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PARASITE·봉준호 감독)'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최종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한국영화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한국영화가 아카데미 본선 무대에 진출한 것은 '기생충'이 최초. 한국영화가 매해 노렸던 국제영화상(구 외국어영화상) 부문은 1962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이후 58년간 도전 끝에 이뤄낸 성과라 의미를 더한다.
'기생충'은 13일 오후 10시 18분(현지 오전 5시 18분) 아카데미 시상식 공식 홈페이지 및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전해진 92회 최종 후보작(자) 발표에서 작품상(BEST PICTURE/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봉준호 감독), 감독상(BEST DIRECTOR/봉준호), 각본상(BEST ORIGINAL SCREENPLAY/봉준호·한진원) 국제장편영화상(BEST INTERNATIONAL FEATURE FILM) 미술상(BEST PRODUCTION DESIGN/이하준) 편집상(BEST EDITING/양진모) 등 총 6개 부문 후보로 지명됐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후보 확정 후 여러 외신을 통해 소감을 전했다. 데드라인과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은 "꼭 '인셉션' 같다. 곧 잠에서 깨어나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 같다. 난 여전히 '기생충' 촬영장이고, 모든 장비가 부서지고, 밥차가 불에 타는 것을 보며 울부짖는 그런 상상을 하기도 한다"며 "그러나 바로 지금의 모든 것은 완벽하고, 난 매우 행복하다"는 진심을 표했다.
버라이어티 인터뷰에서는 "후보에 오르기 위해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이런 일이 일어났다. 특히 편집상과 미술상 부문에 오른 것이 기쁘다. 모두 오랜 경력을 지닌 마스터들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위해 모든 부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이 후보에 지명된 것을 보니 행복하다. 아카데미 유권자들이 동료 영화인으로 인정했다고 생각한다"고 동료들에 대한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영화 ‘기생충(PARASITE·봉준호 감독)’이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LA에서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HEPA)에서 한국영화 최초 외국어영화상(BEST MOTION PICTURE - FOREIGN LANGUAGE)을 수상했다. /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영화 ‘기생충(PARASITE)’이 지난해 5월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 사진=박세완 기자 '로컬 시상식'이라 호쾌하게 표현했지만, 한국 영화가 전 세계 영화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할리우드 메인 시상식에 입성, '로컬 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은 분명 획기적인 사건이다. 충무로는 물론, 어느 나라보다 영화라는 콘텐츠 자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국내 영화 팬들의 오랜 염원이기도 했다. 지난해 5월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한국영화 100년사에 큰 선물은 곧 전설의 시작이었다.
'기생충'에 대한 심상찮은 반응을 파악한 북미 배급사 네온(NEON)은 센스있는 오스카 캠페인을 진두지휘하며 '기생충' 신드롬을 함께 이끌었다. 지난해 10월 11일 뉴욕과 LA 3개 상영관에서 선 개봉한 '기생충'은 역대 북미 개봉 외국어 영화의 극장당 평균 매출 기록을 넘어서는 오프닝 신기록을 세우며 최대 620개까지 상영관 수를 빠르게 확장했다. 누적 매출액은 2536만8736달러(한화 약 293억원)로, 북미 개봉 역대 한국영화 흥행 1위를 찍었다.
이어진 오스카 레이스는 트로피 싹쓸이의 발판이 됐다. '기생충'은 전미 비평가위원회(외국어영화상), 뉴욕 비평가협회(외국어영화상), LA 비평가협회(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송강호), 필라델피아 비평가협회(외국어영화상), 워싱턴DC 비평가협회(작품상, 감독상, 외국어영화상), 시카고 비평가협회(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미국영화연구소(AFI 특별언급상), 전미비평가협회(NSFC 작품상, 각본상) 등에서 주요 부문 상을 휩쓸었다.
이 같은 북미 반응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77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10월 개봉 후 박스오피스에서 되게 좋은 결과를 얻었고, 사람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내줘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영화는 결국 가난한자와 부자, 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인데 미국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나라 아닌가. 논쟁적이고 뜨거운 반응이 있을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정치적 메시지나 사회적 주제도 있지만, 그것을 아주 매력적이고 관객들이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전해주는 뛰어난 배우들의 매력이 어필됐기 때문에 미국 관객들의 좋은 반응이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직언섞인 진심을 드러냈다.
또 수상 순간에는 "자막이라는 1인치의 장벽을 뛰어 넘으면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우리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시네마'"라는 임팩트 있는 수상소감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로컬'의 장벽을 뛰어넘고 당당히 오스카를 품에 안은 '기생충'을 만나게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