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임현정(44)이 돌아왔다. 11년이 걸렸다. 임현정이 11년의 긴 공백의 얼음을 깨고 봄 바람과 함께 사랑 노래로 컴백했다. 1996년 1집 '양철북'으로 데뷔해 2집 '가위손(1999)', 3집 '은하철도 999(2000)' 등을 잇따라 내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가며 싱어송라이터로 이름을 알린 임현정. 4집 타이틀곡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은, 5집 '사랑의 햐기는 설레임을 타고 온다' 등으로 히트곡을 내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는 돌연 음악 활동을 멈췄다. 건강 문제 때문이었다. 2008년 후반부터 공황장애 증세가 있다가 2012년 12월 정점에 이르렀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 곁을 떠났던 임현정이 다시 건강하고 밝은 미소로 신보를 발표했다. 11년 만에 낸 싱글 '사랑이 온다'는 35인조 오케스트라 편성의 경쾌하고 어쿠스틱한 사운드의 곡. 반복되는 따뜻한 가사가 봄, 그리고 임현정과 딱 어울린다. "굉장히 긴 시간이었죠. 몸도 움직일 수 없이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어요. 지금은 매우 좋아요. 단독 콘서트도 꼭 하고 싶어요."
-11년만에 컴백했는데 달라진 가요계에 적응이 됐나. "걱정 보다 빨리 익히고 적응하고 있다. 매일 차트 들어가서 확인도 해보고.(웃음) 가장 생경했던 건 녹음하는데 현장이 달라진 거다. 필요한 부분을 드러내는 식으로 녹음을 하는데 예전엔 다 녹음을 했었다. 또 역주행이라는 말이 참 재밌는 것 같다."
-앨범을 내지 않았던 공백기 때 어떻게 지냈는지 가장 궁금하다. "굉장히 긴 시간이다. 2008년 후반에서 2009년 초반 쯤 공황장애가 왔다. 그땐 지금처럼 공황장애가 보편적으로 알려진 병이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엔 공황장애인지도 몰랐다. 누워있으면 나아지겠지, 운동을 하면 나아지겠지 했는데 그 증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머리가 멍한 채로 그냥 침도 맞으러 다니고 채식도 해봤다. 생각을 비우려고 여행도 다녔다. 그런데 그러다가 완전히 쓰러져버렸다. 2012년 12월에 굉장히 심하게 증세가 나타났다. 그 사이ㅔ 개인사도 있었고, 몸도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공백기 동안 힘든 몸으로 여행을 다녔다. 약도 한 짐씩 싸가지고 다녔다. 그런 식으로 해외를 다니다가 유학을 하려고 했다. 근데 2012년 12월 심장이 메트로놈처럼 뛰기 시작했다. 나중엔 한 쪽이 거의 마비처럼 왔다. 그때 이후로 체력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졌고 손만 닿아도 에너지가 감당이 안될 정도로 몸이 힘들었다. 약간의 바람만 스쳐도 온 몸이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병원에 갔더니 심장엔 문제가 없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무명의 병이었다. 그래서 자연 치유를 택했다. 누워서 곡을 쓰긴 했는데 데모 녹음을 할 힘이 없었다. 침대 뒤쪽에 건반을 두고 음악 작업을 하는 식이었는데 그 과정이 꽤 길었고 반복이 됐다. 2012년 12월 굉장히 심했던 증세가 2013년 회복이 되는가 싶었다. 그래서 2014년에 다시 또 여행을 가려고 했다. 비엔나를 워낙 좋아해서 한 달 계획을 잡고 여행을 갔다. 근데 비엔나에 간 지 일주일 만에 휠체어를 타고 집으로 실려왔다. 처음 보다 공포감이 더 크고 불안 장애가 심했다. 버티고 버티다가 이젠 정말 더는 못 버티겠다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가 호흡이 곤란할 정도였다. 정말 힘든 시기였는데 그때 전인권 선생님이 '현정아 살자. 병원가자'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래서 병원에 갔다. 심장 자체의 문제는 없는데 부정맥은 있었다. 병원에선 모든 게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문제, 우울증이라고 했다. 조울증도 있었다. 1년 간 치료해준 분은 조울증이라고 보지 않았는데 나중에 조울증이라는 걸 알게 됐다. 두 번째 알게 된 의사 선생님은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불안 장애가 있고 워낙 섬세하고 예민하다고 했다. 육체적으로 건강하니 '운동을 해라'라고 의사가 조언했다. 그래서 휠체어 생활을 하다가 정말 굳은 의지로 다음 날 부터 운동을 했다. 2016년 12월에 또 재발했다가 2017년 1월에 퇴원했다. 그렇게 공백이 생겼다."
