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환향 '기생충'이다. 한층 촘촘하고 단단해진, 적나라하면서 기묘한 봉준호의 신(新)세계가 열린다.
28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는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봉준호 감독)' 국내 공식 언론사시회가 진행했다. 이 날 행사에는 봉준호 감독과 함께 송강호·이선균·조여정·최우식·박소담·장혜진이 참석해 못다 전한 황금종려상 수상 소감과 함께 영화를 국내에서 처음 공개한 소감,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기생충'은 칸영화제 72년 사상 처음으로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은 한국 감독의 한국 영화다. 한국 영화 100년 역사를 새로 쓰며 금의환향했다. 그간 한국 영화는 각본상, 감독상, 심사위원상, 심사위원 대상, 여우주연상 등 다양한 부문을 통해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대상 격의 황금종려상은 '기생충'이 최초다. 2010년 63회 '시' 이창동 감독이 받은 각본상 이후 10년 만, 주요부문 6번째 수상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됐다.
봉준호 감독은 극중 이선균과 조여정의 아들 다송과 비교해 "봉준호 감독은 12살 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대단한 작품을 만들었냐"고 묻자 "엄밀히 따지면 중학생 때였다. 현장이 프랑스라 그 쪽 나이 계산법으로 해서 12살이라 말했다. 한국에서는 보통 14세라고 한다"고 운을 떼 웃음을 자아냈다.
봉준호 감독은 "중학교 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월간잡지를 들춰보고 수집하면서 좋아하는 배우와 감독들을 향해 동경하는 마음을 표했다. 물론 그랬던 아이들은 많이 있었던 것 같고 나도 평범한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근데 성격 자체가 집착이 강한 성격이라 그 후에도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오늘 날 좋은 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지경에까지 오게 된 것 아닌가 싶다"고 겸손함을 표했다. 현장에 봉준호 감독과 함께 있었던 송강호 외 배우들은 한국에서 황금종려상 수상 장면을 라이브 방송으로 지켜보며 함께 환호했다는 후문이다.
이선균은 "실시간 방송으로 보다 보니 많이 끊겼다. 그래서 쫄깃하고 재미있게 봤다. 아침까지 잠을 못 자고 맥주 두 캔 먹으면서 자축했다", 조여정은 "난 이 작품에 출연했다는 자체가 영광스럽고 우리 팀과 만나게 된 인연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우식은 "나도 시차적응이 안되서 늦게까지 깨어 있어 볼 수 있었다. 어떤 기자 분이 라이브 방송을 하시는 것을 봤는데 그 분도 우시더라. 내 마음이 딱 그랬다. 무엇보다 손을 번쩍 치켜든 감독님의 모션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소름돋았고 좋았다"고 회상했다.
박소담은 "난 지금도 내가 칸에 다녀왔다는 자체가 아직도 얼떨떨하다. 사진과 영상들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감독님, 좋은 선배님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했다. 요즘 매일 매일이 행복하다", 장혜진은 "나도 새벽에 라이브로 방송을 보는데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다니, 이럴 수도 있구나' 너무 놀라웠다"며 울컥해 눈길을 끌었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 사장(이선균)의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그린 가족 희비극이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처음 구상한 것은 2013년. '설국열차' 후반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기생충'을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봉준호 감독은 "2013년 처음 구상해 스토리라인을 완성했다. '설국열차' 후반작업 때였다. '설국열차'도 부자와 가난한 자의 이야기 아닌가. '일상과 가깝고 우리 현실에 가까운 그 이야기를 가족들 중심으로 펼쳐보면 어떨까' 싶어 발전 시켰다"며 "가족은 '기생충'의 출발점이다. 한강에 괴물이 나타나고, 기차가 눈 속을 달리듯이 출발점 자체가 두 가족이었다. '가난한 4인 가족과, 부자 4인 가족이 기구한 인연, 기묘한 인연으로 뒤섞이는 이야기를 그리면 어떨까' 생각했다. 우리 주변에 늘 있는, 마주치는 부자와 가난한자들의 모습을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우식과 박소담으로 대변되는 젊은 관객층을 향해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영화 그 차체다. 어떤 말을 설파하기 보다는 영화를 통해 말해야 한다. 최우식, 박소담 두 훌륭한 배우가 이 시대 젊은이들로 어쩌면 나보다 더 잘 느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구체적으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최우식이 표현한 감정적 여운 같은 것을 생각해 보면 실질적으로 잘 되기를 바라고 싶지만 녹록하지 않다. 어려운 점 많고, 쉽지 않은데 불안감, 두려움, 슬픔, 복합적인 마음을 담아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기생충'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키워드와 연관성을 '냄새'로 전하기도 한다. 봉준호 감독은 "냄새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건 굉장히 공격적이고 무례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큰 화면으로 접하기 힘든 사적이고 내면적인 것까지 파고든다. 부자와 가난한 자는 서로 냄새 맡을 기회가 없다. 동선 자체가 다르다. 비행기를 타도 나눠지고, 가는 식당, 일하는 곳 등등 솔직히 많이 다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직종들, 근무 상황 같은 것들이 어쩌면 유일하다. 스토리 자체가 그 상황들의 연속으로 이뤄져 있다. 이 영화에서 쓰여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법한 하나의 날카롭고 예민한 도구가 냄새다"고 역설했다. 배우들은 '기생충'을 함께 한 소감, 그리고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연기하며 느꼈던 소회를 밝혔다.
