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59)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2018 동남아시아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우승에 도전한다. 베트남은 지난 24일 하노이의 항더이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A조 최종전에서 캄보디아를 3-0으로 꺾었다. 이날 승리로 조별리그 4전 3승1무(승점 10)를 기록한 베트남은 말레이시아(승점 9)에 앞선 조 1위로 준결승 진출을 확정 지었다. 무패 행진 조 1위라는 성적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용은 더욱 훌륭하다. 1차전 라오스(3-0 승) 2차전 말레이시아(2-0 승) 3차전 미얀마(0-0 무) 그리고 4차전 캄보디아전 승리까지, 베트남은 상대에게 단 한 골도 내주지 않고 준결승에 올랐다. 무승부를 거둔 미얀마전을 제외하면 모두 두 골 차 이상 승리라서 공수 양면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 1위 준결승 진출, 무패 그리고 무실점으로 준결승에 오른 베트남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다. 조별리그 1차전부터 시원한 승리를 거두며 시작해서인지 분위기가 좋고, 적절한 타이밍에 불거진 안토니 헤이 감독과 설전으로 팀은 물론이고 베트남 국민들도 하나로 똘똘 뭉쳤다. 이 기세를 이어 간다면 박 감독이 베트남에 10년 만의 스즈키컵 우승을 안기는 것이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올해 초 베트남에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준우승을 안기며 '쌀딩크' '박 선생님'이라는 별명과 함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박 감독은 지난 9월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베트남을 4강에 올려놓으며 '박항서 신드롬'을 일으킨 바 있다.
베트남 축구사를 새로 써 내려가는 박 감독 그리고 승승장구하는 축구대표팀 덕분에 베트남 국민들은 연일 축제 분위기다. 특히 스즈키컵은 동남아시아 축구 최강을 가리는 대회인 만큼, 이 대회를 향한 베트남 국민들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동안 '박항서 매직'이 보여 준 기적 같은 돌풍에도 '아시아 최강'들이 버티는 국제 무대의 벽은 늘 높았다. 우승컵까지 손을 뻗기엔 최소 한 뼘씩 모자랐다. 하지만 같은 동남아시아 팀들과 치르는 대회라면 상황이 다르다. 스즈키컵이야말로 베트남이 오랜만에 정상에 서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아는 것은 바로 베트남 국민들이다. 베트남이 스즈키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2008년이 마지막이다. 그 뒤로 오랫동안 우승의 환희를 맛보지 못한 베트남 국민들은 자국 축구대표팀이 조 1위로 준결승 진출을 확정 지은 순간 금성홍기(베트남 국기)를 펄럭이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만원 관중이 들어찬 항더이경기장 안은 물론, 일찌감치 입장권이 매진되면서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밖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까지 서로 얼싸안으며 '박항서 매직'에 열광했다. 젊은이들은 베트남의 상징과 같은 오토바이에 금성홍기를 두르고 박 감독의 사진을 군데군데 붙인 채 시내를 질주했고 대형 스크린 아래서 단체 응원을 하던 사람들은 "박 선생님 만세"를 불렀다. 올해 초부터 이어져 온 '박항서 신드롬'이 더욱 두터운 신뢰와 함께 계속되고 있다.
'박항서 신드롬'에 열광하는 것은 베트남 국민들만이 아니다. 베트남 못지않게 '박항서 신드롬'에 열광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박 감독의 모국인 대한민국이다.
한국 지도자가 베트남 축구의 영웅으로 우뚝 선 이야기는 국민들의 마음에 뜨거운 자부심을 불러일으켰다. '베트남 축구 신화'의 주인공이 2002 한일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월드컵 4강 진출 신화'를 합작한 박 감독이라는 점도 축구팬들의 관심을 집중했다. 한국의 2002 한일월드컵 4강 진출 신화를 함께 쓴 박 감독이 현재 베트남을 흡사 16년 전 한국처럼 축구로 들썩이게 하고 있다는 점은 자부심과 함께 그 시절의 향수까지 불러일으켰다. '박항서 신드롬'이 계속될 때마다 베트남 못지않게 한국에서도 박 감독의 인기가 치솟았고, 그 결과 SBS Sports가 스즈키컵을 생중계하는 이례적인 일도 벌어졌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출전하지 않는 동남아시아 축구 대회를 국내 방송사가 생중계하는 것은 '박항서 신드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박 감독 덕분에 양국 간 교류도 한층 활발해졌다. 한국인들은 농담을 섞어 "박 감독이 대표팀을 맡고 있을 때 베트남으로 여행을 가야 한다"고 얘기했다. '박항서 신드롬' 덕에 베트남 내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가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베트남에서도 박 감독의 모국인 한국을 찾으려는 여행객들이 늘고 있다. 아시안게임 기간에는 한국행 항공권 검색량이 전년 동기 대비 56% 급증했고, 박 감독이 선수들에게 달여 먹인 고려인삼이 불티나게 팔릴 정도다.
이처럼 '박항서 신드롬'은 한국과 베트남을 모두 들썩이게 했다. 2002년의 추억을 떠올리며 박항서 매직에 푹 빠져든 한국이나, 자국 축구 사상 최고의 순간을 만끽하려는 베트남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박 감독의 승승장구를 바라고 있다. 응원과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박 감독은 다음 달 2일과 6일, 홈 앤드 어웨이로 치러지는 준결승에서 스웨덴의 명장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이 이끄는 필리핀과 결승 진출을 두고 다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