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 `임블리`에서 판매한 호박즙에 곰팡이가 피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 사진은 지난 1월 27일 팬미팅 무대에 선 임블리 상무 임지현의 모습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인플루언서'들이 뷰티·패션 업계 신흥 재벌로 올라서고 있다. 이들이 걸치는 옷·액세서리는 물론이고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까지 대중의 관심을 받으면서 쇼핑몰 사업이나 각종 홍보 활동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커지는 사업 규모나 수입과 비교해 인플루언서가 판매하는 패션·뷰티 상품의 품질이나 애프터서비스(AS) 기업 문화 수준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일면서 사업 지속 가능성 여부에 물음표가 찍힌다. 국내에서 이 분야의 '간판'으로 불렸던 인플루언서 겸 쇼핑몰 사업가 '임블리'의 추락이 단적인 예다.
패션·뷰티 업계 '신흥 재벌'로 올라선 인플루언서
요즘 화장품 업계에서는 SNS 스타 출신이 벼락부자가 된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7월 포브스는 자수성가형 여성 부자 순위를 발표했다. 순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27위에 오른 미국의 인플루언서 카일리 제너다. 킴 카다시안·켄달 제너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글로벌 스타를 가족으로 둔 카일리는 만 22세 나이에 억만장자가 됐다. 포브스에 따르면, 카일리의 자산 규모는 10억2000만 달러(약 1조1580억원)로 2010년 당시 23세에 억만장자가 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를 앞지르는 기록이다.
비결은 SNS와 화장품이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에 1억7500만 명가량의 팔로어를 보유한 그는 이를 기반으로 화장품 브랜드 '카일리 코스메틱'을 론칭했다. 최신 유행하는 색조 제품에 방점을 찍는 카일리 코스메틱은 약 3년 만에 기업 가치를 8억 달러(약 8892억원)로 끌어올렸다. 유명 뷰티 전문 저널리스트 제시카 모건은 "백만장자가 된 카일리는 소셜 미디어를 무료 마케팅 수단으로 구축했고, 이에 대해 비판할 수는 없다"고 촌평했다.
비슷한 사례는 국내에도 있다. 쇼핑몰 '스타일난다'의 김소희 전 대표다. 김 전 대표는 지난해 약 6000억원을 받고 글로벌 뷰티 그룹 로레알에 스타일난다 지분 100%를 넘겼다. 로레알은 스타일난다의 메이크업 브랜드인 '3CE(쓰리컨셉아이즈)'의 가능성과 중국 시장을 겨냥해 인수를 결정했다. 3CE는 스타일난다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면서 대표 화장품 브랜드로 부상했다. 스타일난다는 2017년 기준 매출액 1억2700만 유로(약 1636억원)를 올렸다. 로레알 측은 "스타일난다는 한국·중국의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생)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라며 "홍콩·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 등에도 진출했기 때문에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표 역시 SNS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인플루언서다. 월 매출 1000만원에 그치던 ‘동대문표’ 온라인 쇼핑몰을 13년 만에 6000억원에 되판 그는 SNS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며 젊은 세대에 맞춘 제품으로 사랑받았다. 해외 유명 여행지·명품·최신 유행하는 스타일을 담은 사진을 SNS에 올리며 엄청난 팔로어를 보유한다. 스타일난다에서 수년간 전속 모델로 활동한 박소라 등 뮤즈의 활약도 컸다. 이들은 80만여 명의 국내외 팬 및 팔로어를 보유한 인플루언서다.
국내 패션·뷰티 인플루언서 대표 주자 '임블리'
임블리는 '제2의 스타일난다' 계보를 이을 후보로 주목받았다.
