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이 통산 400세이브를 달성한 뒤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IS포토 역대 최고 마무리투수가 세이브 한 개의 가치를 새삼 절감했다. 세 번째 도전에 나선 오승환(38·삼성)은 앞으로도 팀 승리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오승환은 한·미·일 통산 400세이브를 달성한 16일 두산전 종료 뒤에도 담담했다. 20대 초반, 까마득한 후배들이 물세례로 축하 인사를 했을 때만 잠시 웃었다.
소감도 성취감이나 소회가 전해지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그랬다. 메이저리그 콜로라도 소속으로 2019시즌을 준비하던 중에 만난 그는 "400세이브를 하면 쑥스러울 것 같다. 그저 할 거면 빨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설렘은 없었다. 국내 무대 복귀를 앞둔 시점에서도 "빨리 떨쳐내고 싶다"고 했다. 기록은 한 선수의 발자취다. 세이브는 담대한 심장을 인정받는 매력적인 기록이다. 무의미할 리 없다. 그러나 팬과 미디어의 관심이 자신의 개인 기록에만 쏠리는 상황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듯 보였다.
마무리투수는 동료들이 승리 문턱까지 끌고 온 경기를 온전히 지켜내는 역할을 한다. 공 1개에 한 경기, 한 시즌에 쌓은 성과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오승환은 자신의 임무는 팀이 승리한 순간에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셋업맨이던 콜로라도 시절에도 기약 없는 세이브 기록 추가에 연연하지 않으며 "개인 세이브 숫자보다는 소속팀의 승리를 400번 지켜냈다는 점에는 의미를 둘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400세이브를 달성한 뒤에는 "삼성의 경기력이 좋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 기록이 나왔다.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아서 좋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다"며 자신이 뒷문 강화와 승리에 기여한 점에만 의미를 부여했다.
2020프로야구 KBO리그 두산베어스와 삼성라이온즈의 경기가 16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4대3으로 앞선 9회말 오승환이 등판, 세이브를 거두며 한미일 통산 400세이브를 달성하고 포수 강민호와 악수하고 있다. 잠실=김민규 기자 kim.mingyu@joongang.co.kr /2020.06.16/ 배움은 있었다. 그동안 399번이나 해낸 세이브가 두산전에서는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는 "400번째 세이브를 하면서 더 크게 느꼈다. '세이브 한 개를 하기가 이렇게 힘들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불펜에서 몸을 풀 때는 긴장도 컸다고. 10일 대구 키움전 13일 KT전에서 실점을 하며 흔들린 탓이다. 특유의 무표정 탓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그도 복귀 첫 세이브 상황 등판을 앞두고 생각이 많았다.
이전 세 차례 등판은 모두 8회에 나섰다. 피안타와 볼넷도 1개 이상 있었다. 내용이 좋지 않았고, 정상 컨디션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오승환은 "몸 상태, 구위 모두 100%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자신감을 결과로 증명했다. 9회 등판에서는 전혀 다른 투구를 보여줬다. 실제로 8회보다 9회에 등판하길 원했다. 체질은 여전했다.
오승환은 KBO 리그에서 최고의 마무리투수가 됐고, 일본과 미국 무대에서도 한국 야구의 위상을 높였다. 어느덧 40대를 앞둔 나이. 두 번째 삼성맨으로 걷는 길은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세 번째 도전이다.
세이브 한 개의 가치는 이전보다 무겁게 와 닿지만, 특유의 승부사 기질은 여전하다. 부침을 느낄수록 노력할 선수다. 다시 한번 진화할 수 있다. 400세이브는 오승환에게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명가 재건을 노리는 삼성은 레전드 플레이어의 존재가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