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과 일본의 합작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야말로 국경을 넘고 넘은 만남이 아닐 수 없다.
3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시네마운틴 8층 중극장에서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 카자흐스탄·일본 합작영화 '말도둑들, 시간의 길(The Horse Thieves. Roads of Time)'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 리사 타케바 감독과 배우 사말 예슬라모바, 모리야마 미라이가 참석해 부산국제영화제 방문 및 개막작 초청 소감과 영화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말도둑들, 시간의 길'은 가족을 사랑하는 남자가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사러 나갔다 살해당한 뒤 일을 그린 작품이다.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은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하다. 개막작으로 초청되는건 기대하지 않았는데 선정돼 기쁘다"고 말했다.
공동 연출자 리사 타케바 감독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리사 타케바 입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해 훈훈함을 자아낸 후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이한 기념비적인 해에 초청해 주신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영화제 측에도 감사드리고 싶다. 개인적으로 한국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진심을 표했다.
배우 사말 예슬라모바는 "초청해 주셔서 감사하다. 첫 한국 방문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며 "이번 영화는 전체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아직 완성작을 못 봤는데 개막식에서 보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리야마 미라이는 "이 작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오게 돼 좋다"며 "카자흐스탄에서 지냈던 2~3주의 시간은 보물과 같은 시간이었다. 그 결과가 이러한 형태로 평가를 받게 됐고, 부산 관객 분들에게 선보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말도둑들, 시간의 길'은 카자흐스탄 감독과 배우들이 의기투합한 영화다.
"공동 연출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은 "칸영화제에서 리사 타케바 감독을 만나게 됐다. 내가 '이런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고, 리사 타케바 감독이 흥미롭게 생각해줬다. 일본으로 돌아가 PD에게 말했다고 하더라. 이후 스카이프로 소통하며 공동연출을 준비했다. 최근 일본이 중앙아시아 나라들과 공동제작에 관심이 많은데, 이번에는 카자흐스탄이 됐다"고 설명했다.
리사 타케바 감독은 공동제작 역할 분담에 대해 언급하며 "처음엔 기본적으로 일본 배우에 대해서는 내가 디렉션을 하고, 카자흐스탄 배우는 예를란 누르무캄배토프 감독이 디렉션을 하는 것으로 정해두고 시작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혼돈이 생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난 그림의 연결성을 지켜보는 역할을 했고,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은 원래 배우 활동도 했던 경험이 있어 배우들과 가까이에서 커뮤니케이션 했다. 때에 따라, 상황에 맞게 대응했다"고 회상했다.
두 감독은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몽환적 느낌과 꿈, 그리고 엔딩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 시나리오에는 넣어 놓지 않았던 엔딩이다. 작업 과정에서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보게 됐는데, 그 그림이 주는 이미지와 우리 영화가 맞아 떨어지는 지점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엔딩이었지만, 이미지상으로 겹치는 부분이 있어 최종 결정했다"고 꼬집었다.
리사 타케바 감독은 "처음 일본 측과 카자흐스탄 측이 시나리오 개발을 해 나갈 때 일본에서는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것으로 엔딩을 하지는 말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은 소년의 시각과 시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또 '가족은 항상 함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와 동시에 '여러 사회적 사정으로 인해 가족이 해체될 수 있다'는 메시지도 담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이 앞서 말한 '촬영 중 변경'에 대해서는 "카자흐스탄의 약점이자 굉장한 장점이라 생각한다. 유연성을 보여준다"며 "일본에서는 준비에 준비를 거듭해서 치밀하게 완성해 나가는 작업을 선호한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은 달랐다. 촬영 때마다 변화해 나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유목민족의 경이로움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솔직한 생각을 드러냈다.
이 같은 변화는 배우들에게도 적용됐다. 카자흐스탄 언어로 연기해야 했던 일본 배우 모리야마 미라이는 시시때때로 바뀌는 대사에 때마다 적응해야 했고, 대응해야 했다.
모리야마 미라이는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어느정도 인물에 대한 설정과 해석이 있었는데, 촬영이 시작된 후에는 현장 상황들이 수시로 바뀌었다. 내가 당시 어떤 해석을 하고 있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며 미소 짓더니 "카자흐스탄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연기했기 때문에 대본을 그대로 외웠다. 애드리브는 전혀 못했고, 시나리오 대사에만 충실했다"고 토로했다.
이에 리사 타케바 감독은 "모리야마 미라이는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연기를 해야 했다. 현장에 대사 디렉션을 담당하는 분이 계셨지만 신이 바뀔 때마다 대사도 바뀌었다. 특히 모리야마 미라이는 승마 등 소화해야 할 연기가 정말 많았는데, 때마다 훌륭하게 대응했다. 일본 최고의 배우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흡족해 했다.
이와 함께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은 "3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수상한 것이 감독 활동에 어떤 영향력을 끼쳤냐"고 묻자 "많은 의미에서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당시 받았던 상은 이후 작업에 원동력이 됐다. 다양한 관점을 가진 관객들에게 내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감사해했다.
마지막으로 "어느 국가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는 "특정 관객층을 대상으로 제작한 작품은 아니다. 영화의 형상 자체가 두 국가와 관련없는 인물들에게도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자신했다.
한편 3일부터 12일까지 부산 일대에서 치러지는 24회 부산국제영화제는 85개국 303편의 영화를 상영하며, 개막작은 '말도둑들, 시간의 길', 폐막작은 '윤희에게(임대형 감독)'가 선정됐다. 개막식 사회는 배우 정우성·이하늬가 맡아 영화의 바다로 항해를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