임블리를 경영하는 패션 인플루언서 임지현은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 81만 명 이상을 보유했다. 웬만한 연예인을 넘어서는 인기다. 중국 내 영향력도 상당하다. 이미 16만 명에 달하는 웨이보(중국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팔로어를 보유하며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임블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모델·상무인 임지현은 의류 브랜드 '임블리'와 뷰티 브랜드 '블리블리'를 운영 중이다. 임블리는 2013년 론칭 이후 5년간 온라인 스토어에서 높은 매출을 기록한 바 있다. 2014년 롯데백화점 본점 영플라자에 입점해 10개 매장을 두고 있다. 지난해 5월 열린 5주년 행사 당일에 온라인에서만 단 하루 동안 37억원의 기록적인 매출을 달성했다. 뷰티 브랜드 블리블리는 올 한 해 '면세점 유통 3개 사(롯데·신라·신세계) 베스트 1위'를 차지했다. 한국 젊은층 사이에서 핫 플레이스로 불리는 홍대에 플래그십 스토어 ‘블리네’를 오픈했으며, 유명 백화점에 입점해 오프라인 매장을 확장하고 있다.
해외 진출도 활발하다. 현재 중국 알리바바 그룹이 운영하는 티몰 글로벌에도 의류 브랜드 임블리와 시그니처 코스메틱 브랜드 블리블리가 입점돼 중국 진출에 박차를 가한다.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 및 미주까지 글로벌 시장 진출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 나간다.
임블리는 침체된 패션 시장 분위기에서도 매년 성장세를 이어 가며 2016년도 700억원을 돌파해 업계 관심을 받았다. 임블리를 운영하는 부건에프엔씨는 지난해 매출 970억4296만원이라는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전년(2017년) 661억7301만원 대비 큰 폭으로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23억6503억원에서 지난해 100억2696만원으로 324% 뛰었다. 임블리는 2018년 성장률 200% 달성 기념 '임블리 감사제'까지 열며 성공을 자축했다.
부창부수다. 부건에프엔씨 대표는 임지현 상무의 남편 박준성이다. 2006년 '멋남'이라는 남성복 쇼핑몰을 만든 그는 남성복 전문 쇼핑몰로 이름을 알렸다. 아내인 임 상무를 모델로 등장시켜 반향을 일으킨 당사자다. 박 대표는 인스타그램을 활용해 브랜드 PR는 물론이고 상품에 대한 피드백으로 지금의 부건에프엔씨를 일궜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대표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임블리도 실제 임 상무가 인플루언서였다. 이제 개인 인플루언서 시대에 접어들었다. 나는 그러한 사람들을 찾아 제2의 임블리를 발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사업은 커지고 돈은 버는데…제품·AS 수준은 '아니올시다'
잘나가던 임블리는 최근 위기에 몰렸다.
임블리에서 판매하던 제품에서 하자가 발생했는데,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거나 소비자 책임으로 돌리면서 입길에 오른 것이다. 단순한 구설에 끝나지 않았다. 임블리는 업계 종사자들로부터 각종 '갑질' 폭로의 대상이 됐고, 소비자에게는 문제 많은 AS가 지적되면서 벼랑 끝에 섰다.
시발점은 호박즙이었다. 지난해 출산한 임 상무는 패션·뷰티를 넘어 식품인 호박즙까지 팔았다. "임블리가 추천해서 호박즙을 믿고 샀다"는 한 소비자는 용기 입구에서 곰팡이를 발견, 환불을 요구했다. 그러나 임블리 고객센터 측은 "이미 먹은 것은 환불이 어렵다. 남은 부분만 교환해 주겠다"고 응답했다. 소비자는 자신의 SNS에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사실은 인터넷을 통해 확대됐고, 임블리와 임 상무는 비난받았다. 임블리 측은 "지금까지 올린 (호박즙) 매출액 26억원 전액을 환불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곧바로 ‘원하는 고객’에게 환불하겠다고 입장을 바꿔 빈축을 샀다.
SNS상에는 임블리에서 산 화장품 용기에 곰팡이로 보이는 이물질이 낀 사진이 올라왔다. 그러나 임블리는 "내용물에 곰팡이가 낀 것이 아니다. 용기의 문제"라는 식으로 대응해 뭇매를 맞았다.
