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맨'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이기는 한해’를 강조하며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다. 현장을 직접 누비며 고객과의 소통에 힘쓰고 있는 정 부회장이 잇따른 참패를 만회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정 부회장은 지난 4일 신년사에서 “'지지 않는 싸움을 하겠다'는 과거의 관성을 버리고 '반드시 이기는 한해'를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임직원에게 강조한 말이지만 자신을 향한 출사표에 가깝다. 신사업 실패를 만회하고 리더십 회복을 위해 정 부회장은 반드시 이기는 한해를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 부회장은 그동안 신세계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의욕적인 행보를 보였다. 기획 단계부터 관여한 신사업을 야심차게 추진했다. 하지만 최근 4년 동안 추진했던 신사업 4개가 모두 문을 닫았다. 삐에로쑈핑·부츠·쇼앤텔·PK피코크는 모두 꽃을 피우지 못하고 1~3년 만에 사업 철수가 결정됐다.
쓰디쓴 실패를 맛본 사업은 모두 오프라인 전문점이다. 먼저 일본의 만물상 잡화점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했던 삐에로쑈핑은 적자에 허덕이며 1년 6개월 최단기에 접었다. 정 부회장이 직접 1년 동안 공을 들였고, ‘쇼핑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역발상으로 출발했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남성 패션 편집숍 쇼앤텔과 간편가정식 전문점 PK피코크도 2년을 넘기지 못했다. ‘남성들의 놀이터’ 콘셉트로 2018년 8월 오픈했던 쇼앤텔은 프리미엄 아웃렛에 입점해 남성 의류를 비롯해 악세세리·피규어 등을 판매했지만 남성 소비자에게 외면받았다.
PK피코크는 이마트의 가정간편식 자체 브랜드 피코크의 전문매장으로 2018년 선을 보였다. 1000개 이상의 피코크 제품으로 매장을 채웠지만 매출이 여의치 않자 지난해 11월 폐점했다. 이마트는 “전문점 효율성 차원에서 정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헬스앤뷰티(H&B) 스토어 부츠는 3년을 버텼다. 2017년 영국 월그린 부츠 얼라이언스와 손잡고 출범한 부츠는 고가 브랜드로 차별화 전략을 펼쳤지만 시장 안착에 실패했다. 특히 부츠는 한국형 드럭스토어 '분스'에 이어 정 부회장의 두 번째 H&B 사업이었다는 점에서 기대가 컸지만, 적자의 늪에 빠져 접어야 했다.
이제 정 부회장은 유통 분야에서 오프라인 전문점이 아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묶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했고, 리테일 시장의 온라인 전이는 최소 3년 이상 앞당겨졌다. 이에 맞춰 임직원도 변화해야 한다”며 온라인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고객과의 소통을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다. 그는 사자성어 ‘불요불굴(결코 흔들리지도 굽히지도 않고 목표를 향해 굳건하게 나아간다)’을 언급하며 “불요불굴의 유일한 대상인 고객에 대한 광적인 집중을 해야 한다”고 힘줬다.
자신부터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유튜브 '이마트LIVE' 채널 등에서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며 호응을 얻고 있다.
땅끝 마을 해남의 배추로 배추전 등을 요리하는 정 부회장의 소탈한 영상을 담은 ‘정용진 부회장이 배추밭에 간 까닭은’의 조회 수는 133만건을 찍었다. 이뿐 아니라 유튜브 스벅TV에도 깜짝 출연해 자신의 커피 취향 등의 소소한 일상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52만명이 넘는 등 재계에서 소셜미디어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경영인으로 꼽힌다. 셀카 사진·요리·애완견 등 재벌가의 일상을 공개하며 고객과 소통의 중요성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효과도 쏠쏠하다. 이마트는 2019년 2분기 299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창사 이래 첫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의 소통과 코로나19로 인한 먹거리, 생필품 수요 증가 등에 힘입어 지난해 15조5354억원의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도 정 부회장의 ‘별종’ 행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오너가가 직접 고객과 소통하고 큰 효과를 내면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괴리감도 없지 않다"며 "기업 실무진 입장에서는 이런 오너의 브랜드 파워가 부담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