-건강은 완전히 회복됐나. "내 병은 예민해서 생긴 병이다. 어린 나이에 큰 사랑을 받았고 계속 곡을 발표하면서 점점 더 스스로에게 압박을 줬던 것 같다. 실패하면 다 내 책임이라는 생각도 많았다. 이런 성격 때문인지 남들이 못 느끼는 부정맥도 더 심하게 느끼고 약을 먹었을 때도 다른 환자들이 먹는 최소양인 4분의 1을 투약해도 그 약을 먹자마자 호흡이 편해질 정도로 몸 전체가 예민하다. 긴장을 하거나 낯선 상황이거나 그러면 부정맥이 심해지긴하는데 그래도 이젠 괜찮다."
-새로운 삶을 얻는 기분일 것 같다. "마음가짐이 훨씬 편안해졌다고나 할까. 내가 어떤 음악을 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크게 보여야한다는 생각이 예전엔 강했다. 목소리가 빈약한데 사운드적으로 어떻게 하면 밀리지 않을까 고민을 했는데 이젠 '그냥 이게 접니다'라고 예전보다 편하게 음악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과정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예전엔 원하는 사운드가 나오지 않으면 스스로 압박을 했고 연주하는 분들을 바꿔가면서 여러 번 불러서 녹음을 하고 그랬다. 연주를 다시 하러 일곱번 다시 오는 분들도 있었다. 근데 이젠 그냥 음악을 같이 나누는 시간이 즐거워졌다."
-활동을 돌연 접은 건 오직 건강 문제 때문이었나. "다음 제작자가 갖는 기대가 있었다. 좋은 곡을 만들어야하는 압박이 그래서 항상 있었다. 곡을 한 번 쓸 때 한 음을 두고도 이 음을 올릴까 말까 100번 넘게 생각한다. 드럼 소리를 넣을 때도 다른 것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사 수정도 보컬을 하기 전에 100번 이상 고쳤다. 마스터링까지 끝내면 그리고 나서도 뭘 잘 못 했는지 계속 들었다. 그런 압박 때문인지 아무리 잘해도 다른 사람이 더 잘하는 것 같고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런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적이었던 것 같다. 오죽했으면 그때 3집 마무리 하고 단독 콘서트를 하자고 제작자가 제안했는데 '난 음악적으로 부족하다'며 회사를 나와버리기도 했다.(웃음) 그땐 농사를 지어볼까도 생각했다."
-농사와 임현정, 상상이 안된다. "농사를 지으려고 했지만 음악을 아예 안 하려고 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때 그 순간 만큼은 '기억이 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음악으로 대중들이 날 떠올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기억이 되는 게 싫었다. 그래서 포털사이트에 직접 전화해서 프로필도 지웠다. 사실 1집부터 3집까지는 데뷔하기 전부터 난 어떤 앨범명으로 앨범을 내고, 어떤 진행으로 곡을 쓸거라는 계획이 다 있었다. 4집 부터는 던져진 곡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발표한 음악이 내 것인가. 우주 전체즤 자산인가에 대한 생각까지 뻗어나갔다. 난 알려진 곡일 수록 여러분들의 곡이라고 생각한다. 그 곡을 발표횔 기회를 가졌을 뿐, 내 곡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 때쯤 여행을 다니면서 음악도 자연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먹거리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정말 심각하게 농사를 지으려고 했었다. 그때가 30대 중반이었다."
