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를 살짝 벗었더니 새로운 염정아의 얼굴이 보인다. 올해 영화계 최고 다크호스로 떠오른 영화 '완벽한 타인(이재규 감독)'에서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남편의 아내이자, 아이 셋에 시어머니까지 모시는 전업주부로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 수현을 연기한 염정아는 이 시대 전업주부들의 마음을 대변하며 공감대 높은 설정으로 작품과 캐릭터를 모두 살려내는데 성공했다. 이재규 감독은 "염정아 배우 정말 연기 잘하지 않았냐"며 만족을 넘어 여러 번 감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배우라면 늘 선망하는 '도도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온 몸으로 타고난 염정아는 "그래서인지 수현처럼 푼수 같으면서도 러블리한 캐릭터가 끌렸고, 늘 목말라 있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완벽한 타인'을 관람한 관객들 역시 수현에 빙의한 듯, 수현의 상처에 같이 아파했고, 수현의 폭주에 함께 분노했다. 수현을 풍성하게 이끌어낸 것은 캐릭터와 작품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염정아의 내공이다. 염정아는 "언제 이런 작품을 만나 보겠냐"며 100% 이상의 만족감을 표했다. 그 결과는 흥행으로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여배우 설 자리가 늘 부족하다는 충무로에서 염정아는 여배우들을 대표하는 '큰 언니'로 꿋꿋하게 자신의 위치를 다지고 존재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완벽한 타인'에 이어 '뺑반(한준희 감독)', '미성년(김윤석 감독)' 촬영을 마쳤고, JTBC 'SKY캐슬'로 오랜만에 브라운관 복귀도 확정했다. "한동안 여배우가 연기할만한, 아니 여자들이 나오는 작품이 아예 없어 서러웠다. 요즘엔 끊임없이 활동할 수 있어 행복하다. 몇 년간 육아만 하다 나왔더니 입 찢어지게 웃게 되더라" 잃고 싶지 않은 베우 염정아의 다작을 응원할 수 밖에 없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유해진과 부부 호흡을 맞췄다. "유해진 씨와 부부 케미는 상상만 해도 재미있었다. 그냥 보기에는 내가 더 세고, 전문직 여성일 것 같고, 유해진 씨가 집에 있을 것 같은데 우리 영화에서는 정반대다. 호흡은 더할나위없이 좋았다. 리허설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유해진 씨 덕분에 리액션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배우다. 솔직히 너무 편했다." -여성 캐릭터 간의 관계도 단순하지는 않다. "나는 왕따를 당했고, 무시 당했다. 그것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들통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진(김지수)과는 같이 가야 하는 관계라고 생각한 것이다. 연기임에도 불구하고 감정 이입이 많이 됐다. 그 신을 찍을 땐 실제로 기분이 나빴다. 면전에서 그러니까…. 우리 남편 유해진 씨도 기분 나빠 하더라. '우리 마누라가 말이야~' 하면서 한 소리했다.(웃음)" -한 작품에, 한 프레임 안에 여배우가 한꺼번에 많이 등장한다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맞다. 작품에서 여배우들과 일 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여배우들끼리 만나면 이러지 않아? 저러지 않아?' 하는데 만나면 다 그렇게 좋은 사람일 수 없다. 친구로 목소리 출연을 해 준 라미란 씨도 얼굴은 아예 못 봤다. 근데 오래 된 친구처럼 느껴지더라. 목소리를 듣고 애드리브를 할 정도였다." -여러모로 신선한 촬영이었을 것 같다. "'이게 이렇게 힘든 거구나' 했다.(웃음) 아침에 현장에 갖고 간 에너지를 끝날 때까지 갖고 있어야 했다. 내 것을 찍을 때 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이 주가 될 때도 화면에는 계속 걸리니까 똑같은 에너지로 연기해야 했다. 그게 힘들더라. 우리끼리 엄청 의지했다. '사람이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에도 친해질 수 있구나' 생각했다."
-촬영 전 걱정은 없었나. "많았다. 어쨌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다 보니 '혹시 안 맞으면 어떡하지?' 싶더라. 근데 그런 일이 나는 아예 없었다. 그리고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쉬는 시간에는 분장실에도 올라가지 않고 모니터 뒤에서 입 벌리고 자기 바빴다. 세트장 공기가 안 좋았는데 잠은 잘 오더라.(웃음) 그리고 이렇게 7명의 배우가 한 자리에서, 균등한 비중으로 연기할 수 있는 작품을 언제 만나 보겠나. 에피소드도 뚜렷하고. 그래서 관객들이 더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하는 영화다."
-처음 만나는 배우들도 있었다. "해진 씨는 이전 작품에서 여러 번 같이 했지만 다른 작품에서 또 만나고 싶은 배우다. 진국이다. (조)진웅 씨는 보이는 것처럼 남자다운데 나이가 좀 어려서 그런지 난 귀엽더라.(웃음) (김)지수 씨는 동갑내기라 굉장히 잘 지냈다. 그리고 이서진 씨는 우리가 봐 오던 '꽃할배', '삼시세끼'의 모습이 진짜 그대로더라. 깜짝 놀랄 정도로 가식이 전혀 없다. 예를 들어 대본 리딩하고 두번째 만났을 때 커다란 인형을 들고왔다. 경호 씨에게 '애기 갔다 줘요' 하면서 툭 주더라. 누가봐도 새 인형인데 아닌 것처럼.(웃음) 생색을 전혀 안 내고 내는걸 싫어한다." -만약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다면 어떤 캐릭터가 탐나나. "준모. 이서진 씨가 연기한 캐릭터다. 영화적으로 재미있지 않나. 배우로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캐릭터고, 현실에서는 더 더욱 경험할 수 없는 캐릭터다. 흥미로울 것 같다."
-이재규 감독은 어땠나. "큰 소리 한 번 안 내는, 완전 신사다. 혼자 짊어져야 하는 무게가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 요만큼의 잡답할 여유도 없으셨던 것 같다. 저녁 식사도 같이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감독님은 배우들을 풀어주지만 원하는건 절대 양보 안 하는 스타일이다. 그 과정이 굉장히 나이스하다. 잡음도 없었다."
-결말은 마음에 드나. "난 지금 결말이 좋아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 물론 준모와 세경(송하윤)은 많이 찝찝하다. 다른 커플들은 어느정도 회복 가능하다고 보는데 준모와 세경은….(웃음) 내가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은 석호(조진웅)가 딸이 들어오는 문 소리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예진을 툭툭 치는 장면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쫙 나더라. '그래. 사는게 다 저런거지' 싶었던 것 같다." -비밀은 비밀일 때 진정한 비밀이 되지 않을까. "끝까지 모를 수 있다면 모르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근데 꼭 알게 되는게 문제다.(웃음) 모를 수만 있다면 모르고 싶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