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여 채의 전통 한옥으로 이루어진 한옥마을] 우리나라의 옛 마을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십중팔구 검정의 기와가 곡선을 이루며 만들어내는 지붕을 떠올릴 것이다. 한옥은 홀로 우뚝 솟아 있으면 꼿꼿한 선비의 기품을 드러내고, 여러 채가 모여 있으면 웅장한 분위기를 풍겨내는 우리나라 전통과 역사를 나타내는 한 가지로 자리하고 있다.
이런 한옥들을 모아 특정 지역마다 ‘한옥마을’을 형성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곳으로 전라북도 전주를 빼놓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전주에서는 우리네 전통을 잇고 있는 민속 공연과 음식으로 대표되는 전라도의 맛까지 두루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전주는 1석3조의 여행지가 아닐 수 없었다.
역사 품은 전주의 ‘곳곳’
서울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1시간 30분 만에 전주역에 도착했다. 정체가 없는 기차여행이니, 서울에서 꽤 가까운 전라도가 돼버린 느낌이었다. [700여 채의 전통 한옥으로 이루어진 한옥마을] 전주역에 내려 바로 역 앞에서 택시를 이용하면 ‘전주 한옥마을’까지 10여 분이다. 무더위가 기승이던 지난 14일 전주는 여전히 뜨거운 지역 관광지였다.
‘전주한옥마을’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에 있고, 700여 채의 전통 한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성곽을 없애고 일본 상인들이 성 안으로 들어오자 이에 대한 반발로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렇게 형성된 전주한옥마을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며, 대한민국에서 꼭 한 번 가볼만한 곳으로 떠올랐다.
전주 토박이라는 김 씨는 “한옥마을에는 여전히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많다”며 “요즘에도 젊은 관광인구가 계속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 워낙 교통이 잘 돼있다보니 숙박하는 사람들보다는 당일치기로 여행하고 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요즘 한옥 게스트하우스 같은 숙박업소가 장사가 안된다고 하더라”며 귀띔했다. [다양한 먹을거리들이 모인 한옥마을 거리] 한옥마을의 중심부에는 주로 먹거리들이 즐비하다. 길거리야, 문어꼬치 등 이미 유명해진 길거리 음식들부터 전주에서 맛이 배가될 것같은 비빔밥·떡갈비 등 식사까지 다양하다.
천천히 돌아보기 좋은 곳으로 ‘전주 향교’, ‘경기전’, ‘전동성당’ 등도 있다.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한 곳인 경기전] 한옥마을 내에 위치한 경기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꼭 들러야 할 필수 코스다.
이 곳은 태종 10년인 1410년 창건돼 경내에 국보 제317호인 이성계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모신 본전과 전주 이씨 시조인 이한공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 조선의 여러 실록을 보관했던 전주사고, 예종의 탯줄을 묻은 태실 등의 유적이 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 역시 가장 먼저 발길을 사로잡은 곳은 ‘조선태조어진’. 태조어진은 평상시 집무복인 익선관과 청룡포 차림의 전신상이다. 키가 크고 몸이 곧바르며, 귀가 아주 컸다는 태조의 모습 그대로가 담겨있다.
전주는 태조의 본향으로, 그 선대들이 살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기념해 태조어진이 전주에 봉안됐고, 1972년 구본이 낡아 조중묵을 비롯해 10인의 화사가 새로 모사해 경기정전에 모셨단다.
태조어진 외에도 경기전에서 이어진 ‘어진박물관’에서 역대 왕들의 어진을 만날 수 있다. 현존하는 영조, 철종의 어진과, 사진이 남아있거나 표준 영정으로 제작된 왕들의 모습들도 모셔져 있다.
드라마 ‘성균관 유생들’의 촬영장소로 나오면서 더 유명해진 ‘전주 향교’도 둘러봐야 할 곳이다. 이 곳은 고려 말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지만 요즘에는 싱그러운 초록의 정원에서 쉬어가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한적한 한옥의 집안을 거니는 느낌을 주는 이곳에서 잠시 앉아 하늘과 나무들을 보며 쉬기 딱 좋다. [한옥마을 속 유일한 이국적인 건물인 `전동성당`] 우리의 전통을 품은 한옥들 사이에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눈에 띄는 이국적인 곳 ‘전동성당’ 역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전동성당은 1908년과 1914년 사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고, 호남에서 제일 먼저 지어진 서양식 건물이란다.
