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롯데 대표 이사. 롯데 제공 김종인(56) 롯데 대표이사가 절대 잊지 않아야 할 원칙이 있다. 현장 존중, 그리고 지원 매진이다.
다수 구단의 대표가 모기업에서 발령을 받아 부임한 비야구인이자 기업인이다. 한 때 야구단은 임원 인사에서 밀린 인사의 마지막 행선지로 여겨졌다. 내부에서도 그저 거쳐 가는 '손님'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최근 몇몇 구단은 설득력 있는 인사를 했다. 한 구단은 그룹에서도 인정받은 유력 인사가 자리했다. 야구단을 경험하고 승진한 뒤 요직으로 향했다는 후문이다. 단장이나 사업본부장으로 야구단 실무 능력을 검증받은 뒤 전체 수장으로 승진한 인물도 있다. 무엇보다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낸 팀의 대표는 자리 보존이 무난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내부 인원의 관리 문제로 물러난 사례도 있지만 대체로 롱런 했다.
성민규 롯데 단장과 공필성 롯데 감독. 연합뉴스 롯데 야구단 대표의 선임과 행보는 답보 상태다. 2000년대 전·현직 롯데 야구단 대표 이사는 총 8명. 전임 7명의 평균 재임 기간은 2년 4개월에 불과하다. 감독, 단장만큼이나 자주 바뀌었다.
비전과 방향성이 명확하고 정책에 지속성이 있어야 내실 있는 도약을 노릴 수 있다. 야구단뿐 아니라 모든 조직이 그렇다. 롯데 그룹은 2008년부터 잠시 맞이한 부흥기 이후에는 대표의 자리 보존을 세 시즌 이상 기다려주지 않았다. 기업의 정기 인사에 맞춰 단행된다는 인식을 줬다.
롯데에선 야구단 대표가 획기적인 구단 운영 방침을 만들어 실현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외부에는 존재감이 미미한 대표도 많았다. 그러나 3년이 멀다 하고 대표가 바뀌면 조직 내 인원의 행동과 자세 그리고 마음가짐에는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롯데는 혁신을 외친다. 그러나 이미 가장 중요한 인사 관리부터 구태다.
대체로 야구단은 대표 이사들이 원한 행선지가 아니었을 터. 다음 단계, 다른 영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실적을 내야 했다. 몇몇 대표는 과욕을 부렸고 부작용이 빈번했다. 2013년 2월에 부임한 최하진 10대 대표가 대표적이다.
CCTV 사찰 사태로 대변되는 인물이다. 그가 부임한 뒤 세이버메트릭스가 근거라며 현장에 기용이나 작전을 지시하는 월권을 한 정황이 확인됐다. 당시 사령탑이던 김시진 감독의 수족인 메인 파트 코치진을 2군에 내리려고 하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선수단과 현장 지도자, 프런트의 오해와 불신이 커졌고 선수단의 집단 행동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프런트가 원정 숙소 CCTV 자료를 확보해 선수들을 통제하려고 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해외 토픽감이기도 한, 한국 스포츠 프런트 사상 최악의 사건중 하나다.
부진한 성적뿐 아니라 야구팬에 피로감을 줬다. 프런트 측 인사로 오해받은 코치가 퇴진하기도 했다. 국회의원이 관련 논란을 다루며 프런트와 선수단 모두에게 비난의 표적이 됐다. 최 전 대표가 이 모든 상황을 주도했다고 알려졌다. 변명은 통하지 않았고 결국 스스로 물러났다. 대표의 과욕이 초래한 참담한 말로다. 선수단의 행보가 지지받은 건 아니다. 그러나 한국 야구 역사를 대표하는 '프런트 야구'의 폐해로 남았다.
