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와 포수는 정말 특별한 관계다. 내 파트너였던 포수 박세혁(두산) 양의지(NC) 강민호(삼성)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두산 외국인 투수 조쉬 린드블럼(32)이 5년 만에 '코리안 드림'의 정상에 섰다. 올 시즌을 빛낸 KBO 리그 최고 선수로 당당히 뽑혔다.
린드블럼은 25일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서울 코엑스 하모니볼룸에서 열린 2019 신한은행 마이카 KBO 시상식에서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로 호명됐다. 기자단 투표 결과 880점 만점 가운데 716점을 얻어 가장 많은 점수를 획득했다. 트로피와 함께 3370만원 상당의 기아자동차 K7 프리미어 차량을 받게 됐다. NC 포수 양의지(352점)와 KIA 투수 양현종(295점)이 그 뒤를 이어 각각 2위와 3위에 올랐다.
MVP 투표는 정규시즌이 끝난 지난달 2일과 3일 올 시즌 KBO 리그를 취재한 한국야구기자회 소속 언론사와 각 지역 언론사 취재기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후보는 특정하지 않았다.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와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개인 타이틀 부문별 순위 10위 이내의 모든 선수가 후보였다.
총 110명이 투표에 참여해 1위부터 5위까지 선수 이름을 적어냈고, 1위표는 8점, 2위표는 4점, 3위표는 3점, 4위표는 2점, 5위표는 1점을 각각 가져갔다. 린드블럼은 이 가운데 1위표 27장, 2위표 17장, 3위표 5장, 5위표 1장을 얻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한국에 건너온 지 다섯 시즌 만에 이룬 성과다. 린드블럼은 2015년 롯데 유니폼을 입고 KBO 리그에 데뷔한 뒤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올렸다. 2017 시즌을 앞두고 막내 먼로의 심장병 수술로 인해 재계약하지 않고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성공적으로 치료를 마친 뒤 후반기부터 팀에 복귀해 좋은 활약을 했다.
그러나 린드블럼의 커리어가 꽃을 피운 것은 두산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2018년부터다. 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고 두산의 철벽 야수진까지 등 뒤에 거느린 린드블럼은 마침내 전성기를 열어 제쳤다. 지난해 15승 4패, 평균자책점 2.88로 활약한 데 이어 올해는 30경기에서 무려 194⅔이닝을 던지면서 20승 3패, 평균자책점 2.50을 기록해 다승과 탈삼진(189개) 승률(0.870) 타이틀을 휩쓸었다. 평균자책점 역시 2위. 두산의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이끈 일등공신 중 한 명이었다. MVP로 뽑히기에 손색 없는 성적과 결과다.
유일한 아쉬움은 린드블럼이 이 기념비적인 순간을 직접 현장에서 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상을 통해 "진심으로 영광스럽다. 다만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나와 내 아내는 현재 내 딸의 심장 수술을 집도한 의사, 간호사들과 함께 요르단에서 난민 어린이들을 치료해주는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후 한국에서의 좋은 추억을 떠올렸다. "KBO 리그에서 처음 등판했던 경기가 엊그제 같다. 벌써 5년이나 흘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한국에서 수많은 추억들을 남겼다. 좋은 때도, 안 좋은 때도 있었지만 내 목표는 항상 최고가 되는 것이었다. 나를 도와주신 수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며 그동안 도움을 줬던 이들을 차례로 호명했다.
특히 스스로 '내가 야구를 하는 유일한 이유'라며 아내 아리엘과 딸 프레슬리, 아들 팔머, 딸 먼로에게 "아내의 헌신 덕에 사랑하는 야구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었다. 또 항상 우리 아이들의 아버지일 수 있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모두 사랑한다"는 인사를 전해 감동을 안겼다.
린드블럼이 잊지 않은 사람들은 또 있다. 롯데 시절 호흡을 맞췄던 포수 강민호와 두산에서 배터리를 이뤘던 포수 양의지, 박세혁이다. 강민호와는 3년, 양의지·박세혁과는 1년씩 최고의 콤비를 자랑하면서 좋은 성적을 쌓아 올렸다. 린드블럼이 세 명을 모두 언급하면서 "투수와 포수의 관계는 내가 정말 특별하게 생각하는 관계다. 그들이 저를 이끌어주지 않았다면 올해의 성공은 없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 야구장 밖에서 도움을 준 통역들과 상대팀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한 뒤 "한국을 고향처럼 느끼도록 항상 응원해 준 팬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런 팬들 앞에서 경기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커리어의 하이라이트였다"고 했다.
사실 린드블럼이 내년 시즌에도 KBO 리그에서 다시 뛰게 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이 이미 시즌 내내 린드블럼의 피칭을 유심히 관찰했고, 실제로 영입 의사가 있는 팀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다. 한국은 미국, 일본 구단과의 '머니 게임'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MVP 수상소감이 KBO 리그에 보내는 린드블럼의 고별 인사처럼 느껴졌던 이유다.
린드블럼은 마지막으로 "나를 믿고 기회를 준 두산 구단과 내 팀원들에게 감사합니다. 이 영예를 어떻게든 함께 나누고 싶다"며 "팀원들의 도움 없이는 절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고마움을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고, 내게는 팀원보다 큰 가족의 의미"라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은 평생토록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