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 차가우리만치 똑 떨어지는 발성·발음과 달리 실제 대화를 나누는 조승우(39)는 말 끝을 흐리며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의외의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소년같은 미소는 덤이다. 그의 대화에는 눈치와 계산이 전혀 없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속내를 알고 있다는 것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할 말은 하고, 하고 싶지 않은 말은 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매번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그래서 조승우와의 인터뷰는 '홀린다'는 표현이 딱이다.
영화 '명당(박희곤 감독)'으로 '내부자들(우민호 감독·2015)' 이후 약 3년만 스크린 컴백이다. 사극 장르로 따진다면 '불꽃처럼 나비처럼(김용균 감독·2009)' 이후 무려 10년만. 그 사이 조승우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 했고, '믿고보는'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조승우라는 이름만으로 찍은 최고치의 신뢰도다.
완성된 영화는 조승우가 출연한 작품이기에, 그 이상으로 기대감이 높았기에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승우는 "다 알고 시작했다"며 "무난해 보일지언정 깨끗하고 순수한 인물을 따라가고 싶었다"고 영화와 캐릭터를 넓은 마음으로 감싸 안았다. 작품은 의심이 가도, 조승우와 그의 선택은 믿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 지성이 깊은 호감도를 표하더라. "몸둘 바를 모르겠다. 지성이 형은 (이)보영이 누나 떄문에 알게 됐다. 드라마 '신의 선물'을 함게 할 때, 누나랑 형이랑 영상 통화를 하면 옆에서 인사 드리고 그랬다.(웃음) 동네가 비슷해 여러 번 만나 맥주도 같이 마셨다. 형이 또 애처가 아닌가. 보영이 누나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보고 싶다고 하니까 컴퓨터 앞에 앉아서 직접 예매를 했다고 하더라. '너무 잘 봤다'면서 케익도 전해주고 갔다. 형은 한결같이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이다. 이번에 만나게 돼 좋았다."
- 대립하는 입장에서 은근한 신경전은 없었나. "기싸움은 없었다. 우리 되게 좋았다. 언론에서는 '연기 대결을 펼친다'는 말을 자주 쓰던데 난 그 말이 웃긴다. 연기는 호흡하는 것이고, 앙상블을 맞춰가는 것이다. 출연한 배우들끼리 '에이씨, 내가 더 잘해야지? 쟤가 더 멋있네?' 하지는 않는다. 누구든 그럴 것이다."
- 배우로 만난 지성은 어땠나. "형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연기한다. 지치지도 않는다. 그런 형을 보면서 '난 진짜 게으른 배우구나' 돌아보게 됐다. 난 현장에서 몸이 피곤하고, 컷 수가 많아지면 감독님에게 무언의 협박을 하는 스타일이다. '아니 이거 왜, 이거 또 찍어? 360도 다 돌려서 찍을라 그래? 아바타 찍어?'라고 한다.(웃음) 근데 형은 이어폰 딱 끼고 있다가 '저 가요?' 하면 끝이다. 흐트러짐이 없고 만족할 때까지 찍는다. '한 번만 더 해 보면 안 될까요?'라는 말이 늘 나온다. 자신만의 책임감과 절박함이 있는 것 같다."
- 유재명과는 세번째 호흡을 맞췄다. "형과는 '호흡'의 단계가 지났다. 따로 리허설을 하지 않아도 들어가면 합이 착착 맞는다. 우리 둘을 풀어놓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 30분짜리 즉흥극 하나는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알고보면 형도 참 귀여운 사람이다. 첫인상은 지적이고, 바른생활 사나이 같고, 진중하기만 할 것 같은데 유머 코드가 남다르다. 아재 같기도 하면서 소년 같은 모습도 있다. 친형처럼 이야기가 잘 통한다. 그런 면에서 지성이 형은 아빠같다. 모두를 어우르는 어미새? 하하." - '비밀의 숲'과 '명당' 모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연기다. "'비밀의 숲' 하기 전까지 뮤지컬을 많이 했다. '지킬 앤 하이드' 10주년, '헤드윅' 10주년, '맨 오브 라만차' 10주년, '베르테르' 15주년까지 연달아 했다. 초연 때부터 참여했던 작품이라 거절하지 못했고, 너무 좋아하는 작품들이기도 했다. 그 모든 작품을 2년에 걸쳐 하다 보니 '과하게 감정을 소비하고 있구나'라는 마음이 들더라. 그 때 '비밀의 숲'을 만났다. '감정의 대부분을 잃어버린 인물'이라는 설정이 새롭게 다가왔다. 거기에 검찰 내부에서 벌어지는 시스템에 문제를 다룬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 배우로서 탐날만한 캐릭터다. "내 감정을 내비치지 않으면서 사건에 집중해 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감정을 뿜어내기에만 바빴던 나에게 굉장히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내가 이렇게 웃음이 많고, 장난기 많은 사람이었나?'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됐다."
- 반면 '명당'의 박재상은. "음…. 일단 흥선 역할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지성이 형 대단하다'는 결론으로 끝났다.(웃음) 난 분명 그렇게까지 다채롭게 연기하지는 못했을 것이고, 찍다 지쳤을 수도 있다. 자꾸 스포츠와 비교하게 되는데 야구에서 보면 포수가 눈에 뛰진 않지만 정말 많은 일을 한다. 코치의 사인을 받아 투수에게 주고 내야수들에게 주고 때론 외야수들에게까지 준다. 속에서 꿈틀대지만 지켜야 할 선과 위치가 있다. 박재상도 마찬가지다."
>>③에서 계속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