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의 의견이 팽팽히 충돌하는 상황에서 중재자가 나섰다. 한쪽은 큰 만족감을, 다른 한쪽은 진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는 대한축구협회(축구협회)의 중재 실패다.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에 나서는 A대표팀과 2020 도쿄올림픽 본선을 앞둔 올림픽대표팀의 선수 차출 분쟁이 일어났다. 일반적으로는 A대표팀 우선 원칙이 적용된다. 하지만 올림픽이 눈앞에 있다. 올림픽대표팀에서 A대표팀 주축 선수는 없다. 이들이 없어도 약체들과 상대하는 2차 예선 통과에는 지장이 없다고 본다. 김학범 감독은 "이번 만큼은 양보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끝내 외면했다. 그는 원두재, 이동경(이상 울산 현대), 송민규(포항 스틸러스)까지 올림픽대표팀 주축 3명을 불러들였다.
지난 3월 한·일전에서 올림픽대표팀 연령대 8명을 선발한 것과 비교하면 많이 양보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면밀히 살펴보면 그게 아니다. 한·일전에는 손흥민(토트넘), 황의조(보르도), 이재성(홀슈타인 킬) 등 유럽 주축 선수들이 합류하지 못했다. 올림픽대표팀 선수들로 이 공백을 메웠다.
이번에는 다르다. A대표팀에 핵심 유럽파가 모두 합류한다. 그리고 중국파와 K리그의 새로운 인물까지 총 28인이나 선발했다. 평소 23명보다 많은 데도 올림픽대표팀 3명을 집어넣었다. 김학범 감독은 "우리 선수 중 A대표팀에 대체 불가한 선수라면 개의치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일방통행이다. 불통과 독선의 연속이다. 벤투 감독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축구협회의 무능 탓이 더 크다. 중재를 위해 이용수 부회장과 김판곤 전력강화위원장 등 축구협회 핵심 수뇌부들이 두 감독을 만났다. 같은 사람을 만났지만 양쪽의 말이 다르다.
벤투 감독은 "항상 그렇게 해왔듯이 선수를 평가하고, 원하는 선수를 선발했다. 축구협회 내 보고체계에 따랐다. 평범하고 자연스러웠다"고 말했다.
김학범 감독은 "문화 차이를 느꼈다. 유럽에서는 올림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올림픽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차이가 컸다. 어떻게 보면 일본이 부럽다"고 털어놨다.
올림픽을 앞둔 상황은 예외적이다. 그래서 A대표팀 우선 원칙을 바꾸기 위해 축구협회가 중재를 시도했다. 그런데 변한 건 없었다. 벤투 감독의 인식을 그대로 인정했을 뿐, 도대체 무엇을 조율했다는 것인가.
축구협회는 벤투 감독 감싸기를 했을 뿐이다. 중재자로 나선 척 했으나 한쪽 편만 들었다.
사실 벤투 감독을 선임할 때부터 이런 기류가 느껴졌다. 2018년 8월 축구협회는 계획했던 감독 후보들에게 모두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중국 충칭 리판에서 경질된 벤투와 계약했다. 절박했던 축구협회의 손을 벤투 감독이 잡아준 것이다. 벤투 감독이 실패하면 축구협회도 실패하는 상황이 됐다. 시작부터 벤투 감독이 우위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