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들이 스크린독과점에 따른 '영화법 개정'에 목소리를 높였다. 특정 영화를 저격하자는 뜻이 아니다. 국내영화와 외화를 구분짓기 위함도 아니다. 장기전이 아닌 단기전으로, 오로지 매출을 위해 치고 빠지려는 배급과 극장들의 행태를 꼬집으며 '법개정 필요성'에 대해 성토하는 것이다.
22일 오전,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이하 반독과점영대위)는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크린 독과점을 규탄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현장에는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과 제작자, 반독과점영대위 관계자 등이 참석해 입장을 표명했다.
21일 개봉한 '겨울왕국2'는 전국 2343개 스크린을 싹쓸이하며 오프닝 스코어 60만6683명을 기록했다. 개봉 전 90%가 넘는 압도적 예매율을 기록하며 사전 예매량 110만 장을 돌파할 때부터 예견된 흥행이자 독주다.
국내외 정체성을 떠나 대작이 등장할 때마다 비난 받았던 스크린 독과점 행태는 한 작품 2000개 관 시대가 열리면서 오히려 이판사판, 일각의 비난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도도함을 뽐내고 있다. 극장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스크린 수 역시 더욱 늘어날 일만 남았다.
맨 땅에 헤딩하기, 계란으로 바위치기 수준이지만 영화인들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특히 물오른 순간 '겨울왕국2'라는 암초를 만나고, 그럼에도 '겨울왕국2'와 맞대결을 펼쳐야 하는 경쟁작 '블랙머니(정지영 감독)' 관계자들이 직접 문제제기의 발판을 마련 하면서 이전보다 주목도는 높아진 상황이다.
반독과점영대위 고문을 맡고 있기도 한 정지영 감독은 "사실 '블랙머니' 제작진들이 '나가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비난하는 댓글이 엄청 올라온다'고 하더라. '이런 기자회견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역풍 맞았다'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난 '우리가 잘못한 게 있나' 싶다"고 단언했다.
정지영 감독은 "'더 큰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도 했는데 댓글을 읽는 사람들은 상황을 모를 것이라 생각한다. 극장에서 '블랙머니'를 상영해주지 않는다고 만든 기자회견이 아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나름의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것이다. 비난을 비난하려는 마음도 없다. 다만 이런 자리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블랙머니'가 손해를 보더라도 불공정한 시장을 알리고 싶다"고 거듭 강조한 정지영 감독은 "('겨울왕국2'가 개봉한) 어제 날짜로 극장 좌석수가 90만 장에서 30만 장으로 줄었다. 스코어가 올라가고 있는데 줄었다"며 "기업만 욕할 수도 없다. 자본주의에선 법망만 피하면 된다. 국회가 할 일이다"고 지적했다.
정지영 감독은 "개정법을 계류해놓고 아직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분명 뭔가 무서워서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장 질서로는 같이 죽는다"며 "'겨울왕국2' 좋은 영화다. 좋은 영화 오랫동안 길게 보면 안 되나. 한꺼번에 다 뽑아 먹어야 하나. 피해없이 공정하게 할 수 있지 않냐"고 되물었다.
반독과점영대위 측도 "정 감독님 말씀처럼 '겨울왕국2' 좋은 영화다. 근데 꼭 그렇게 단기간 내에 스크린을 독과점하면서, 다른 영화에 피해를 주면서 매출을 올려야 하는 것인가. 50일 넘어 1000만 명을 돌파하는 작품이 있는 반면 11~12일 만에 1000만 명을 휩쓰는 영화도 있다.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정지영 감독은 스크린 독과점 관련, '기생충' 개봉 당시 봉준호 감독과 나눴던 메시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정지영 감독은 "'기생충'이 칸영화제 수상으로 대박을 터트린 것은 분명하다. 또한 봉준호 감독은 아티스트이기도 하지만 대중과의 소통에 능하기 때문에 영화를 직접 보지 않아도 '대박이다'고 진단할 수 있었다. 근데 그와 동시에 '스크린을 독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봉준호 감독한테 문자를 넣었다. '축하한다. 하지만 이번 상영에 스크린을 3분의 1을 넘지 않게 해준다면 한국영화계도 바뀌고 정책당국이 깨달을 것이다'고 했다"며 "봉 감독은 '제가 배급에 관여할 수 없는 입장이 아니라 죄송하지만 50%이상 안 넘게 노력해보겠다'는 답을 줬다"고 회상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제도적으로 세워졌으면 좋겠다'는 뜻도 전했다고. "봉 감독에게 말도 하지 않고 이야기해 미안하다"고 사과한 정지영 감독은 "봉 감독도 애쓰려고 노력했지만 안 된다는 자괴심에 슬펐을 것이다. 내가 어리석었고, 미안했다"고 토로했다.
반독과점영대위 측은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일부 특정 영화들이 나머지 대부분의 영화들을 압사시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시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승자독식 약육강식이 당연한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싶다"며 "시장이 건강한 기능을 상실해갈 때 국회와 정부는 마땅히 개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디음은 반독과점영대위 입장 전문
"영화법 개정, 규제와 지원 정책 병행하라"
지난 11월 21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겨울왕국2'가 '어벤져스: 엔드게임'(엔드게임) 등에 이어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또 일으키고 있습니다. 올해 기준으로 두 번째로 높은 상영점유율(63.0%)과 좌석점유율(70.0%)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처럼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빚은 올해의 작품은 '엔드게임' '겨울왕국2' '캡틴 마블' '극한직업' '기생충' 등이 대표적입니다. '엔드게임'의 경우 무려 80.9%(상영점유율), 85.0%(좌석점유율)을 기록했습니다.
스크린 독과점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영화 다양성 확보와 독과점 해소를 위한 영화인대책위원회'는 2017년 11월에 발족한 이래 서울영상미디어센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국회 등에서 영화 향유궈 다양성 증진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수차례 개최하며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를 향해 '영화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증진에 관한 법률) 개정 및 바람직한 정책 수립 시행을 촉구해왔습니다.
영화 다양성 증진과 독과점 해소는 법과 정책으로 풀어야 합니다. 특정 영화의 배급사와 극장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겨울왕국2' 등 관객들의 기대가 큰 작품의 제작 배급사와 극장은 의당 공격적 마케팅을 구사합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영화 향유권과 영화 다양성이 심각하게 침해받는 것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규제와 지원을 병행하는 영화법 개정이 이뤄져야 합니다.
프라으의 경우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에 해당하느 CNC(국립영화센터)는 영화법과 협약에 의거, 강력한 규제 지원 정책을 영화산업 제 분야에 걸쳐 병행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15~27개의 스크린을 보유한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한 영화가 점유할 수 있는 최다 스크린은 4개이며, 11~23개 스크린에서는 각기 다른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CNC의 규제 지원 정책에 기인합니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일부 특정 영화들이 나머지 대부분의 영화들을 압사시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시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승자독식 약육강식이 당연한 것이라면 우리들의 삶과 우리네 세상만사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진정 그런 것일까요. 시장이 건강한 기능을 상실해갈 때 국회와 정부는 마땅히 개입해야만 합니다. 영화 다양성 증진과 독과점 해소는 프랑스의 사례에서 배워야 합니다. 국회와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는 한시라도 빨리 '영화법'을 개정하고 실질적 정책을 수립 시행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