슛을 성공시킨 후 다리가 풀려 쓰러지는 김보미(오른쪽)를 윤예빈이 부축하고 있다. 용인=정시종 기자 용인 삼성생명과 청주 KB의 우승을 건 ‘마지막 승부’였던 15일 챔프 5차전.
4쿼터 6분 여를 남겨두고 삼성생명이 59-48로 앞서가던 상황에서 삼성생명이 공격 기회를 잡았다. 이미 11점 앞서고 있지만 자칫 방심하면 금세 따라 잡힐 수도 있는 상황. KB의 수비가 거세게 이어지자 슈팅 기회가 잘 나오지 않았고, 사이드에서 김단비가 던진 3점 슛은 림을 맞고 튀어나왔다.
바로 이때 3점 라인 근처에서 자리잡고 있던 김보미(35·176㎝)가 순식간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와 리바운드를 잡았다. 그리고 곧바로 골밑을 파고 들어 득점. 점수는 61-48로 벌어졌다. KB 벤치가 작전타임을 불렀다.
하이파이브를 하기 위해 삼성생명 윤예빈이 김보미에게 달려와서 포옹을 한 순간, 믿기 어려운 장면이 나왔다. 순간적으로 김보미의 다리가 풀려버린 것이다. 김보미가 쓰러지듯 주저앉자 당황한 윤예빈이 김보미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그 정도로 김보미는 다 쏟아부었다. 작전타임 버저 소리에 ‘잠시 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힘이 풀렸던 듯하다.
이날 경기는 양팀 선수들 모두 경기 내내 처절하게 루즈볼을 다퉜고 몸싸움을 했다. 악착 같이 공을 잡으면 다른 선수가 달려들어 다시 공을 빼앗으려 했고, 넘어지면서도 공을 지키려고 몸부림을 쳤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보미의 남다른 투혼은 삼성생명의 ‘기’를 바꿨다. 김보미가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았던 그 이전에 삼성생명의 59점째를 기록한 득점도 김보미의 손에서 나왔다. 이어진 공격에서 KB의 턴오버가 나왔고, 그 다음 공격 장면에서 김보미의 초인적인 반사신경과 연속 득점이 나왔다.
사실상 이날의 경기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간 순간이 바로 이때였다.
김보미는 이번 챔프전이 마지막임을 예고하고 ‘은퇴 전 마지막 우승’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삼성생명 구단 직원까지도 김보미에 대해 “우리 선수지만 때로는 우리가 봐도 무섭다. 상대 선수가 저렇게 처절하게 경기를 하면 무서울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김보미는 올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11.6점을 넣었다. 팀의 공격을 이끈 핵심 자원은 아니었지만, 간절함을 온몸으로 보여준 그 존재만으로 삼성생명의 분위기를 바꿨다.
삼성생명이 정규리그 4위, 정규리그 승률 5할도 안 되는 ‘언더독’으로서 우승이라는 기적을 일궈낸 배경에는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김보미의 정신력이 큰 역할을 했다.
플레이오프 때 삼성생명에 1승2패로 져서 탈락한 정규리그 우승팀 우리은행도 다른 선수가 아닌 김보미 이야기를 했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상대 선수지만 우리 선수들이 저 언니를 보고 본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