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54) KT 감독은 제1선발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33)의 루틴을 맞춰주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 과정이 KT의 젊은 선발투수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데스파이네는 전반기 KBO리그 선발투수 중 가장 많은 105이닝을 소화했다. 등판 수(17경기)도 가장 많았다. 그가 나흘 휴식 뒤 등판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국내 선발 투수들은 대부분 닷새를 쉬고 싶어한다. 월요일을 고정적으로 쉬는 KBO리그에서는 화요일에 등판하는 투수 정도만 나흘을 쉬고 일요일 경기에 나선다.
메이저리그(MLB)에서 선발로 뛴 외국인 투수도 KBO리그에 오면 닷새 휴식 후 등판을 선호하게 된다. 데스파이네는 다르다. 남들보다 덜 쉬면서도 경기당 6이닝, 평균 투구 수 103.2개를 기록하고 있다. 나흘 휴식 후 등판한 11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71을 기록했다. 닷새 이상 쉬고 등판한 5경기 평균자책점은 5.97로 더 높다.
데스파이네가 자신의 등판 간격을 유지하려면, 닷새를 쉬는 다른 선발 투수들과 일정이 충돌한다. 지난주 이강철 감독과 투수 파트 코치진은 선발 순번 결정을 놓고 고민을 했다. 지난달 29일 광주 KIA전이 비로 연기돼 일정이 엉켰기 때문이다. 데스파이네는 "다른 투수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내 루틴을 지키는 게 좋다"고 코칭스태프에게 전했다.
KT의 다른 외국인 투수 윌리엄 쿠에바스는 데스파이네가 루틴을 지킬 수 있도록 자신의 등판 순서를 몇 차례 양보했다. 일정이 겹치면 쿠에바스가 하루 더 쉬었다.
이 감독은 데스파이네에게 "다른 투수의 등판 일정은 신경 쓰지 말아라"고 말했다. 그는 나흘 휴식 후 지난달 30일 KIA전에 등판, 6⅔이닝 동안 1점만 내주는 호투로 6-2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뒤 그는 "내 루틴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 동료들과 코치진에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닷새 휴식 후 등판을 선호하는 투수라도 등판 간격은 일정하기를 바란다. 데스파이네가 제1선발이라고 해도, 코칭스태프는 다른 투수들의 컨디션을 함께 살필 수밖에 없다. KT는 소통과 배려로 이 문제를 풀어내고 있다.
KT 김민수(왼쪽부터)·배제성·소형준. IS포토 KT 국내 선발투수 김민수(28), 배제성(24), 소형준(19)은 경험이 부족하다. 등판 간격을 유지하는 것 이상으로 체력 안배가 중요하다고 KT 코칭스태프는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신인 소형준은 엿새 이상 쉰 뒤 나선 네 차례 등판에서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했다. 시즌 평균자책점(5.29)보다 훨씬 좋은 기록이다.
이강철 감독은 지난 6월 말, 구위가 저하된 소형준에게 2주 동안 '휴가'를 줬다. 그러나 앞으로는 열흘이 넘는 휴식기를 일부러 부여할 계획이 없다. 배제성도 체력 관리가 필요하다. 데스파이네의 루틴을 지켜주면서, 국내 투수들의 휴식을 보장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렇다고 KT 선발진이 데스파이네 중심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국내 선발진 중 누군가 불규칙한 등판 간격이 투구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면 로테이션은 재조정될 예정이다. 데스파이네는 "내 루틴을 고집하지는 않겠다"라고 수차례 말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