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밥 딜런은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훌쩍 떠났다. 사흘 간의 내한 일정을 그 누구보다 조용하게 소화했다. 공항 필수 코스인 입국 사진은 물론, 홍보용으로 쓰일 공연 사진도 허락하지 않았다.
밥 딜런은 지난 27일 국내 공연을 시작으로 아시아 투어 포문을 열었다. 29일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오른 뒤 8월 6일까지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팬들을 만난다. 2016년 뮤지션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처음 열린 투어에 각국의 관심이 쏟아진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밥 딜런은 공연 외적인 러브콜은 모두 거절했다. 미국 현지 요청 행사도 'NO'로 일관하며 오로지 음악에만 초점을 맞췄다.
관계자에 따르면 공연 외적인 이야기엔 회신을 받는 것 조차 어려웠다는 전언이다. 인터뷰나 기자회견은 진행하지 않기로 투어 시작 전부터 선을 그었고, 공연장에서도 얼굴이 비추는 것을 꺼려했다. 심지어 공연장엔 스크린도 없었다. 1~2층 관객들은 피아노를 치고 있는 밥 딜런의 대략적인 움직임만 가늠할 수 있는 정도였다. 무대효과도 무대를 알려주는 최소한의 조명뿐인데다가 멘트 없이 음악으로만 채워진 2시간 공연에 호불호가 갈렸다. 뮤지션과 함께 호흡하고 즐기는 공연에 익숙한 한국 관객들은 밥 딜런식 일방적 공연 호흡에 당혹감을 보이기도 했다.
거장은 불친절했지만 민폐를 끼치는 것도 없었다. 까다롭게 브랜드를 따지거나 과한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제작진에 따르면 불고기 국수와 와인 세 병, 재떨이가 그의 요구사항 전부였다. 대기실 내 금연구역이라는 설명에 재떨이가 준비되지 못한 것도 흔쾌히 수긍했다. 자신을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에도 최선을 다했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 확정한 세트리스트에 앙코르 2곡을 추가, 박수와 호응에 응답했다.
관계자는 "자신의 얼굴이 비춰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음악 외적인 부분엔 관심이 전혀 없다. 노벨상도 직접 받으러 가지 않았을 정도로, 노래만이 그가 추구하는 전부였다"고 전했다. 밥 딜런은 노벨상 수상 6개월 후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그것만이 중요하다"는 뒤늦은 소감을 말한 바 있다.
밥 딜런은 미국 문화를 넘어 전반적 팝 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유대인 집안 출신으로 1960년대부터 저항음악의 대표로 꼽힌다. 1997년에 발표한 정규 30집 '타임 아웃 오브 마인드'는 제40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최고의 영예인 올해의 앨범상을 비롯하여 3관왕을 기록했다. 그래미 어워즈의 다양한 수상 경력 외에도 1991년 그래미 어워즈 평생 공로상, 2008년 퓰리처상 특별상, 2012년 미국 대통령 수여 자유훈장, 2013년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종 도뇌르, 2016년 노벨문학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