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3개 사 스포츠 채널과 SPOTV, 방송 4개 사가 간신히 합의에 이른 판을 흔들었다. 몽니를 넘어 억지라는 것이 야구계의 평가다.
뉴미디어 입찰과 관련해 긴 시간 동안 진통을 겪으며 합의한 사항을 놓고 방송 4개 사, 즉 지상파 3개 사 스포츠 채널과 SPOTV 컨소시엄이 제안서 서류 접수 마감일을 하루 앞둔 지난 20일, KBOP에 입찰 심사 위원 일부를 교체해 달라는 취지의 이메일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통신사를 모기업으로 둔 KT 그리고 SK와 LG 소속 KBOP 이사진이 심사에 참여한다면 공정한 결과가 나올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야구단과 모그룹의 관계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나올 수 없는 억지 주장에 가깝다. 입찰 참여자가 갑자기 프레젠테이션(PT)을 며칠 안 남겨 놓은 상황에서 심판을 바꿔 달라고 하는 셈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야구인들의 반발이 상당하다.
KBO 리그 유·무선 중계권 사업자 선정 입찰은 프로야구 산업화 발전의 초석을 다질 수 있는 발판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입찰 방식을 두고 KBOP와 10개 구단 마케팅 실무진 그리고 업계 관계자의 릴레이 회의가 이어졌다. 그간 특정 업체가 장악해 온 대행사 독점 구조를 바꾸고, 산업 발전을 추구하면서도 합리적인 이해관계가 구축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3개월간 협상 끝에 1월 28일에서야 첫 번째 합의에 이르렀다. KBO는 "'클린베이스볼' 실천의 일환으로 기존의 수의계약 관행에서 탈피해 공정하고 투명한 입찰 평가 방식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한다"고 했다. 닷새 이후인 2월 1일에는 세부 평가 기준도 발표했다. 기술 평가(40점) 비중을 높인 것이 골자다. 산업 발전 의지에 기여하려는 의지와 능력 없이 자금력만 앞세운 업체는 사업자로 선정될 수 없었다. KBOP는 "다양한 형태의 컨소시엄이 구성될 수 있다. 이해관계자 스스로 더 나은 발전 방향을 위한 움직임을 보여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 KBOP 소속 인원은 심사에서 빠지기로 했다. 오로지 10개 구단의 의사로만 새 사업자가 선정된다.
방송 4개 사 컨소시엄, 황당한 심판 교체 요구
21일 오전 11시30분에 마감된 서류 접수에는 SK텔레콤·LG U+· KT 통신 3개 사와 포털 2개 사(네이버·카카오)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한쪽은 방송 4개 사(KBS N·MBC SPORTS+·SBS Sports·SPOTV) 컨소시엄이다. 다른 업체 또는 컨소시엄의 입찰은 없다.
그동안 각자 노선을 가던 통신 3개 사가 손잡은 것 자체가 매우 파격적이다. 프로야구 유·무선 중계권 사업이 갖는 함의를 엿볼 수 있다. 적극적이지 않던 포털이 입찰에 뛰어든 배경도 주목된다. 어떤 권리도 취득하지 못하면 최장 5년(2+3년)에 이르는 사업 기간에 시장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있음을 감지했다. 이와 관련해 한 방송계 관계자는 "초반에 다소 소극적이었던 포털이 이번 입찰에 들어온 이유는 명백하다. 갈수록 커지는 해외 사업자, 즉 유튜브·넷플릭스 등이 국내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추세다. 권리를 취득한 새 사업자가 포털에 불리한 조건을 내세우거나 해외 사업자와 계약 체결 시 유리한 거래를 한다면 야구 콘텐트 관련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미디어 관계자는 "역대 어느 입찰에서도 통신 3개 사가 목소리를 같이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결국 한국 프로야구로 상징된 뉴미디어 권리의 중대성에 대해 이해를 같이한 것 아닌가 싶다"고 평가했다.
통신사와 포털의 연합은 이해관계가 맞다. 애초에 통신사는 자사 OTT(Over The Top) 서비스 제공 권리를 취득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포털의 영역을 굳이 넘보지 않았다. 컨소시엄을 구성해도 내부 권리 분배를 두고 이견을 좁힐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수의계약 대상자에서 벗어나 이제 공개 입찰에 들어간 포털은 기존 권리를 지키면서 출자 규모를 두고 통신사와 분쟁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포털과 통신사는 그간 기존 대행사인 에이클라가 가진 재판매 권리에 휘둘렸다. 기존 체제에서 문제점을 절실히 느낀 '동병상련' 입장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데 순풍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통신 3개 사와 포털 연합은 경쟁하는 방송 4개 사에 위협적이다. 실제로 낙찰 기준에 40%를 차지하는 기술 평가 경쟁력에서 크게 밀린다는 평가다. 통신사는 5G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처음부터 더 나은 서비스 질을 제공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포털은 이미 뉴미디어 분야에 견고한 입지를 다진 상태다. 현재 판도에서는 방송 4개 사가 가격 평가에서도 우위를 점하기 힘들다.
