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곁들인 식사 자리에서 후배 선수들을 폭행한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의 고참 기승호가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KBL 센터에서 열린 재정위원회에 출석하고 있다. 2021.4.30 KBL 제공. 챔피언결정전을 코앞에 둔 프로농구가 음주 폭력 사건, 음주운전 사건으로 더 시끄럽다.
지난달 26일 4강 탈락이 확정된 울산 현대모비스는 이날 밤 숙소 식당에서 선수단이 회식을 했고, 이 자리에서 기승호(36)가 동료 네 명을 취한 상태에서 폭행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장재석(30)은 안와골절을 당했을 정도로 부상이 심각했다. 기승호는 지난달 30일 한국프로농구연맹(KBL) 재정위원회에 회부돼 선수 제명 중징계를 받았다. 현대모비스 구단은 제재금 1500만원을 내야 한다.
술과 관련한 사고는 또 있었다. 지난달 초 서울 삼성의 20대 초반 젊은 가드 A는 경기도 용인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게 뒤늦게 알려졌다.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고 한다.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 가드 김민구. KBL 제공 프로농구 선수의 음주운전 뉴스는 잊을 만하면 다시 나온다. 지난 2018년에는 박철호가 음주운전으로 36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고, 2017년에는 김지완이 20경기 출전 정지당했다. 2014년에는 김민구가 대표팀 차출 중 음주운전 사고를 내 큰 부상을 당했다. 당시 김민구는 출전정지 징계조차 받지 않았다.
그 이전에는 더 심했다. 프로농구가 1997년 출범했는데, 10여 년이 지나도록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 선수들이 비시즌 때 음주운전으로 신문 사회면에 이름을 올렸다.
짚고 넘어갈 것은 현재까지도 프로농구가 아직 술에 관대하다는 사실이다. 올 시즌에도 고양 오리온 선수단과 사무국 직원 일부가 방역 수칙을 어기고 체육관에서 분위기를 다잡는 회식을 했다가 제재금을 냈다. 시즌 중 “술 한잔하면서 팀워크를 다진다”는 게 그럴듯한 이유가 되는 곳이 프로농구다.
냉정하게 따지면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친 선수가 나왔을 때 구단이 사과문을 올릴 이유도 없다. 구단이 미성년자의 보호자도 아닌데 선수를 일일이 감시하고 관리할 수도 없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연맹이나 구단의 철저한 교육을 강조하는 해결 방안이라는 것도 여전히 ‘구단의 돌봄’을 강요하는 아마추어 같은 처사다. 단, 선수의 일탈이 나왔을 때는 확실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가차 없는 제재를 내려야 한다.
현대모비스 사과문. 사진=울산 현대모비스 홈페이지 그런데 한국 프로농구에서는 술 먹고 사고를 낸 선수가 나오면 먼저 구단이 공식 사과를 하고, 선수에 대한 제재를 최소화하려고 눈치를 본다.
농구에서는 몇십 년 전 스타 플레이어들이 ‘말술’을 마셨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무용담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그렇게 이어진 분위기는 아직도 확실한 단절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왜 농구는 유독 음주에 관대하다는 느낌을 줄까. 상대적으로 축구, 야구는 해외 무대를 꿈꾸고 도전할 수 있는 데 비해 농구는 더 큰 무대로 도전해 성공한 사례가 없는 ‘로컬 종목’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 선수들 스스로 더 발전할 기회를 찾지 않고 안주하면서 술을 진탕 마시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게 아닐까.
아마 이런 ‘가설’은 듣는 것만으로 농구인은 불쾌하고 자존심 상할 것이다. 그러나 연이어 터지는 ‘주폭(酒暴)’ 사건의 원인에는 전반적으로 자기관리에 느슨한 문화가 분명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 테니스 레전드 이형택(45)이 인터뷰 중 이런 말을 했다.
“대학 때까지만 해도 외국의 큰 대회에 나갈 때는 출정식을 한다며 술도 많이 마시곤 했다. 아마추어 문화였다. 그런데 ATP투어에서 경쟁하는 다른 나라 선수들을 접하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프로는 스스로 관리하고 경쟁하는 것이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술을 완전히 끊었을 때 내 몸이 달라진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로는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술을 입에 안 댔다.”
지금은 2021년 5월이다. 이제 지켜보고 또 지켜보다 지친 팬들이 프로 선수들을 향해 술 문화 자체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정작 프로라는 이름을 달고 고액 연봉을 받는 그들만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