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기점으로 OTT(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시장의 확대와 성장이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월트디즈니컴퍼니는 자사 OTT 플랫폼인 디즈니 플러스의 한국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그간 풍문으로만 들려오던 디즈니 플러스 한국 론칭 시기를 2021년으로 확정했다. 디즈니 플러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뿐 아니라 픽사·마블·루카스필름·21세기 폭스·내셔널지오그래픽 등에서 제작한 콘텐트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 그야말로 콘텐트 공룡의 한국 침략이 시작된 셈이다.
한동안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쿠팡의 OTT 시장 진출도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쿠팡 플레이라는 서비스명으로 이달 시범 테스트를 시작한다. 지난 7월 싱가포르 OTT 훅 소프트웨어를 인수하며 OTT 사업을 차근차근 진행해온 쿠팡은 아마존 프라임을 보유한 아마존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애플TV는 이미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다. 김지운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이선균이 출연하는 '닥터 로빈', 이민호가 출연하며 재미 작가 이진선의 소설을 드라마화한 '파친코' 등 유명 감독·작가와 접촉하며 거센 바람을 예고했다.
OTT 시장 확대가 가시화되는 동안 극장은 더욱 기울었다. 12월 들어서 극장을 찾은 총 관객수는 2만 명대로 떨어졌다. 지난 4월 이후 8개월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정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카드를 만지작 거리는 최근 분위기로 보아 아예 문을 닫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연말은 원래 극장가의 성수기지만 기대작들이 뜨겁게 경쟁하던 1년 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서는 최대 투자배급사 중 하나인 워너브러더스가 2021년 개봉하는 신작 17편을 극장 개봉과 동시에 자사 OTT 플랫폼인 HBO Max에서도 공개하기로 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전까지는 극장 개봉 후 OTT 공개까지 약 90일간의 홀드백 기간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워너브러더스는 이러한 관례를 깨고 OTT에 더 힘을 싣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워너브러더스의 결정을 두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영화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감독과 배우들이 전날까지만 해도 최고의 영화 스튜디오와 일을 했다고 생각하며 잠 들었다가, 다음날 일어나 최악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위해 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그들의 결정은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신작 '듄'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HBO Max에서 동시 공개하게 된 드니 빌뇌브 감독도 "(워너브러더스의 모회사 AT&T는) 영화관에 대한 애정도, 관객에 대한 애정도 전혀 없다"면서 "내가 영화 제작자로서 완수해야할 신뢰와 창조적 책임이 있는 것처럼, AT&T가 이 중요한 문화 매체를 보호하기 위해 책임과 존중, 배려를 가지고 신속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고 날을 세웠다.
한 유명 영화 제작자는 "일단 플랫폼이 많아지는 것 자체는 콘텐트 제작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플랫폼이 많아지면 경쟁이 생길 것이고, 경쟁이 생기면 합리적인 룰도 생긴다. 현재 국내에는 넷플릭스가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는데, 독점이 깨지면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 본다. 그러나 OTT만 성장한다면 전체 영화 시장은 위기에 처할 것이다. OTT 기업들은 결국 가입자를 유치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2시간짜리 영화보다 여러 편의 드라마가 낫다. 2시간짜리 영화 한 편만을 보려고 OTT 서비스에 가입할 이들은 많지 않다"면서 "극장이 이대로 사라져버릴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과도기를 거쳐 균형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