-포털사이트에 프로필을 다시 올렸던데. "이번에 컴백하면서 다시 프로필을 복구했다. 그때 기분이 묘했다. 뭐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2월 윤도현의 새 싱글 '널 부르는 노래'를 함께 프로듀싱했다. 오랜만의 음악 활동이었다. "윤도현 선배님이 굉장히 많은 도움을 주셨다. 2017년 여름부터 녹음을 시작했는데 주변에 음악하는 동료들도 많이 도움을 주셨고, 그 과정에서 몸도 빨리 회복됐다. 사실 그 전에 윤도현 선배님과 친하게 교류를 해오진 않았지만 데뷔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또 데뷔할 때 도움도 많이 받았다. 무대에 게스트로 세워주기도 했다. 음악을 만들어두고 녹음을 해야하는데 병이 재발해서 녹음을 혼자 다 하지 못 했다. 그때 완성된 노래가 있는데 묻히는 게 아깝다고 윤도현 선배님께 피처링을 부탁했다. 그때 녹음을 세 곡 정도 마쳤다."
-사랑 노래를 많이 쓴다. "사랑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난 사랑에는 쿨한데 사람한테는 쿨하지 않는다. (웃음) 그게 가사에 담기는 것 같다. 그때 당시 생각하는 것들, 감정, 상황 등에 따라 노래가 나오는 것 같다. 때로는 내 경험담이 공감대를 못 사더라. 그래서 영화, 소설 등을 보면서 영감을 얻고 가사로 표현하기도 한다. 내 곡 중 경험담을 담은 가사는 절반 정도인 것 같다."
-음악에도 계속 변화를 줬다. "2집 이후부터 모던록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나에게 새로운 장르는 클래식하고 어쿠스틱한 것이었다. 지금도 그걸 향해 가고 있고 이번 신곡도 연장선이다. 일렉기타도 물론 사람이 만들고 기타의 몸체는 나무니깐 완전히 자연에서 나온 게 아니라곤 할 수 없지만 그것 보다 더 자연이 가진 음악을 내는 쪽으로 가려고 하고 있고, 그걸 지향한다. 록을 너무 좋아했는데 여행을 다니면서 점점 클래식하고 자연스러운 소리에 빠져들었다. 어느 날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를 듣는데 '아 이게 진짜 아름다운 소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쿠스틱한 장르의 음악을 그래서 지금 추구한다."
-신곡 소개도 해달라. "'사랑이 온다'는 어쿠스틱한 사운드가 특징이다. 자연의 소리, 자연스러운 음악을 만들고 싶어서 만든 곡이다. 노래의 감수성에 맞게 연주자들도 찾았다. 또 지금까지의 경험한 것들이 가사에 담겨있다."
-다음 곡이 나오는데까지 또 한참이 걸리는 거 아닌가. "사실 '사랑이 온다'가 예상 보다 7개월 더 걸려서 나왔다. 작업하다가 부정맥이 오면 또 한 달 쉬고, 괜찮으면 또 작업하고 이런 것을 반복해서 미뤄졌다. 사실 다음 앨범은 처음엔 내년 봄으로 생각했는데 '사랑이 온다'가 나오기까지 과정을 보면 내년 가을로 생각해야할 것 같다.(웃음) 다음 앨범에 발표할 곡은 다섯 곡이 이미 완성된 상태다."
-앞으로의 계획은. "콘서트를 꼭 한 번 해보고 싶다.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소통하고 싶다. 긴 시간이 걸렸다. 앞으로 건강한 모습으로 자주 찾아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