한옥마을 입구를 멋지게 지키고 있는 전동성당은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늘 붐비는 곳이 됐다.
[호남에서 제일 먼저 지어진 서양식 건물인 전동성당의 내부]그저 예쁜 사진 한 장을 남기는 것도 좋겠으나, 해설과 함께하면 창문 하나, 기둥 하나의 의미를 알 수도 있다. 전동성당의 스테인드그라스는 밖에서 볼 때는 하얀 색이지만, 안에서 볼 때는 다섯 가지 색으로 빛이 난다. 이는 빛 조차도 변하는 성스러운 성소를 뜻한다.
전주만의 정서 담은 민속 공연은 덤
전주서 한옥마을을 한 바퀴 구경하니 반나절이다. 저녁 구경거리를 찾는다면 한옥마을을 무대로 펼쳐지는 민속 공연을 추천한다.
[관람객과 함께하는 `용을 쫓는 사냥꾼` 공연. 합굿마을 제공]올해 한국관광공사 테마여행 10선 관광콘텐트 사업에 선정된 전주한옥마을 마당놀이 ‘용을 쫓는 사냥꾼’이 전주한옥마을에서 열리고 있었다.
사회적기업 합굿마을이 공연하는 ‘용을 쫓는 사냥꾼’은 개성 있는 스토리텔링과 여러 전통악기 및 놀이의 조합으로 2015년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창작연희극 활성화 사업 공모전에 선정되며 국립국악원, 국립남도국악원, 국립 청주박물관 등 전국 각지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공연은 용을 쫓는 사냥꾼들의 황당 모험기에 대한 이야기다. 장가갈 밑천을 마련하고자, 노부모와 늦둥이 동생을 부양하고자, 스무 명이 넘는 자식을 키우고자, 서당을 나와서도 일할 곳을 찾고자 등 특색 있는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용을 찾기 위해 벌이는 연속된 사건들이 해학적으로 담겨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김여명 합굿마을 대표는 “공연마다 130명, 많을 때에는 180명까지 찾아주신다. 3040대 관객들이 많고 아이와 함께 오는 가족단위 관람객들도 상당하다”며 “전주에서 구전돼 내려오는 민속이 공연에 다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공연 속에는 지방문화재 제63호로 지정된 전주기접놀이가 녹아 있는데, 기접놀이는 현재의 전주 삼천동, 효자동, 중인동 일대에서 전해오는 민속놀이로 여름 백중날 김매기가 끝나면 일대의 마을들이 마을기(용깃발)을 앞세우고 모여 벌이는 잔치라고 보면 된다.
과거에는 각 마을들은 용깃발을 들고 모여 깃발 이어달리기, 다른 마을깃발을 넘어뜨리거나 부러뜨리는 기싸움, 마을 청년들의 용깃발 재능 기등을 펼쳐 각 마을간 경쟁을 하며 마지막으로 대동굿(합굿)을 함께 하며 지역공동체 정서를 다지곤 했단다.
전주기접놀이는 200년 이상 전승되어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1950년대까지는 일대의 16개 마을이 참여하는 지역최대의 민속놀이였다. 깃발을 다양한 기술로 펼치는 놀이는 전국적으로 유래가 없으며 전주기접놀이가 유일하다.
기접놀이 외에도 논이나 밭의 김을 매면서 부르는 민요인 ‘만두레소리’나 달구로 땅을 다지면서 부르는 민요인 ‘달구방아소리’ 등도 있는데, 익숙하지 않아도 공연에 빠져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무엇인지 알게 되는 우리의 오래된 소리다. [공연 관람 후 캘리 부채만들기 체험 중인 아이. 합굿마을 제공]공연 후에는 전주 전통집밥과 전통예술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승암마을에서 준비한 비빔밥. 합굿마을 제공]한옥마을 옆에 위치한 승암마을에서 준비한 ‘전주비빔밥’을 먹고, 아이와 함께 온 관람객들은 예술 작가들과 함께 ‘캘리 부채만들기’나 ‘초상화 그리기’, ‘비즈공예 팔찌 만들기’ 등 체험에 푹 빠져 있었다.
공연은 5월부터 10월 말까지 진행되며, 전주한옥마을 내 전주향교문화관 앞 마당에서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