통신사를 모기업으로 둔 3개 구단을 향해 방송사들이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문제를 제기한 것은 결국 어설픈 견제에 불과하다. 서류 접수 마감 하루 전, 이 같은 움직임을 보인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통신사와 포털의 연합을 뒤늦게 파악하고 취한 조치일 가능성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견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방송 4개 사의 행보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방송 4개 사 컨소시엄은 입찰 방식이 공개 입찰로 정해지기 전후 이미 통신사와 연합을 추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술력을 보완하려는 취지로 보인다.
문제는 제시한 협상 내용이다. 통신사 입장에서 자금 부담은 상당 부분 자사가 안고, 권리 주도는 방송사가 하려는 의도가 크다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자사 O·T·T에 중계하거나 콘텐트를 활용하는 데 대해서도 기존 대행사가 요구한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봤다. 결국 에이클라가 독점하던 권리를 방송 4개 사가 나눠 갖겠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통신사 입장에선 이를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었다. 방송 4개 사는 포털과 연합 시도에서도 비슷한 내용으로 협상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통신사와 협업 가능성이 있을 때는 통신 3개 사를 모기업으로 둔 구단 KBOP 이사진이 심사위원으로 있는 데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만약에 통신사가 방송사와 연합했다면 그런 공문을 보냈겠나. 결국 한 배를 타려다 실패하고 불리한 상황에 놓이자 몽니를 부리는 것이다"라는 일침을 가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의사 결정 기구의 의결 사항을 무시한 것이다. 10개 구단 사장단이 실무 능력을 갖춘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힘을 실어 줬고, 기존에 단장만으로 구성된 KBOP 이사진도 구성원이 달라졌다. 그 과정에서 방식과 세부 평가 기준이 정해졌다. 3개월 넘게 걸린 장기전이었다. 그런 과정을 알면서도 심사를 일주일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상식을 벗어나는 요구를 했다.
통신사를 모기업으로 둔 A구단 관계자는 "야구단은 엄연히 독립 법인이다. 야구단이 통신 사업을 하는 게 아니다. 구단의 수입 증대를 위해 이사회에 들어가 있는데, 모기업이 통신시라는 이유로 평가에서 빠져야 한다는 논리는 납득하기 힘들다"고 했다. 통신사를 모기업으로 두지 않은 구단도 입장은 같다. B구단 관계자는 "야구단과 모그룹 관계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기 때문에 그런 요구를 했다고 본다. 무례한 조치다"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C구단 관계자는 "그동안 에이클라나 케이블 3개 사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된 룰로 변경되는 행태가 이어졌고, 이를 막기 위해 선수 출신 단장에서 마케팅 실무자로 KBOP 이사진을 재구성한 것이다. 기존 사업자의 횡포에 끌려다니지 않고 구단의 재산권을 지키겠다는 의지였다. 그런데 막판에 심사위원까지 교체해 달라는 요청을 할 줄 몰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 발전을 좌우할 KBOP와 7개 구단의 대처
통신사를 모기업으로 둔 세 구단은 KBO와 나머지 7개 구단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오는 25일 진행되는 기술 평가 PT와 심사에 앞서 방송 4개 사의 요구에 대한 대응이 결정된다.
세 구단은 적극적으로 반발할 생각이 없다. 자회사가 모기업 사업에 유리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 자체가 논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꼭 프로야구 사업이 아니어서도 그렇다.
한 구단 이사는 "KBOP가 방송사의 요구에 대응할 논리가 있고 다른 구단이 납득한다면 심사에 참여할 것이다. 우려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심사에) 빠질 것이다. 이 문제가 곡해돼 그동안 구단의 수익 증대와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들인 노력이 폄하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사실 이 문제는 지난달 31일 대전 모 처에서 열린 KBOP 이사회에서 이미 언급된 바 있다. 한 이사가 통신사를 모기업으로 둔 세 구단 이사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업체(컨소시엄)가 등장할 가능성을 꺼냈다. 당시 KBOP 인원과 다른 구단 이사는 "문제가 안 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미 합의가 있었던 것이다.
뉴미디어는 올드미디어 영향력이 줄어드는 환경 변화와 맞물려 매년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KBOP에 의뢰받은 모 광고기획사는 "2년 안에 157억원에서 200억원대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10개 구단의 수익 향상에 기여하며 리그 전체의 상생을 촉진할 수 있는 영역으로 기대받고 있다. 무엇보다 야구팬에게 전보다 나은 서비스 제공을 통해 야구라는 콘텐트의 경쟁력 강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평가다.
이번 심사에는 KBOP 인원 2명이 포함되지 않는다. 만약 통신사를 모기업으로 둔 세 구단 이사가 심사에서 빠진다면 7개 구단 이사만으로 사업자가 선정된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향후 5년 동안 뉴미디어 산업 발전 여부가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