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시즌 도루왕을 차지한 KIA 박찬호. IS포토 절대 강자가 없는 '도루 춘추전국시대'가 열릴까.
지난해 개인 타이틀 최대 이변이 발생한 부분은 도루였다. 5년 연속 1위를 노렸던 박해민(30·삼성)의 아성을 무명에 가까웠던 박찬호(25·KIA)가 무너트렸다. 86.7%의 높은 도루성공률로 순도 높은 활약을 펼쳤다. 2014년 1군 데뷔 후 통산 도루가 5개에 불과했지만 1년 만에 리그를 대표하는 '대도'로 거듭나며 '타이틀 홀더'가 됐다.
도루는 2020시즌 어느 해보다 타이틀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일단 타이틀을 빼앗긴 박해민이 절치부심했다. 박해민은 지난해 최악의 부진에 빠졌고 도루도 확 줄었다. 24개로 리그 공동 7위. 성공률도 77.4%로 높지 않았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스프링캠프를 소화 중인 그는 "4년 연속(2015~18) 도루왕을 차지해 5년 연속 타이틀에 욕심은 있었지만, 기록이 깨지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팀을 위해서 뛸 수 있는 만큼 뛰다 보면 도루왕 타이틀을 다시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지켜볼 만한 선수는 정수빈(30·두산)이다. 지난해 도루 24개를 기록한 정수빈은 통산 도루가 196개다. 2011년과 2014년 각각 31개와 32개를 성공시켰을 정도로 기본적인 주루 센스가 뛰어나다. 크게 떨어진 타율과 출루율을 올린다면 도루가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시즌 뒤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취득하기 때문에 가치를 어필할 방법의 하나인 도루에 집중할 여지가 충분하다. 주루와 수비는 정수빈의 트레이드마크다.
이강철 KT 감독이 1번 타자로 점찍은 심우준(25)도 대항마다. 심우준은 KT 선수단에서 '주루가 가장 좋다'는 평가를 드는 자원이다. 지난해 도루에 눈을 뜨며 개인 최다인 24개를 기록했다. 백업으로 뛰던 2016년 도루성공률이 무려 94.4%(17/1)였다. 이 감독은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지난 시즌까지 9번 타순에 나서던 심우준을 1번 타자로 내세울 생각이다"고 했다. 1번을 맡을 경우 공격의 활로를 뚫어내야 하는 공격 첨병 역할을 해내야 한다. 도루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장타 능력도 갖췄지만 수준급 주루로 지난해 도루 2위에 이름을 올린 김하성(오른쪽). IS포토 지난해 도루 2~4위에 이름을 올린 김하성(25·키움) 고종욱(31·SK) 오지환(30·LG)도 도루왕에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특히 2019시즌 33도루를 기록했던 김하성이 흥미롭다. 2018년 8개에 불과했던 도루를 무려 4배 이상 끌어올렸는데 도루성공률도 89.2%로 평균 이상이었다. 일방장타 능력을 갖췄지만, 마음만 먹으면 뛸 수 있는 말 그대로 '호타준족'이다. 고종욱과 오지환도 빠른 발과 주루 센스를 앞세워 소속팀에서 상대 수비를 흔드는 역할을 맡는다.
2020시즌은 어느 해보다 도루의 가치가 올라갈 전망이다. 지난해 공인구 반발계수 조정 여파로 장타 생산이 확 줄어들면서 팀마다 비상이 걸렸다. 반발계수를 일정 부분 올릴지 관심을 모았지만 실행되지 않아 홈런 한파를 경험한 구단들이 작전 야구를 준비 중이다. 리그 전체 기조가 달라지면 개인 타이틀 경쟁은 더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