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남자 국가대표 이우석(23·코오롱)은 한때 세상에서 제일 안타까운 선수로 꼽혔다. 그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양궁 리커브 개인전 결승에서 선배 김우진(28·청주시청)에게 져 은메달을 받았다. 당시 그는 국군체육부대 소속 이등병이었다. 금메달이면 병역 혜택으로 조기 전역할 수 있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은 김우진은 후배에 대한 미안함에 세리머니도 하지 않았다. 이우석은 지난해 10월 말 전역했다. 진천선수촌에서 최근 만난 그는 “당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우진이 형이 세리머니를 하지 않은 것도 몰랐다. 금메달 생각 때문에 경기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이우석은 오히려 그때 은메달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다고 여긴다. 그는 “2016년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래서 2018년 초 입대를 결심했다. 만약 조기 전역했다면 슬럼프는 반복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안게임 은메달 이후 더욱 마음을 다잡았다. 그 덕분일까. 지난해 6월 세계선수권에서 강채영(24·현대모비스)과 혼성전 금메달을 합작했다. 세계선수권 첫 금메달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활을 잡은 이우석은 ‘소년 신궁’으로 이름을 날렸다. 고교 1학년이던 2013년 전국체육대회 남자 고등부에서 5관왕에 올랐다. 한국 양궁을 이끌 차세대 선두 주자로 꼽혔다. 하지만 2014년 국가대표 최종평가전에서 5위에 그쳤다. 인천 아시안게임 출전권(4장)을 놓쳤다. 2016년에는 4위로 리우 올림픽 출전권(3장)을 또 놓쳤다. 그는 “진짜 신궁이었다면, 고등학생 때 큰 무대에 나갔을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 선수들은 워낙 대단해서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가전은 언제나 필사적으로 임한다”고 말했다.
남자 양궁 대표팀에는 올림픽 경험자인 김우진, 오진혁(39·현대제철) 등이 있다. 둘 다 키는 1m80㎝가 넘고 몸무게도 90㎏ 후반대의 듬직한 체격이다. 반면 이우석은 키 1m76㎝에 체중 72㎏으로 이들에 비해 왜소하다. 그는 “양궁이 정적인 운동이지만 실외에서 활을 쏠 때 몸이 흔들릴 수 있어 체격을 키우는 게 좋다. 많이 먹고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육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김우진, 오진혁보다 체격은 작지만, 이우석에게는 ‘긴 팔’이 있다. 팔이 길어 학창 시절 복싱 입문 권유도 받았다. 그는 한쪽 팔의 길이가 약 62㎝다. 그 키의 표준 한쪽 팔 길이가 58~59㎝다. 그는 “주차장 차단기에서 차를 떨어져 세워도 내리지 않고 팔을 뻗어 요금을 정산한다”며 웃었다. 그는 “키는 작아도 팔이 길어 체격이 큰 선수들이 쓰는 활과 화살을 쓴다. 또 활을 좀 더 당길 힘이 있다”고 설명했다.
올여름 도쿄에 가려면 이우석으로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3월 열리는 3차 선발전과 이후 두 차례 평가전 등 총 세 번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3차 선발전에서 8명이 살아남고, 이후 평가전을 통해 남녀 3명씩 도쿄 올림픽 출전자가 확정된다. 현재까지는 남자에선 이우석이 가장 앞서고 있다. 하지만 오진혁, 김우진 등이 맹렬하게 추격 중이다. 이우석은 “올해 목표는 하나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거다. 메달만 생각하다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또 점수를 자꾸 생각하면 헷갈린다. 그저 활을 쏘는 나에게 집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