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여행 자제 분위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일본행 비행기 티켓 가격이 추락하고 있다. 본격적인 바캉스 시즌에도, 주말을 앞두고 출발하는 일본 주요 여행지 항공권 가격이 왕복 10만원 초반대까지 떨어졌다. 일본을 주요 노선으로 삼는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업계는 "이미 예약한 항공권을 취소하는 사례는 사실상 많지 않다"며 애써 표정을 관리하지만, 극성수기에 '땡처리' 수준까지 뚝 떨어진 항공권 가격 앞에서 시름을 삼키고 있다.
금요일 출발 오사카행 왕복 티켓 '13만원'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은 휴가철이다. 짧게는 2박 3일, 길게는 일주일간 해외여행을 떠나는 피서객이 늘어난다. 일본은 바캉스 시즌에 전통적으로 인기 여행지로 꼽힌다. 3~4시간 미만 거리로 가깝고, 물가도 비싸지 않아 7~8월 일본행 비행기 티켓은 비성수기 시즌보다 두 배가량 비싸다.
하지만 올여름은 다르다. 7월의 한복판이지만 일본 주요 여행지 항공권 가격이 폭락했다. 15일 오전 기준으로 19일부터 오사카행 2박 3일 왕복 항공기 티켓 가격은 12만4800원에 그쳤다. 후쿠오카는 10만6000원, 오키나와는 13만9706원이다. 금요일인 19일은 토요일과 일요일을 활용할 수 있어 휴가객들이 선호하는 요일이다. 평일 일본행 비행기는 더 저렴하다. 17일부터 2박 3일 일정의 오사카행 티켓은 카드 할인을 받을 경우 최저 12만3600원에 인천과 오사카를 왕복할 수 있다. 후쿠오카도 같은 기간 평균 10만원대, 카드 할인의 경우 9만3100원에 왕복이 가능하다. 일본 어디를 가든 평균 13만원에서 14만원이면 왕복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밑도 끝도 없이 떨어지는 일본 항공권 가격을 공유하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중고 거래 및 각종 사용 후기 등을 공유하는 사이트에는 "LCC가 늘어나면서 일본 항공권은 원래 싸지만, 성수기에도 (가격이) 추락하고 있다. 요즘은 10만원 미만이 대세고, 조금 더 찾아보면 5만원 미만 비행기 티켓도 있다"며 인증샷이 올라왔다. 이 사진에는 17일부터 2박 3일 일정의 규슈행 항공권이 3만7100원으로 기재돼 있다.
국내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이 일본행 항공권과 비슷하거나 비싸다. 오는 19일부터 2박 3일간 제주행 비행기 티켓은 일부 특가 상품의 경우 최저 11만9900원이고, 평균 17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제주도보다 먼 일본에 가는 것이 더 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LCC 업계 비상…"길어지면 타격"
일본은 국내 LCC 업계를 먹여 살리는 주요 노선으로 꼽힌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LCC의 매출 기준, 일본 노선의 비중은 평균 25% 안팎을 차지한다.
제주항공 26%, 진에어 24%, 티웨이항공 30%, 이스타항공 30% 순이다. 업계 1위 제주항공은 국제선 노선 68개 중 22개가 일본행 노선이다. 제주항공은 지난 1분기에만 일본 노선을 통해 933억원을 벌었다. 이는 1분기 전체 매출 3929억원의 24%에 달하는 수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78억원)보다 55억원 늘어난 규모다.
하지만 불매운동이 길어지지면서 사전에 예약한 일본 여행 일정을 취소한 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인증샷을 올리는 분위기가 확산하자 좌불안석이다.
A항공사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우리 항공사는 대량 취소는 없다. 일정 변경 등은 있겠지만, 이번 일본 이슈와 맞물려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언론 등에서) 분위기를 그쪽으로 이끌어 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그러나 국내 LCC 항공사의 경우 오사카·후쿠오카·삿포로 등에 가려던 단체 여행객 200여 명이 항공편 예약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업계를 긴장시켰다.
A항공사 관계자는 "단체 고객의 경우 공무원 등 특정 직업을 가진 그룹도 있다. '이런 시국에 일본으로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취소한 것 아닐까' 예상해 본다. 하지만 개인 고객들은 큰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행 항공권 가격이 떨어진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B항공사 관계자는 "여행사들이 들고 있던 티켓이 다시 항공사로 대량 넘어오면서 가격이 떨어진 것 아닌가 싶다"고 귀띔했다. 대형 여행사들이 잡았던 티켓을 반환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있다는 것이다.
하나투어·모두투어·노랑풍선 등 주요 여행사 주가가 나란히 연중 최저 수준을 기록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에 영향받은 탓이다.
일부에서는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취소가 늘어날 경우 LCC 업계가 2분기 실적 감소는 물론이고, 3분기 실적까지 타격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사드로 인한 한중 외교 갈등 과정에서 양국 간 항공 여객이 30% 감소한 사례가 있어 일본 여행 수요 감소가 펀더멘털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