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성(26·샌디에이고)과 박효준(25·뉴욕 양키스)을 보면, 미국 진출 과정에서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둘은 야탑고 1년 선후배 사이다. 포지션도 유격수로 같다. 당시 아마추어 관계자에 따르면 "박효준의 기량이 김하성보다 더 뛰어났다"라고 한다. 김하성은 KBO리그 입단 당시에도 넥센(현 키움) 2차 3라운드 전체 29순위로 입단할 만큼 큰 기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위치'는 다르다.
3년 연속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김하성은 이번 겨울, 대형 계약을 맺고 '꿈의 무대'에 입성했다.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샌디에이고와 4년 2800만 달러(310억원)를 보장받는 계약이다. 옵션을 포함하면 최대 3200만 달러(350억원)까지 받을 수 있고, 5년째 상호 옵션까지 발동되면 최대 3900만 달러(430억원)까지 계약이 확장된다. 2023년부터 마이너리그 거부권도 있다. 김하성은 역대 KBO리그 출신 야수 중 가장 좋은 조건으로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하는 것이다.
박효준은 '1년 선배' 김하성이 프로에 입단하고 몇 개월 뒤인 2014년 7월 양키스와 계약했다. 계약금은 116만 달러(12억원). 당시 한국 아마추어 선수 신분으로 미국에 진출한 선수 중 12번째로 많은 계약금이었다. 또한 박찬호에 이어 두 번째로 양키스와 계약한 한국 선수로도 기록됐다.
박효준은 2018년부터 3년 연속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시범경기에 출전했다. 올 시즌에도 스프링캠프에 초청됐지만, 아직 빅리그 무대를 밟지 못했다. 2019년 더블A 소속으로 113경기에서 타율 0.273·3홈런·20도루를 기록했고, 지난해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2017년 불법 국제 계약 뒤 우여곡절 속에 미국으로 건너간 내야수 배지환 역시 마찬가지다. 피츠버그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배지환은 2019년 싱글A에서 타율 0.323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2021 캠프 초청 명단에도 처음으로 포함됐으나, 빅리그 데뷔까지 갈 길이 멀다. 박효준과 배지환은 병역도 해결해야 한다.
박찬호는 1994년 한국 선수 최초로 미국 무대에 진출했다. 그가 LA 다저스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본 MLB 각 구단은 한국 아마추어 선수를 예의주시했고, 계약으로 이어졌다. 서재응과 김선우·봉중근 등 유망주가 앞다투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KBO는 무분별한 해외 진출을 방지하기 위해 규정까지 만들었고, 몇 차례 수정이 거듭됐다. 2007년에는 해외파 특별 지명을 통해 해외파 선수들에게 복귀 기회를 주기도 했다.
지금까지 아마추어 신분으로 MLB 진출에 성공한 선수는 박찬호와 추신수뿐이다. 이번 겨울 연봉 조정에서 승리해 2021년 245만 달러를 받게 된 최지만(탬파베이)은 FA 계약까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김병현·최희섭 등 몇몇 선수가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박찬호·추신수·류현진(토론토)처럼 FA 대박을 터뜨리진 못했다. 빅리그조차 밟지 못한 채 KBO리그에서 데뷔해, 기대만큼 기량을 선보이지 못한 선수도 많다. 이들이 처음부터 KBO리그에서 뛰었다면, 아마 대부분 미국에서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 진출은 '꿈'을 실현하고 '부(富)'를 거머쥘 기회다.
하지만 KBO리그도 과거와 비교하면 연봉이 많이 올랐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는 아주 좋은 대우를 받는다. 1991년 한일 슈퍼게임 당시 출전 선수 연봉은 약 12배가량 차이 났지만, 2020년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의 연봉 격차는 약 3배로 줄었다.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하나, KBO리그를 거쳐 MLB에 진출한 김하성의 선택이 미국으로 직행한 박효준과 배지환의 선택보다 더 현명해 보인다. KBO리그도 꿈과 부를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만큼 좀 더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선택을 했으면 한다. 어린 나이에 낯선 곳에서 허송세월한다면 너무 안타깝다.
그러려면 학부모와 아마추어 지도자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선수가 제대로 된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왔으면 한다. 에이전트의 달콤한 얘기에 현혹되거나, 휘둘려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