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미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14% 이상인 ‘고령 사회’다. 은퇴자들은 경제적 부담감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실제로 KEB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국민연금을 받는 65~74세 은퇴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은퇴자들 3명 중 1명(34%)은 ‘금융 자산의 고갈’을 가장 걱정했으며, ‘생활수준의 추락’을 걱정하는 응답자들도 전체의 3분의 1에 달했다.
노후 대비를 위한 수단으로는 연금저축이나 개인형 퇴직연금(IRP)이 꼽힌다. 하지만 연금f저축은 연금 수령액이 푼돈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인기가 갈수록 시들해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연금저축 가입자의 연금 수령액은 2조6000억원이었으며, 계약당 연금 수령액은 연간 308만원, 월평균 26만원이었다. 국민연금과 연금저축에 모두 가입해도 수령액은 61만원으로 1인 기준 최소 노후생활비 104만원의 59% 수준에 불과했다. 연금이 국민의 100세 시대, 노후를 책임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지난해 연금저축 계약 해지 건수는 31만2000건으로 신규 계약(30만7000건)을 넘어섰다.
반면 IRP 시장은 급성장하며, 그 규모가 2017년 15조3000억원에서 지난해 19조2000억원으로 뛰었다.
IRP는 연 1800만원까지 납입 가능하고,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다. 특히 연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어 세테크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넉넉한 노후 자금을 원한다면 세액공제 한도액(700만원)을 초과해서 1800만원까지 IRP에 납입할 수 있다. 700만원을 초과해 납입한 1100만원에 대해서는 세액공제 혜택은 없지만 소득세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노후를 준비하는 직장인에게 IRP 가입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짭짤한’ IRP…눈에 띄는 저축은행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IRP의 세액공제율은 총급여가 5500만원 이하인 사람은 16.5%다. 총급여가 5500만원을 초과하는 사람은 13.2%를 적용받는다.
IRP의 장점은 퇴직금을 IRP를 통해 55세 이후 연금으로 수령하면 일시금으로 수령할 때 부과되는 퇴직소득세를 30%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퇴직 직후 바로 퇴직금(퇴직연금 일시금 포함) 전액을 일시에 사용할 계획이 아니라면 절세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최근 저축은행이 내놓는 퇴직연금 상품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시중은행에서 판매 중인 퇴직연금 상품 금리는 평균 연 1%대다. 반면 지난해 말부터 퇴직연금 판매가 허용되면서 각 저축은행은 최고 연 2.6% 금리를 제공하는 퇴직연금 상품을 내놨다.
출시 당시 OK저축은행은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 등 금리가 모두 연 2.6%, SBI저축은행은 IRP 2.4%, DB 2.5%의 금리를 제공하며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다. SBI저축은행과 OK저축은행이 지난해 11월 출시한 퇴직연금 상품의 잔액은 각각 3000억원, 3670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시중금리가 인하하면서 저축은행들은 퇴직연금 상품의 예금 금리를 잇따라 내렸다. OK저축은행의 경우 지난해 말 대비 퇴직연금 상품 금리를 0.2%p 인하했고, JT·유진저축은행 등도 올 1월 대비 0.5%p 내렸다.
금리뿐 아니라 저축은행별로 예금자 보호 한도인 원리금 5000만원까지만 자산에 편입할 수 있어 안전성이 보장된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다만 저축은행의 신용도가 일반 은행보다 낮은 만큼 신용도 확인은 필수다.
저축은행들이 ‘높은 금리’를 무기로 시장에 막 뛰어들었다면, 시중은행들은 수익률 제고를 위해 경쟁력 높이기에 안간힘을 쓴다. 수익률은 정기예금 금리보다 낮은데도 ‘수수료’는 다 챙겨 간다는 비판에서 퇴직연금 체질 개선에 나선 것이다.
대표적으로 신한금융은 그룹사 단위의 퇴직연금 사업을 그룹 차원의 매트릭스 체제로 확대·개편하기로 하면서 큰 움직임을 보였다. 6월 출범 예정인 퇴직연금 매트릭스는 새로운 퇴직연금 사업 전략 및 자본·인력 등 그룹 자원의 활용을 최적화하고, 고객 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해 기간별 상품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꾸준한 수익률을 제공하는 설루션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KB금융도 수익률 제고에 집중한다. 수수료율을 인하하는 대신 고객 만족도 향상을 위해 상품의 경쟁력 강화와 업무 프로세스 효율화 등 다양한 방안을 살핀다. KEB하나은행의 경우 지난달 모바일 퇴직연금 서비스의 운영 시간을 확대 시행했으며, 상반기 중 연금자산관리센터 설립을 통해 맞춤형 컨설팅과 체계적인 수익률 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190조원에 달한 가운데 평균 수익률은 정기예금 금리의 절반 수준인 1.01%에 그쳤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1.5%를 감안하면 실질 수익률은 대부분 마이너스였던 셈이다.
‘IRP’, 주의할 점은
IPR는 중도 해지할 경우 고율의 소득세를 내야 한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노후 대책으로 가입했다고 해도, 급하게 목돈을 유용해야 할 경우 뱉어 내야 할 세금이 상당하다.
예를 들어 고객이 IPR 계좌에 300만원이 들어 있는데 중도 해지하면, 49만5000원을 뗀 250만5000원만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고객이 지난 연말에 이 IRP 상품으로 세액공제를 받았을 경우에 해당되는데, 이 상품으로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했을 경우에도 일괄적으로 기타소득세로 차감돼 돌려준 뒤 소비자가 증빙서류로 혜택받지 못했음을 증명해야 돌려받을 수 있다.
실제로 KEB하나은행에서 지난해 11월 직접 IRP 상품에 가입한 A씨는 소액을 계좌에 넣었다가 해지하면서 세액공제율인 16.5%만큼 떼이고 돌려받았다. 하지만 A씨가 회사에 확인해 보니 지난해 연말정산에서 해당 상품으로 세액공제를 받은 사실이 없었던 것.
이에 하나은행 측은 “연말정산할 때 세액공제를 받았다는 가정하에 기타소득세가 먼저 차감되지만, 세액공제를 받지 않았다면 이를 증명할 증빙서류를 지점에 제출해 해당 금액은 다시 받아야 한다”고 안내했다.
그러면서 “해당 서류는 7월 이후 홈텍스나 세무소에서 발급 가능한 서류로 ‘연금보험료 등 세액공제 확인서’이며, 7월 이후 발급받으셔서 가까운 하나은행 지점에 제출해 달라”고 했다.
A씨가 “IRP 해지 시 전달받은 게 없고, 이런 식으로 고객이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못 받는 것이냐”고 묻자, 은행 측은 “해지할 때 직원이 안내해 주시는데 놓치신 것 같다. 고객이 몰랐으면 못 받았을 수 있다”며 사과할 뿐이었다.
이에 A씨는 “연말정산 때 어떤 상품으로 세액공제 혜택을 받았는지 하나하나 전부 아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7월에 지난해 연말정산 혜택을 확인하기 위해 서류를 확인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은행권 관계자는 “대부분의 IRP 상품이 해지할 때 시스템이 비슷하게 운영될 것”이라며 “불완전 상품이라는 얘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