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꼭 단장님이랑 계약하고 기념사진 찍는 것 같네요." (류현진) "축하한다! 어디 한화 모자 없어요? 얼른 씌워주고 유니폼도 입혀버리게." (정민철 단장)
유쾌한 사제가 다시 뭉치자 어김없이 웃음꽃이 만발했다. 한화 프런트의 새 리더가 된 정민철(47) 신임 단장과 메이저리그 정상의 투수로 우뚝 선 류현진(32) 얘기다.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한화 출신 두 '전설'이 2019년의 끝자락에 다시 만났다. 일간스포츠 카메라 앞에 함께 선 두 사람은 마치 막 프리에이전트(FA) 대박 계약을 마친 단장과 특급 투수처럼 화기애애하고 다정해 보였다. 물론 이 두 사람이 실제로 다시 한솥밥을 먹으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그래도 둘은 모처럼만의 동반 인터뷰가 싫지 않은 듯 끊임없이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정 단장과 류현진의 인연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산고를 졸업하고 2006년 한화에 입단한 고졸 신인 류현진은 내로라 하는 KBO 리그의 전설적 투수들과 함께 선수생활을 시작하는 행운을 누리게 됐다. 역대 가장 성공한 왼손 투수의 교과서 송진우, '평생 주무기' 서클체인지업을 전수한 구대성 그리고 역대 오른손 최다승 투수 정민철이다.
안그래도 괴물 같은 재능을 뽐냈던 젊은 투수 류현진은 이글스 역사를 대표하는 투수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 보면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무형의 노하우까지 대거 흡수했다. 또 2007년에는 류현진이 17승, 정민철이 12승을 올리면서 한화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15년 차 원투펀치'로 활약하기도 했다. 정민철이 2009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고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동료'가 아닌 '사제' 관계가 됐지만, 워낙 격의 없고 성격이 잘 맞는 사이였기에 둘의 남다른 친분은 꾸준히 이어졌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하고 정민철이 MBC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일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2019년은 둘에게 모두 특별한 한 해였다. 정민철은 5년 만에 단장이 돼 친정팀 한화로 돌아왔고,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르고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 2위에 오르는 '대 투수'가 됐다. 7년 간 몸 담은 LA 다저스와의 계약이 끝나고 FA가 된 류현진에게 정 단장이 "지금이라도 우리 팀과 사인하면 안 되냐"고 농담한 이유다.
정 단장은 류현진과 마주 앉자마자 대뜸 "우리 2011년인가 하와이에서 스프링캠프를 치를 때가 기억 나느냐. 그때도 너는 최고 스타여서 어떤 기자분이 야간 훈련 때 '인터뷰 해달라'며 너를 쫓아다니던 기억도 난다"며 웃었고, 류현진 역시 당시가 기억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어 보였다. 그때 '소년 가장'으로 불리던 한화의 절대 에이스는 지금 '야구는 몰라도 류현진은 아는' 국민적 스타로 성장했고, 당시 불펜코치를 맡아 젊은 에이스를 격려하던 정 단장은 어느덧 한화 선수단의 운영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으며 친분을 유지해 온 두 사람이다. 정 단장이 올해 류현진이 10승 고지를 밟는 모습을 직접 현장에서 지켜 본 인연도 있다. 정 단장은 "현진이의 올스타전 선발 등판을 앞두고 미국에 다녀왔는데, 그 직전에 10승이 걸린 샌디에이고전을 직접 봤다"며 "그때 기자실에 앉아 있는데 진짜 손이 떨리더라. 거기까지 갔는데 10승을 못하면 현진이한테 '밥 먹자'는 소리도 차마 못 하고 올 뻔 했다"고 웃었다. 다행히 류현진은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해 전반기 10승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둘은 "10승 다음날 맛있는 식사를 함께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정 단장과 류현진의 남다른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잘 알려진 대로 류현진에게 아내 배지현 전 MBC 스포츠+ 아나운서를 소개해 준 사람이 바로 정 단장이다. 한국 야구 '세기의 커플'은 2년에 걸친 비밀 연애 끝에 지난해 1월 결혼했다. 지금은 그 사랑의 결실인 첫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는 중이다.
정 단장은 "현진이가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3년 내내 '아내를 소개시켜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있다"고 웃으면서 "미국에 가서 보니 역시 제수씨(배지현 전 아나운서)가 눈에 띄게 아름답다는 걸 느끼고 왔다"고 했다. 아내 얘기가 나오자마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 류현진도 "맞다. 정말 예쁘다"고 애처가 면모를 숨기지 않았다. "태명은 그냥 비밀로 남겨두겠다"면서도 "내년 5월 말에 딸이 태어날 예정이다. 아내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고, 딸이 태어나면 더 열심히 야구를 해야할 것 같다"며 또 한 명의 '딸바보' 탄생을 예고했다.
누구보다 서로의 건승을 기원하는 두 사람이다. 류현진은 '정 단장에게 내년 시즌 덕담을 해달라'고 하자 "정말 축하드린다. 일단 임기 내에 가을야구를 꼭 하셨으면 좋겠고, 파이팅하셨으면 좋겠다"며 "몇 년 뒤라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꼭 단장님이 높은 곳에 계실 때 한화로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물론 정 단장이 "지금 당장이라도 (한화로) 왔으면 좋겠다. 일단 계약서는 준비해뒀다"고 농담하자 폭소로 답변을 대신했다.
정 단장 역시 언젠가 류현진과 다시 한화에 몸담고 싶다는 희망에는 변함이 없다. "일단 대전에 새 야구장이 생길 예정이니 '앞으로 류현진이 던지게 될 마운드'를 잘 체크하도록 하겠다. 우리는 새 야구장에서 2025시즌부터 뛰게 된다"며 류현진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
류현진이 한화 유니폼을 언제 다시 입게 될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럼 2025년 새 구장 개막전에 등판할 수 있겠느냐'는 기자의 농담에 "아직 FA라 그런 얘기는 할 수 없다"고 웃어 넘겼다. 그러나 여전히 한화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 한화는 야구선수 류현진에게 '고향'과도 같은 팀이고, 그 팀에 몸 담고 있는 정 단장은 야구를 하면서 만난 가장 소중한 인연 중 하나다.
류현진은 "여러 번 말했듯이 나는 한화로 꼭 돌아올 것이고, 기왕이면 그때도 단장님과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 단장은 "그때 내가 어떤 자리에 있든, 네 마음 속에 난 언제나 '정 코치님'으로 남고 싶다"고 응수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6년 전처럼 불펜코치와 선수로 다시 재회하는 장면은 어떨까. 일간스포츠가 이같은 가설을 제시하자 류현진은 "앗, 그게 가장 좋다. 그게 최고일 것 같다"고 장난스럽게 호응했다. "그것도 괜찮다"고 말하는 정 단장의 미소가 어쩐지 난처해 보였을 뿐이다.
어쨌든 류현진이 다시 한화 유니폼을 입게 될 확률은 그가 프로 생활 내내 달았던 등번호와 마찬가지로 99%에 달한다. 한화는 여전히 99번을 그 어떤 선수에게도 주지 않고 빈자리로 남겨 놓았다. 아마도 류현진이 돌아오는 그날, 한화 선수단에는 다시 '99번 선수'가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 번호는 훗날 정민철의 '23'과 함께 한화의 영구 결번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제 관계를 뛰어 넘은 우정과 의리로 뭉친 정 단장과 류현진이 지금까지보다 더 오랫동안 동행하게 될 것 같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