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간판 타자 이정후(21)는 마치 끝내기 안타를 친 순간처럼 환호했다. 슈퍼레이스에서 호흡을 맞춘 여성팬과 우승의 기쁨을 나누던 순간이다. 2019 올스타전은 방향성을 제시했다.
지난 21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올스타전은 신설된 이벤트가 큰 호응을 얻었다. 슈퍼레이스다. 구단별 올스타 선수 2명과 사연 공모를 선정된 야구팬 3명 그리고 구단 마스코트가 한 팀을 구성해 그라운드에 설치된 6개의 장애물을 통과하는 경주 방식이다. 팬과 선수가 호흡할 수 있는 무대였다.
그라운드에 몇몇 장애물이 깔릴 때까지도 시선을 끌지 못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머릿속 스케치가 가능했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장내 기류가 달라졌다. 낙하산 레이스에 임하는 선수의 치열한 질주와 익살스러운 표정이 웃음을 자아냈다. 어린이들이 주자로 나선 '점핑 디딤돌'도 박진감이 있었다. 인형탈을 쓴 마스코트들이 허들을 넘을 때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됐다. 팬들이 전한 바통을 상대보다 빨리 다음 주자에게 전하려는 선수들의 투지도 박수를 받았다.
킬러 콘텐트는 여성팬이 임무를 맡은 퍼펙트피처. 마지막 단계이자 긴박감을 주는 순간이었다. 방식은 종전 올스타전 이벤트와 같다. 거꾸로 세워진 배트를 야구공으로 맞춰 쓰러트리면 된다. 거리는 마운드와 홈플레이트 중간이다. 키움은 주자로 나선 여성팬이 준결승과 결승에서 공 한 개로 배트를 쓰러트린 덕분에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선수와 참가자, 관중까지 어우러질 수 있는 이벤트였다. 그리고 올스타전이 진정한 축제의 장으로 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시사했다.
주목도가 높은 방식을 선택한 점이 통했다. 경주를 하기 때문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속도감이 주는 흥미가 다양한 이야깃거리와 어우러질 수 있었다. 선수들이 참가하는 퍼펙트피처 이벤트에 비해 박진감도 있었다. 선수와 팬, 남녀노소가 참여한 방식은 의미뿐 아니라 재미까지 잡았다. 키움 어린이 주자는 점핑 디딤돌 단계에서 마치 평지를 걷는 듯 능숙한 모습을 보여주며 탄성을 받았다. 퍼펙트피처에 나선 모든 여성팬의 제구력도 뛰어났다.
무엇보다 체험형 이벤트라는 점이 좋았다. 야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 직접 해보기 어려운 종목이다. 팬들은 눈앞에서 그라운드를 보고, 베이스와 마운드 투구판을 밟고, 공인구의 경도를 알 수 있던 계기다. 1만8000여 명이 운집한 경기장에서 환호를 받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매년 괴물 타자가 나타나는 메이저리그 홈런 레이스 탓에 KBO 리그 올스타전 사전 이벤트는 초라해 보인다는 시선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올스타전은 일본 야구팬조차 놀라는 응원 문화처럼 한국 야구 문화만의 특색이 돋보였다. 앞으로도 관중 참여형 이벤트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 선수가 던지고 팬이 타석에서 들어서 비거리 합산으로 우승을 정하는 이벤트는 어떨까. 콘셉트가 명확해지면 아이디어도 쏟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