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막연했던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는 현실이 됐고, 이제는 더 큰 현실과 마주하게 될 시간이다.
국내에서는 영화 '기생충(PARASITE·봉준호 감독)'이 쏟아내는 기적같은 행보를 따라가기도 벅찬 상황이다. 설레발도 사치일 정도로 할리우드와 충무로의 연결고리 역할을 열 발 앞서 해내고 있는 '기생충'이다. 때문에 '기생충'에 열광하는 외신의 반응이 오히려 '내가 읽은 내용이 진짜 맞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 정도. 국적불문 '기생충' 신드롬은 현재 진행형이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종 후보 발표 후 외신들은 앞다퉈 '기생충'의 노미네이트를 축하했고, 더 나아가 수상 가능성까지 예측하기 바빴다. 막바지 오스카 레이스에서 '기생충'이 미국배우조합상(SAG) 앙상블상, 작가조합(WGA) 각본상 등 미국 4대 조합상에서 두 개의 최고상을 꿰차고, 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7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외국어영화상을 휩쓸면서 '기생충'은 여러 후보들 중에서도 단박에 수상 유력 작품으로 꼽혔다.
'기생충'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BEST PICTURE/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봉준호 감독), 감독상(BEST DIRECTOR/봉준호), 각본상(BEST ORIGINAL SCREENPLAY/봉준호·한진원), 국제장편영화상(BEST INTERNATIONAL FEATURE FILM), 미술상(BEST PRODUCTION DESIGN/이하준), 편집상(BEST EDITING/양진모)까지 총 6개 부문 후보로 지명됐다. 외신들은 국제장편영화상 포함 '기생충'의 다관왕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단순히 한국영화와 '기생충'의 역사가 아닌, 역으로 아카데미 시상의 역사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평이다. 특히 '기생충'은 현재 '1917'과 작품상·감독상 등 주요부문에서 양강구도를 띄고 있어 현지에서는 '기생충'을 이미 외국어영화와 해외로컬영화 범위를 벗어난 작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뉴욕타임스는 "시상식 전문가들은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외국영화가 되는 좋은 기회를 잡았다고 말한다. 다만 '기생충'은 아카데미 역사를 극복해야 한다. 아직 어떤 외국영화도 영어의 장벽을 무너뜨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고 아카데미의 새로운 역사가 될 '기생충'의 선전을 기원했다.
타임지는 "외국영화는 오스카 작품상을 받지 못했지만 '기생충'은 뛰어난 캐스트의 활약으로 미국배우조합상에서 앙상블상을 수상한 최초의 외국영화다. 미국배우조합상에서 두 번의 격렬한 기립박수를 받은 '기생충'은 관객들에게 널리 존경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튼토마토는 작품상을 받을 것 같은 작품, 또 받아야만 하는 작품으로 '기생충'을 찍으며 "'기생충'이 승리해야 하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 아카데미 회원들은 시상식 시즌 동안 '기생충'에 열광 중이다. 지난해 알폰소 쿠아론 '로마'가 아깝게 실패했지만, '기생충'이 아카데미서 작품상을 수상하는 최초의 외국어 영화일 것으로 확신한다"고 응원했다.
스크린랜트는 "'기생충'은 오스카 시즌 가장 화제를 모은 영화다. 올해 오스카 레이스는 다양성 부족이라는 문제를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생충'이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을 넘어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른 것은 이 영화가 얼마나 좋은 작품인지에 대한 증거다. '기생충'은 의심의 여지 없이 모든 찬사를 받을 자격 있는 영화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처럼 작품상을 수상할 지도 모른다"고 거들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기생충'이 오스카 작품상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탁월한 사회적 풍자, 물 샐 틈 없이 탄탄한 스토리 구조, 예측을 빗나가면서도 확신에 찬 장르 변형 등 다양하다. '기생충'은 고전적인 스타일을 갖춘 영화이고, 봉준호 감독이 영화의 비관적인 엔딩을 '확인사살'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명확한 결말을 좋아하는 아카데미의 경향에도 들어맞는다"고 분석했다.
버라이어티는 '1917'의 손을 들어주며 "'기생충'은 모두가 좋아하는 영화지만 지난해 '로마'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내다봤다. '로마'는 지난해 대부분의 매체가 작품상 수상작으로 예측하면서 아카데미 90년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어영화가 외국어영화상과 작품상을 모두 가져가는 사례가 될 것으로 주목받았지만 작품상의 영광은 '그린 북'에게 돌아갔다.
할리우드 전문가와 이용자 의견을 모아 시상식을 예측하는 사이트 골드더비(GoldDerby) 집계에서는 '1917'이 16.2% 확률로 작품상 레이스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고 '기생충'이 14.9% 확률로 뒤쫓고 있다.
일단 국제장편영화상은 '기생충' 수상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작품성과 흥행성, 인지도와 화제성 등 모든 부분에서 독보적이고 압도적이다. '기생충'과 함께 후보에 오른 작품은 '코퍼스 크리스티'(Corpus Christi, 폴란드), '허니랜드'(Honeyland, 북마케도니아),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프랑스), '페인 앤 글로리'(Pain and Glory, 스페인)다. '기생충'의 막강한 파워를 확인할 수 있다.
작품상 후보는 '기생충'과 함께 '포드 V 페라리'(FORD V FERRARI), '아이리시맨'(The Irishman), '조조 래빗'(Jojo Rabbit), '조커'(Joker),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 '1917',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작은 아씨들'(Little Women)이 올랐다.
그간 작품상을 수상한 '외국어 영화'는 한 편도 없다. 다양성을 외치면서도 '백인 잔치' '로컬 시상식'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생충'은 외국어 영화로는 역대 11번째로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만약 수상을 하게 된다면 한국영화와 '기생충'의 최초가 아닌, 아카데미 92년 역사의 최초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감독상은 '기생충' 봉준호 감독과 '아이리시맨'(The Irishman) 마틴 스코세이지, '조커'(Joker) 토드 필립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쿠엔틴 타란티노, '1917' 샘 멘데스 감독이 경쟁한다.
봉준호 감독이 수상하게 된다면 아시아 감독으로는 '브로크백 마운틴' '라이프 오브 파이'를 연출한 이안 감독 이후 두 번째다.
각본상은 '기생충' 봉준호 감독, 한진원 작가와 함께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 라이언 존슨,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 노아 바움백, '1917' 샘 멘데스와 크리스티 윌슨-케언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의 쿠엔틴 타란티노가 지명됐다.
각본상은 국제장편영화상 다음으로 '기생충' 수상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부문이다. 외국어 영화로는 2003년 '그녀에게'로 오스카를 거머쥔 스페인 출신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이후 두 번째, 아시아 영화로는 최초다.
선물처럼 찾아 온 미술상(BEST PRODUCTION DESIGN)은 '기생충' 이하준 미술 감독과 '아이리시맨'(The Irishman), '조조 래빗'(Jojo Rabbit), '1917',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프로덕션 디자이너들이 오스카를 노린다.
편집상(BEST EDITING)은 '기생충' 양진모 편집 감독과 '포드 V 페라리'(FORD V FERRARI), '아이리시맨'(The Irishman), '조조 래빗'(Jojo Rabbit), '조커'(Joker) 편집자가 경합한다.
한편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9일(현지시간) 미국 LA 돌비 씨어터에서 열린다. 국내에서는 10일 오전 10시부터 TV조선에서 생중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