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최강희(59) 전북 현대 감독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은 듯 하면서도 어딘가 조금 달랐다. 스플릿 라운드 돌입 이전에 우승을 확정지은 리그 최강팀 감독의 목소리치곤 씁쓸한 기색이 묻어났다.
그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무성한 중국행 루머 때문일 것이다. 최 감독은 매년 중국행 루머에 시달려왔지만 올 시즌은 유독 그 루머가 거세고, 구체적이며 정교하다. 누가 보면 이미 계약서에 도장을 다 찍은 상황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래서 최 감독은 15일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자신의 거취를 묻는 질문에 "소설이 이미 완성이 다 된 것 아닌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중국행 가능성을 크게 부정하진 않았다. "'나 간다' 하고 가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나 혼자 결정할 문제도 아니고 절차도 있다. 그런데 자꾸 주변에서 등을 떠민다"고 얘기한 최 감독은 "지인들도 '네가 더이상 그 팀에서 할 게 뭐있냐'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니까. 물론 가면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들 날 내쫓고 있다"며 피식 웃었다.
전북과 최 감독이 함께 한 시간이 어느덧 13년이다. A대표팀 사령탑으로 불려가 잠시 팀을 떠나있던 시기를 제외하곤 최 감독은 늘 '봉동이장'으로 살아왔다. 클럽하우스가 없어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사택에 얹혀살 때부터 시작해 리그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거듭난 지금까지 최 감독은 팀을 이끌고, 또 지키는 든든한 주춧돌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불어닥친 중국행 바람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다. 최 감독 스스로도 중국행에 관한 질문에 명확하게 부정하지 않고 있다.
중국 팀들이 제시한 어마어마한 연봉 때문은 아니다.
최 감독은 단호한 말투로 "내가 만약 중국에 간다면 돈 때문에 가는 걸로 비춰지지 않겠나. 하지만 그런 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여기서 감독을 영원히 할 수는 없고 언젠가는 떠나야한다. 물론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을 이은 최 감독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다. 어떤 식으로 하든 슬픈 일"이라고 덧붙였다.
최 감독이 몰려있는 '막다른 골목'을 한 단어로 정리할 순 없겠지만, 더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현실에 대한 자각이 큰 역할을 한 건 분명하다.
최 감독은 "울산전이 끝나고 기자회견에서도 그런 농담을 했다. 양천구 50대 (조기축구)팀에서 우승해도 이것보단 더 감동적이겠다고. 썰렁하고 우승한 게 맞나 싶더라"고 K리그 사상 첫 스플릿 라운드 이전 조기 우승을 확정짓던 날의 영광을 되짚었다. 영광스러운 날이었지만 최 감독에겐 '우승'이 아닌 그저 '리그 1승' 정도의 감흥밖에 주지 못했던 셈이다.
최 감독은 "2, 3위팀과 한두 경기 남겨놓고 극적으로 경쟁을 해야하는데, 지금 경남이 승점 50점을 따고 2위에 있지만 다른 팀들이 반성 많이 해야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매너리즘이라고 할 것까진 아닌데, 일단 내가 애절해지지 않으면 선수들도 금방 안다. 동기 유발이 안되면 선수들에게도 바로 영향이 간다"는 최 감독의 고민거리는 바로 이런 부분이다.
전북은 최 감독 체제 하에서 굳건히 1강을 유지하고 있지만 리그는 나날이 하향 평준화되고, 솟구치는 A대표팀의 인기와 달리 K리그는 여전히 찬바람이 몰아친다. 최강의 자리를 지키는 건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치열하게 싸우고 경쟁할 상대가 없다는 건 치명적이다.
"중국을 도전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끝을 흐리면서도, 최강희라는 장수는 새로운 전장을 원하는 마음을 완전히 숨기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 감독을 영입하려는 중국 팀들은 경쟁에 제대로 불이 붙었다. 최 감독은 "대제는 무슨, 그냥 동네 이장일 뿐"이라며 손사레를 쳤지만, '강희대제' 최 감독을 간절히 원하는 팀들은 마음이 바쁘다.
오래 전부터 최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냈던 상하이 선화가 적극적으로 영입을 추진 중이고 톈진 취안젠은 박충균(45) 코치를 임시 감독으로 불러들이며 최 감독과 '끈'을 잇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국리그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독소조항 없이 3년 계약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감독은 "톈진 회장이 한국 선수, 감독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나보고 감독 대행을 해달라기에 거절했는데, 어떻게 보면 볼모를 잡은 걸 수도 있고… 박 코치를 데려다놓으면 나하고 계속 교류할 테니까"라고 설명하며 "나 혼자 결정할 문제도 아니고, 일단 20일 이후로 모든 것을 미뤄놓았다. 20일에 발표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최강희가 없는 전북'을 상상하기란 지금도 쉽지 않다. 알렉스 퍼거슨(77)이라는 거목이 사라진 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겪었던 고난의 시간이 떠오르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정작 최 감독은 "독특한 사람이 와서 독특한 문화를 만들면 된다"며 덤덤하게 답했다.
"축구 감독은 그런 도전 의식, 긍정적인 의식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와 비교되고 그런 게 어딨나"고 얘기한 최 감독은 "누가 와도 자기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최강희의 뒤를 이을 새로운 '독특한 사람'이 언제 올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당장 다음 시즌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더 먼 훗날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