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하루 전날인 22일(현지시간)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열린 공식훈련.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멕시코 축구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을 둥글게 모아놓고 가운데로 들어갔다. 전광판에 표시된 훈련 공개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데도 오소리오 감독의 얘기는 끝날 줄 몰랐다. 오소리오 감독은 선수들을 돌아보면서 손짓 발짓까지 동원해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교수님'의 '열강'은 예정된 훈련 공개 시간 15분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신태용호가 둥글게 모인 채 짧고 간단하게 지시사항을 끝내고 훈련에 들어간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오소리오 감독이 경기 전 훈련 때 언제나 이렇게 열정적으로 '강의'를 펼치는 지 궁금했다. 훈련이 끝난 뒤 미디어 센터에서 만난 멕시코 민영방송 '텔레비사'의 에릭 마우리시오 이마이 기자에게 "오소리오 감독이 원래 이렇게 선수들에게 길게 지시 사항을 내리는가"라고 묻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 좀 더 열정적이었다"고 답한 이마이 기자는 "분명히 내일 경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에서 특별했던 것은 맞다"고 덧붙였다.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경기를 치러야 하는 한국 이상으로, 멕시코에도 이번 2차전 한국과 경기는 매우 중요하다. 1차전 독일전 승리에 이어 2연승으로 16강 진출을 사실상 확정지을 수 있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철저한 분석에 빛나는 '맞춤 전술'로 독일을 거꾸러뜨리며 지략가 이미지로 한국에 공포를 안겨줬지만, 사실 오소리오 감독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멕시코 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 경기력, 결과 등 모든 면에서 팬들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다혈질의 멕시코 팬들은 출정식 때 스코틀랜드전에서 승리를 거둔 대표팀 앞에서 "오소리오를 경질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멕시코 민영방송 TV 텔레비사의 에릭 마우리시오 이마이 기자 / 로스토프나도누(러시아)=김희선 기자
하지만 이 모든 비난 속에서 버텨낸 오소리오 감독과 대표팀은 멕시코에 독일전 승리라는 짜릿한 선물을 안겼다. 오소리오 감독은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2017 북중미 골드컵 당시 (4강에서)자메이카에 패한 뒤 많이 울었다"며 "경기력이 좋지 않은 시간들을 잘 극복했고 그 덕분에 여기 올 수 있었다. 우리는 탄탄해졌다"고 힘든 시간들을 돌이켰다.
이마이 기자도 "오소리오 감독은 몇 년 동안 전국적으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독일전에서 자신이 준비된 감독이고 상대를 잘 연구했다는 걸 증명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멕시코 취재진들은 여전히 오소리오 감독에 대해 100% 완벽한 신뢰를 보내고 있진 않다. 이마이 기자는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펼친 건 맞지만 이제 막 대회가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경기는 겨우 90분 밖에 하지 않았고 오소리오 감독은 아직 확신을 만들어가는 중"이라고 냉정하게 분석했다.
확실한 건 오소리오 감독이 '확신을 만들어 가는 과정', 그 여로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한국과 맞대결이 있다는 점이다. 한국전에서 비기거나 패한다면, 오소리오 감독이 독일전에서 쌓아올린 여론의 극찬은 금세 예전의 날선 비난으로 돌아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소리오 감독은 한국전을 앞두고 선수들을 모아놓고 10분 넘게 '열강'을 펼쳤다. 이기기 위해.
주목할 선수로 기성용(스완지 시티) 손흥민(토트넘) 그리고 김신욱(전북 현대)을 꼽은 점도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국내에서는 '스웨덴전에서 한 일이 없다', '김신욱을 왜 쓰냐'는 비난이 높은 상황이지만, 철저한 분석으로 전차군단을 무너뜨린 오소리오 감독은 김신욱을 분명한 위협 요소로 봤다. 이마이 기자는 "몇 달간 한국을 분석한 오소리오는 김신욱이 위협적이라고 봤다"고 귀띔했다. 이어 "오소리오는 연구를 많이 하는 감독이고 그래서 많이 아는 감독"이라며 "우리도 김신욱이 중요하다고 본다. 몇 경기 보니 피지컬이 좋고 공중전에 강한 선수라 김신욱이 멕시코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