비슷한 사례는 더 있었다. 임블리에서 산 샤워기 필터에 곰팡이로 보이는 물질을 발견한 소비자가 나온 것이다. 이 소비자는 "지난달 20일쯤 임블리에서 구매한 샤워기 필터에서 곰팡이로 보이는 물질을 확인했다. 어머니께 선물로 드린 필터여서 더욱 믿고 싶지 않다. 임블리 측은 수거에만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곪았던 문제가 연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동대문에서 옷을 취급하는 도매업자 및 타 쇼핑몰 대표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임블리가 큰 덩치를 앞세워 각종 비용을 떠넘긴다든지, 단독 진행 상품을 선점해 다른 쇼핑몰에 피해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이 밖에도 임블리가 명품 브랜드를 카피했다는 의혹, 타 사이트 등에서 저렴하게 판매되는 제품을 임블리에서는 더 비싸게 판매한다는 비난도 나왔다. 지난해 식약처에서 임블리의 코스메틱 브랜드 블리블리의 인진쑥 밸런스 에센스 등이 광고 업무 정지 처분을 받은 사실도 드러나면서 논란이 커졌다.
임 상무의 화려한 삶도 도마에 올랐다. 임블리 모델로 활동하면서 착용한 명품 가방·액세서리를 회삿돈으로 사서 개인이 소장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자신이 보유한 블리블리 브랜드는 팔기만 할 뿐 자신은 쓰지 않는다는 의심도 나왔다. 화려하고 럭셔리한 '영 앤드 리치'의 일상 대부분이 공격 대상이 되는 분위기다.
뒤늦은 후회에도 '진정성' 논란…소비자 '뿔'은 여전
공교롭게도 임블리의 추락은 주 홍보 채널이던 SNS를 통해 번졌다. SNS상의 유명세가 브랜드 전체 이미지에 대한 타격으로 돌아온 것이다.
쇼핑몰 `임블리`에서 판매한 제품에 곰팡이가 피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 소비자들은 이를 지적하는 항의글을 SNS에 올렸고, 임지현은 사과문을 올렸다. 임지현 SNS 및 임블리 쇼핑몰 홈페이지 캡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임 상무는 지난 14일 사과문을 내고 "저희의 부족했던 초기 응대, 그로 인한 걷잡을 수 없는 여론 악화, 그것을 보고 있는 저는 너무 무서웠다"며 "저의 잘못된 판단으로 고객님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시점에 비난이 무서워 댓글을 막는 바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이어 "저는 소통을 잘한다고 자부했는데, 왜 그 소통을 막아 버리는 선택을 했을까 (후회된다)"고 했다.
임 상무는 "고객님들의 CS 문의가 왜 저한테까지 올 수밖에 없었는지, 왜 고객님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일부 악플에 눈이 가려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고 게시판에 남겨 달라며 삭제로 답했는지, 제대로 귀 기울이지 못하고 삭제로 답한 저의 부족했던 행동들이 쌓여 고객님들의 믿음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는 것을 왜 일찍 알지 못했는지 (후회한다)"고 반성했다.
남편 박 대표도 역시 같은 날 "이번 일을 통해 제품 판매와 대응에 너무나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사과문을 올렸다.
그는 "사업 확장에 신경 쓴 나머지 내부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지 못해 최근 사태로 이어졌다"며 "회사를 이끌어 가는 대표로 최근 사건의 모든 원인이 저에게 있음을 통감하고 책임을 받아들이고 있다. 예정됐던 전 임직원의 포상 휴가를 취소하고, 신뢰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신뢰를 잃은 소비자의 마음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임 상무는 지난 16일 오후 유튜브에 41분가량의 동영상을 올리고, "어디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굉장히 조심스럽다. 있는 그대로를 알려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제기되는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그는 "앞으로는 임블리만의 제품을 많이 만드는 등 문제가 된 부분은 개선해 나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튿날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이는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나와 다시 논란이 됐다. 설상가상이다. 강용석 변호사가 임블리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이슈화하고 나서면서 임블리는 벼랑 끝에 섰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갑자기 막대한 돈을 벌면서 사업 몸집도 커졌다. 의류 외에도 화장품·식품까지 영역을 확대하며 가치도 올렸다"며 "그런데 기업 시스템과 문화는 아직 성장하지 못했다. 전문경영인이 아닌 가족 경영을 그대로 이어 가면서 위기관리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결과 아니겠나"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