이후 부임한 이창원 대표는 상대적으로 현장을 존중하려고 했다. 그룹 정책본부홍보팀에서 내려온 '홍보맨'으로 주목받았다. 실제로 팬과 선수, 언론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여줬다. 취임식에서 "프런트는 현장을 지원하는 역할에만 충실 해야 한다"는 소신을 전하기도 했다. "야구 전문가는 현장에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2015시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뒤 행보와 입장이 달라졌다. 일단 계약 1년 차를 보낸 이종운 당시 감독을 경질하고 조원우 전 감독을 선임했다. "일체감이 부족한 팀 분위기를 쇄신하고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신임 감독을 모시게 됐다"고 설명했다.
의사 결정은 고유 권한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현장 의견만큼이나 프런트 역할도 있어야 한다"며 "코치 선임에도 프런트 의지가 반영될 것이다"고 했다. 1년 전과는 전혀 다른 행보가 예상되는 입장 차이였다. 롯데 감독은 '휴대폰 약정 기간보다 짧다'는 비아냥도 이 시기부터 시작됐다. 롯데는 2016시즌에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이 전 대표는 그해 11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을 했다. 이 과정에서 소문도 많았다. 꽤 불미스러운 이야기 였고, 부하 직원이 이를 주도 했다는 말도 들려왔다.
2010년 2월부터 대표가 된 장병수 대표는 현재 재평가되고 있다. 그가 리그 운영과 관련해 주창한 내용들이 뒤늦게 설득력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너무 호전적인 행보로 구단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며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반면 이창원 대표 후임으로 자리한 김창락 전 대표는 외부로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았다. 야구 관계자를 몇 차례 보고도 초면인 것처럼 대하는 인물이었다. 당시 구단 운영은 거의 이윤원 전 단장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김 전 대표가 부임한 뒤 맞은 첫 시즌(2017)에 롯데는 다섯 시즌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일련의 롯데 대표 '잔혹사'를 보면 김종인 현 대표가 지향해야 할 길이 보인다. 대표의 과욕과 월권은 추락으로 이어진다.
김 대표는 부임 초기에는 김창락 대표와 비슷한 행보를 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롯데의 성적이 하위권으로 고착된 뒤 움직임이 있었다. 양상문 전 감독과 이윤원 전 단장의 사퇴도 무관하지 않다는 설((說)이다.
연합뉴스 제공 그는 현재 철수한 롯데마트의 중국 진출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지난해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로 사업을 확장하는 행보를 주도했다. 조직원에게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하는 리더이기도 했다고. 해외를 주목하고 개척하던 김 대표의 기업인 시절을 이력을 감안하면 해외 스카우트 출신을 단장으로 선임한 선택이 놀랍지 않다. 이 묘한 승부수는 일단 기존 프런트를 적폐로 보고 있는 롯데팬에게 기대감을 줬다.
그러나 야구단 운영은 숫자와 이론으로 하는 게 아니다. 파격이라는 미명 아래 정석을 벗어난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다른 구단은 혁신을 추구하지 않아서 수 년 동안 야구단에서 실무를 경험한 인물을 대표로 내세운 게 아니다. 아직 한 시즌도 치르지 않은 대표 이사의 광폭 행보는 우려를 사기에 충분하다.
최하진 전 대표도 부임 직후 선수단에 태블릿 PC를 제공하고, 신문고 설치와 상담 전문 트레이너 고용을 약속했다. 겉으로 내세운 행보와 실체는 크게 달랐다. 젊은 엘리트로 알려진 김종인 대표가 야구단에 온 배경을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야구단을 최종 목적지로 생각할리 없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정책 지속성은 이전과 다르지 않은데 파격만 추구하다가는 내실 강화가 이어질 수 없다.
신동인 전 구단주 시절부터 롯데 고위층의 월권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좋은 성적이 나기도 했지만 피로감을 주는 체질은 개선되지 않았다. 현 대표는 주어진 권한에 스스로 선을 긋고 현장을 존중해야 한다. 전임들의 전철을 밟지 않는 행보가 필요하다. 현재 다수 대표 이사가 묵묵히 현장을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