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시트(이상근 감독)'가 누적관객수 600만 명을 돌파하며 여름 극장가 최고 흥행작에 등극하면서 '엑시트'를 이끈 조정석이 '흥행 배우' 타이틀을 거머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한국 영화의 '구원 투수'가 됐다.
'나랏말싸미(조철현 감독)'를 시작으로 '사자(김주환 감독)', '엑시트', '봉오동전투(원신연 감독)'가 '여름시장 빅4'로 묶여 출격했지만, 역대 가장 미비한 사전 반응을 이끌었던 2019년 여름 영화들이다. 그중 '엑시트'는 유일한 오락영화 장르라는 이유로 '운이 좋으면 흥행은 하겠다'는 기대 반, 무관심 반의 시선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역시 예측은 불허해야 흥미롭고, 예상은 빗나가야 제맛이다.
'엑시트'에 대해 "잘 빠졌다"는 입소문은 어느 시점부터 업계 내에 상당히 퍼졌지만, 출처를 알 수 없는 내용을 100% 믿기에는 그간 뒤통수 친 영화들이 더 많았다. '결국 재난영화에 결국 뻔한 결말 아니냐'는 보통의 생각에 신뢰도가 쏠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지점은 '엑시트'는 온 몸 던져 열연한 조정석을 품고 있었다는 것. 조정석은 '엑시트'의 원톱 주연이자 히든카드로 기분좋은 뒤통수를 날렸다. 예고편부터 슬슬 눈길을 끌기 시작한 조정석은 본편으로 기대 이상의 능력치를 발휘했다. 시사회 직후 '엑시트'는 복병도, 최약체도 아닌 흥행 예정작 위치로 수직 상승했다. 찰떡궁합의 좋은 예. '엑시트'와 조정석의 관계다. '엑시트'는 기존 재난 영화의 클리셰를 깨부수며 무거운 소재를 무겁지 않게 다뤘고, 재미와 감동을 기본으로 적절한 메시지까지 상업 오락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완성도를 보여줬다. '엑시트'의 강점을 강점으로 보여지게 만든 이는 다름아닌 조정석이다. 가족들의 틈바구니에서 중심을 잡고, 윤아를 끌어주며 대형 프로젝트를 기꺼이 해냈다.
그리고 '엑시트'는 영화의 힘만큼 중요한 배우의 힘을 새삼 깨닫게 했다. 속된 말로 '조정석이 멱살잡고 끌고 간 작품'이라는 평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매 작품 연기로는 단 한번 실망시킨 적 없는 조정석이었지만, '당연히 또 잘 했겠지'라는 믿음에는 특별한 궁금증보다 적응의 비중이 컸던 것도 맞다. '엑시트'는 흐트러진 관객들의 집중도에 제동을 걸며 또 스쳐 지나가고, 흘려 보낼 뻔한 조정석의 가치를 다시금 반짝반짝 닦아냈다.
관객들도 모든 것이 준비 돼 있었던 '엑시트'와 조정석에 응답했다. 영화가 흥해도 영화 자체의 이미지만 기억될 뿐, 배우는 잔상에 남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영화의 흥행이 배우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건 결국 관객들의 2차 반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엑시트'에 푹 빠진, 그리고 용남을 연기한 조정석에 푹 빠진 관객들은 '엑시트'를 넘어 조정석이 쌓은 필모그래피와 대표 캐릭터들을 다시금 되새기고 있다. 과거 인터뷰과 에피소드는 현재의 소소한 재미가 되기도 한다. '조정석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일념 하나로 1년을 기다린 '엑시트' 팀. 잦은 어깨 부상과 고소공포증에도 이 악물고 용남을 연기해낸 조정석은 결과적으로 모두 옳았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1000만 영화가 4편이나 탄생했지만, 여름은 여전히 영화계가 1년 중 가장 공들이는 농사철이다. 한 해를 대표하는 시즌인 만큼 해가 지나도 지난해, 지지난해 여름영화들은 흥·망작을 떠나 늘 소환되기 마련이다. 2019년에는 '엑시트'와 조정석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남게 됐다.
흥행작을 이끈 첫번째 주역으로 쏟아지는 관객의 애정을 정통으로 맞은 조정석은 소통의 기쁨을 고스란히 느꼈을 터. 이는 조정석에게 단연 긍정적 변화를 일깨울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그의 차기 행보와 새 작품 속 조정석이 보여줄 연기에 기대감이 샘솟는 것은 당연하다. 시작은 찌질했을지언정 끝은 창대한 용남처럼, 용남을 통해 무엇을 하든 '별 볼 일 있는 삶' 임을 설득시켜준 '조정석 덕분에' 그 어느 때 보다 뜨겁게 행복했던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