송강호는 "'기생충'은 장르 영화의 틀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장르의 혼합같은 그런 변주된 느낌이 강하다. 배우들 모두 처음 이런 이야기들을 접했고, 영화를 통해 연기하게 됐을텐데 그런 낯설음 같은 것들이 '두렵다' 했지만 신기하기도 했다. 이것을 어떻게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참신한 영화의 진행이 그런 두려움을 많이 상쇄시켰고 가족들과의 앙상블을 통해 자연스럽게 잘 체득하면서 연기헀다"고 말했다.
이선균은 "캐릭터는 대본에 감독님이 너무 잘 설계를 해 주셔서 편하게 호흡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많이' 부자로 나와 해보지 않은 캐릭터라 어쩌나 싶었는데 환경이나 설정을 잘 잡아 주셨다. 존경하는 감독님, 선배님과 연기하는 첫 날 어느 때보다 긴장헀다. 신인 배우로 돌아갔을 때처럼 기분좋은 떨림을 가졌다. 첫 날 촬영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조여정은 "연교는 돌아가는 모든 상황을 모르는 채로 본인의 전업주부로서의 일에만 집중하는 인물이다. 기택 가족을 대할 때 모든 것을 깨끗하게 비우고 저 가족들이 하는 이야기에만 집중하면 됐기 때문에 오히려 가볍게 생각할 수 있었다. 다른 역할 할 때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해야 했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즐겁게 촬영했다"고 흡족해 했다.
최우식은 "송강호 장혜진 선배님의 아들, 소담이의 오빠로서 가족의 일원이 됐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 가족들끼리 하는 것은 다 재미있었다. 피자박스 접을 때도 웃으면서 재미있게 잘 찍었다"고 전했고, 박소담은 "기정이의 대사를 굳이 외우려 하지 않아도 입에 잘 붙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내 말로 만들어 연기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내 말을 내 목소리로 연기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진심을 표했다.
장혜진은 "이렇게 큰 작품에 큰 역할을 한 것이 처음이라 긴 호흡을 끌고 갈 수 있을까 걱정했고 부담스러웠는데 감독님이 마음을 추스릴 수 있도록 정말 많이 도움 주셔서 감사했다"며 기분좋은 울컥함을 드러냈다. 다시 마이크를 잡은 장혜진은 "어느 하나 신나지 않은 장면이 없었고 소중하지 않은 장면이 없었다. 무엇보다 촬영 현장에서 충숙의 두툼한 턱살을 사랑해 주셨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기생충'은 30일 국내에서 정식 개봉한다. "칸은 이미 과거가 됐다"며 누구보다 빨리 현실에 선 봉준호 감독은 "이제 진짜 관객 분들을 만날 때다. 틈나는대로 약간의 분장을 하고 좌우에 앉아 있는 관객들을 만나뵙고 싶다. 티켓을 사 정성스럽게 와 주신 관객분들 틈바구니에서 속닥속닥 이야기 하시는 것 들으면서 같이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어떤 이야기를 하실지 진심으로 궁금하다"고 전해 관객을 애정하는 봉준호 감독의 진심과, 개봉 후 봉준호 감독이 선사할 깜짝 이벤트에도 기대감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