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 야구'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KT에서는 올해도 위기에서 새 얼굴이 등장해 선수단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는 전력과 선수층의 강화로 이어졌다. 막내 구단 KT가 어느덧 가장 탄탄한 내실을 갖춘 팀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 4월 25일 수원 KT위즈파크. 롯데전을 앞둔 이강철 KT 감독은 언론 인터뷰 내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주장이자 주전 3루수 황재균이 전날 수비를 하다 코뼈 골절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개막 첫 7경기에서 5패(2승)를 당하며 주춤했던 KT는 이후 10경기에서 7승(3패)을 거두며 반격하고 있던 터였다. 상승세 국면에서 주축 선수가 이탈한 것이다.
시즌 첫 위기에서 새 얼굴이 황재균의 자리를 완벽하게 메웠다. '창단 멤버' 김병희가 그 주인공. 1군 콜업 뒤 출전한 첫 경기(4월 25일 롯데전)에서 대주자로 나선 그는 5-5였던 9회 말 2사 만루에서 롯데 마무리 투수 김원중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쳤다. 선발로 출전한 27일 SSG전에서는 5차례 출루를 기록하며 KT의 14-5 대승을 이끌었다.
김병희는 이후 꾸준히 출전 기회를 얻었다. 지난주까지 출전한 33경기에서 타율 0.294, 5홈런을 기록했다. 홈런은 팀 내 5위. KT는 황재균 부재 속에 치른 26경기에서 16승(11패)을 거두며 선전했고, 6월 16경기에서도 10승(6패)을 챙기며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그사이 새 얼굴이 한 명 더 등장했다. 외야수 김태훈이다. 2015년 2차 신인 드래프트 5라운드 지명 선수로, 올 시즌 퓨처스리그(남부) 타율 1위(0.379)를 지키며 주목받았다. 주전급 외야수 김민혁이 헤드샷 후유증으로 부상자명단에 오르며 생긴 빈자리를 메웠다.
김태훈은 8일 SSG전에서 데뷔 첫 멀티히트(2안타)를 기록했고, 11일 한화전 연장 11회 말에는 대타로 나서 3루타를 치며 장성우의 끝내기 안타 발판을 만들었다. 12일 한화전에서도 대타로 나서 신정락으로부터 스리런포를 때려냈다.
이강철 감독은 "병희는 유인구를 참아낼 줄 안다. 이전에는 직구 이외의 공을 공략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태훈이도 16일 NC전에서 포크볼을 참는 모습을 보니,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더라. 타구 속도가 워낙 빠른 선수다. 중·장거리형 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키워보고 싶다"고 평가했다. 타격 코치로 두 선수를 지도한 이숭용 KT 단장도 "누구보다 절실한 마음으로 야구를 하는 선수들이다. 더 좋은 경기력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11.22 마무리 훈련 이강철 서용빈 감독. KT 제공 김병희와 김태훈의 등장은 KT 육성 시스템이 만든 성과다. 이숭용 단장과 이강철 감독이 나란히 부임한 2018년 겨울부터 KT의 육성 기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숭용 단장은 "2군 선수들 입장에서는 1군에서 써주니까 '나도 잘하면 기회가 온다'는 동기가 생겼다. 그 영향이 크다"고 소견을 전했다.
이숭용 단장은 시스템을 강조했다. 거창한 게 아니다. 원칙 준수와 쌍방향 소통이다. 이숭용 단장은 "2군 선수를 1군에 올릴 때, 이름값이나 커리어에 연연하지 않는다. 특정 선수를 콕 집어 '이 선수는 컨디션이 어떠냐'고 확인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공백이 생긴 포지션에 적합한 선수를 2군 코칭스태프가 회의를 거쳐 추천한다. 구성원 모두 납득할 만한 선수가 기회를 얻는다. 그래야 불만이 나오지 않는다. 이를 위해 1군과 2군, 그리고 프런트는 꾸준히 소통한다"고 밝혔다.
이숭용 단장이 아울러 당부하는 가치가 창의성이다. 매뉴얼만 따르면 선수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승리와 기록에 연연하지 말고, 각자의 목표에 따라 야구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숭용 단장은 "2군은 더 많이 실패하고, 그 실패를 줄이면서 자신감을 얻는 무대"라고 설명했다.
시스템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새 얼굴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2019년에는 투수 배제성과 김민수가 유망주 딱지를 뗐다. 이강철 감독은 2018년 말 마무리캠프에서 두 투수를 선발 후보로 점찍었다. 당시 선발 투수였던 금민철과 이대은이 부상과 부진으로 이탈하자, 2군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던 두 투수에게 바로 기회를 줬다. 배제성은 10승 투수로 성장했고, 김민수는 전천후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수비에 비해 공격력이 떨어졌던 외야수 배정대는 지난해 '반쪽 선수' 오명을 털어냈다. 스윙과 타구 속도가 괄목한 만큼 향상된 그를 주전으로 활용하기 위해 KT는 간판타자 강백호를 외야수에서 1루수로 전향시키는 선택을 감행했다. 2군에서 성장세를 보여준 좌완 투수 조현우도 꾸준히 기회를 줘 1군 셋업맨으로 만들었다.
최신식 훈련장과 숙소를 갖춘 익산 구장은 '지니 야구'를 실현할 초석이 될 전망이다. KT 제공 이제 남부럽지 않은 인프라도 갖췄다. KT는 22일 퓨처스팀이 쓰고 있는 익산 야구장 내 실내훈련장과 생활관 준공 소식을 알렸다. 퓨처스팀 선수들도 최신식 훈련 시절과 숙소를 쓰며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것이다. 2군 인프라 개선은 이숭용 단장과 이강철 감독이 부임 직후 그룹에 건의한 내용이다.
스카우트부터 육성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는 생각처럼 쉽게 만들기 어렵다. '화수분 야구'로 유명한 두산이 KBO리그에서 이 시스템을 가장 잘 갖추고 있다.
'막내 구단' KT의 육성 시스템이 뿌리를 내렸다고 말하긴 아직 이르다. 그러나 분명한 건 매년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숭용 단장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나중에라도) '육성을 잘하는 팀'이라는 말은 꼭 듣고 싶다"며 "선수들, 그리고 1·2군 지도자들의 노력 덕분에 한 발씩 그 목표에 다가서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KT 그룹은 몇몇 사업·제품군에 지니(Genie)를 브랜드로 사용하고 있다. 음원 서비스, 인공지능(AI) 제품, 콘텐트 전문 기업 등이 해당한다. 지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에 등장하는 램프의 요정이다.
동화 속 마법은 현실에서 정보통신기술(ICT)과 AI다. KT가 꿈꾸는 '지니 야구'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