 더 좋은 투수가 되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