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크고 빠르다.' 현대자동차의 첫 전용전기차 '아이오닉5'를 직접 몰아본 소감이다. 지난 19일 정식 출시된 아이오닉5는 현재까지 4만여 대가 사전 계약되며 전기차 시장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 비중이 약 2.5%인 상황에서 아이오닉5가 달성한 신기록은 전기차 대중화의 이정표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시승은 지난 21일 경기 하남 스타필드에서 남양주 화도읍까지 왕복 80㎞ 구간에서 진행됐다. 시승 모델은 72.6㎾h 배터리가 장착된 아이오닉5 롱레인지 2WD 프레스티지 모델이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를 처음으로 적용한 차량인 만큼 큰 기대를 갖고 차량을 마주했다.
큰 차체에 과거·미래 동시에 담은 디자인
가장 먼저 큰 차체가 눈길을 끈다. 아이오닉5의 제원은 전장 4640㎜, 전폭 1890㎜, 전고 1600㎜, 축거 3000㎜다. 전장은 투싼과 비슷한 수준이고 축거는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팰리세이드보다 100㎜ 더 길다. 실제로 보면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확실히 크다는 인상을 준다.
현대차 최초의 고유 모델인 '포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외부 디자인도 나무랄 때가 없다. 과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디자인에 전면등, 테일램프 등에 잘게 쪼개진 ‘파라메트릭 픽셀’이 적용돼 미래적인 감성이 동시에 느껴졌다. 후면 역시 좌우로 길게 이어진 얇은 후미등을 적용해 미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문손잡이는 내장돼 있다. 탑승할 때만 뾰족하게 튀어나온다.
내부는 깔끔 그 자체다. 불필요한 장치를 줄이고 깔끔한 구성을 통해 넓은 내부 공간감을 느끼도록 해줬다.
'유니버설 아일랜드'라는 이름의 중앙 콘솔(보관함)도 인상적이다. 기존 차량에서도 볼 수 있는 콘솔이지만, 유니버설 아일랜드는 앞뒤로 140㎜를 이동할 수 있어 사용자 마음대로 1열과 2열의 공간 활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해준다. 콘솔을 뒤로 최대한 밀면 운전석에서 조수석으로 건너가는 것도 가능하다.
12.3인치 LCD 디지털 계기판과 같은 크기의 중앙 내비게이션 디스플레이도 흰색 플라스틱으로 마감돼 넓고 밝은 느낌을 냈다.
또 운전·조수석 창문에 스크린이 있어 사이드미러를 대신한다. 양측 후방 시야를 카메라가 촬영해 차량 내부 운전석과 조수석 쪽에 마련된 화면으로 보여준다. 거울이 아닌 카메라여서 양측 시야 사각지대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화질도 좋았다.
변속기어는 핸들 오른쪽에 있다. 위아래로 돌리는 다이얼 타입이다. 주행 초기에는 어색할 수 있지만 금세 적응된다.
주행 '끝판왕'…밟는 대로 쭉쭉
달리기 성능은 발군이다. 시작부터 치고 나가는 가속력이 일품이었다. 출발과 동시에 최대 토크를 내는 전기차의 특성이 몸에 스며들었다.
특히 엔진에서 연료가 연소하는 과정을 거쳐 힘을 얻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배터리의 전기가 곧장 모터를 돌리는 구조이기에 보다 빠른 응답성을 자랑했다. 실제 제로백도 5.2초에 불과하다.
고속에서도 핸들링은 꽤 안정적이었고 상대적으로 낮은 차체 덕에 코너 구간도 무리 없이 통과했다.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기능은 운전의 피로감을 줄여줬다. 시속 100㎞ 제한 구간에서 설정 속도를 100㎞로 맞춘 뒤 달리다 시속 80㎞ 제한으로 도로 상황이 바뀌자 차량도 알아서 최고 속도를 80㎞로 낮춰서 운행했다.
정숙성도 나무랄 데 없다.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내부는 아무 소음 없이 고요했다. 주행 중 잠시 충전소에 들러 충전을 한 뒤에는 시동이 켜졌는지 모르고 다시 시동 버튼을 누를 정도였다.
충전 방법은 간단하다. 이날 서울 강동구에 자리 잡은 ‘현대 EV 스테이션 강동’에서 충전을 체험했다. 이곳에는 350㎾급 초고속 충전설비 ‘하이차저’가 총 8개 설치돼 있었다. 하이차저는 아이오닉5처럼 800V 충전 시스템을 갖춘 전기차를 충전할 때 18분 만에 10%에서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컬러 터치패널의 안내하는 대로 누구나 쉽게 충전이 가능하다. 연결선에 부분 자동화 방식이 적용돼 무게를 거의 느끼지 않고 손쉽게 충전구를 연결할 수 있었다.
충전소 도착 때 배터리 잔량은 50%였는데, 하이차저로 7분 정도 충전하자 70%로 금세 늘어났다. 충전구 내 10개의 네모 모양으로 구성된 픽셀 인디케이터가 차량 외부에서도 배터리 충전량을 알려줘 유용했다.
요금도 저렴했다. 이날 기준 충전 단가는 kWh당 299원, 총 요금은 약 4000원이었다. 현대차그룹 고객들은 하이차저 앱을 이용해 결제하면 여기서 23% 할인받을 수 있다.
단점은 '짧은 주행거리'
아이오닉5의 단점은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다. 앞서 주행거리가 유럽 기준 500㎞에 이를 것이라고 밝힌 것과는 달리 아이오닉5 롱 레인지 후륜구동 모델의 국내 인증 주행거리는 429㎞에 불과하다. 여기에 20인치 타이어를 장착하면 401㎞로, 또 사륜구동을 선택하면 370∼390㎞로 줄어든다. 비슷한 차급의 테슬라 모델Y 롱 레인지의 주행거리가 511㎞인 것과 비교된다.
현대차가 아이오닉5는 차량 외부로 일반 전원(220V)을 공급할 수 있어 '뛰어난 캠핑카'라고 강조하는데, 낮은 주행거리 탓에 '불안해서 전기를 뽑아 쓸 수 있겠나'라는 의구심 마저 든다.
그나마 실주행에서 인증 주행거리가 안정적으로 실현된다는 점은 위안거리다. 이날 현대 EV 스테이션 강동에서 70% 충전량을 가지고 약 80km를 주행한 결과, 53%가 남았다. 시승 모델의 공인 전비가 4.9km/kWh지만, 이날 경험한 전비는 7.2㎞/kWh였다.
아이오닉5의 또 다른 단점은 '올해 내가 이 차를 인도받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 있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 등 대내외적 문제 때문에 양산이 늦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현대차는 이달 아이오닉5 생산량을 목표치의 4분의 1로 줄인 바 있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보조금은 한정적인데 차량 고객 인도가 늦어져 구매를 취소하는 고객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전기차 보조금은 이미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지자체별로 보면 서울 지역 보조금은 거의 끝났다고 봐야 한다.
결국 이날 시승한 프레스티지 모델의 경우 서울시 기준 구매보조금 1200만원을 지원받지 못해 제값인 5455만원을 모두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