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선수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다. 아마추어 야구선수들이 고교를 졸업한 뒤에 곧장 미국 무대로 진출을 결정하는 데 좀 더 신중하길 바란다. 태평양을 건넌다고 해서 모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을 것으로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1994년 한양대에 재학 중이던 박찬호가 국내 선수로는 처음으로 미국에 진출했다. 당시에 파격적인 계약금 120만 달러에 LA 다저스와 계약했다. 이후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 무대에 도전하는 선수가 줄지었다. 박찬호를 시작으로 2017년 1월까지 총 66명의 선수가 미국 구단과 계약했다. 일본에 진출한 국내 선수(18명)를 크게 앞지른다.
66명 가운데 고교생 신분으로 미국에 진출한 비중이 47%(31명)로 가장 높다. 대학생(11명), 프로팀(18명, 일본→미국 포함) 소속으로 건너간 경우보다 많다. 특히 2009년에는 역대 최다인 8명의 고교 선수가 KBO 리그가 아닌 미국에 진출했다. 2008년에도 6명이나 된다.
지금까지 고교를 졸업한 뒤 미국 무대에 도전해 성공한 선수가 몇 명이나 되는가. 추신수(텍사스)를 제외하면 딱히 없다. '5년 안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겠다’고 하나 결코 쉽지 않다.
연합뉴스
이번 칼럼을 준비하면서 김선우 해설위원과 통화했다. 1997년 고려대에 재학하던 시절 보스턴과 125만 달러에 계약한 김선우는 총 5개 팀에서 활약하는 동안 13승13패 평균자책점 5.31을 기록했다.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올라서는 데 4년이 걸렸다. 휘문고 고려대 시절 김선우의 스펙을 생각해 보라. 그가 이 정도의 어려움을 겪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만큼 낯선 땅에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박찬호는 특이한 경우다. 강속구를 뿌리던 그는 처음부터 메이저리그 캠프에 합류했다. 그만큼 큰 기대를 받았다.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와 시애틀에서 한솥밥을 먹던 추신수는 오랜 기간 엄청 고생하다가 클리블랜드로 옮기면서 잘 풀리기 시작했다. 류현진은 KBO 리그와 국제 무대를 통해 검증받았기에 곧장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 진출 붐이 불었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는 주로 대학 선수가 많이 미국 무대에 도전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마추어 선수들이 곧장 프로로 오지 않고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꽤 많던 시절이다. 대학에 재학 중에 해외 무대로 도전을 선택하곤 했다. 서재응-김선우-조진호-최희섭-김병현 등이 그랬다. 최근에는 고교생들의 메이저리그 도전이 많은데, 하물며 20여 년 전에 미국 무대를 두드린 선배 대학생들은 현재 고교 선수보다 실력이 훨씬 좋았다.
이제 갓 스무 살을 앞둔 고교 선수가 미국 무대에서 성공하기란 기량과 환경 등에 있어 결코 쉽지 않다. 필자의 생각은 KBO 리그에서 기술을 연마하고 경험을 쌓은 뒤에 FA나 포스팅을 통해 빅리그에 도전하는 것이 더 맞지 않나 싶다.
최근 배지환의 사례를 보면 안타깝다. 올해 경북고를 졸업한 배지환은 2018년 신인 드래프트에 불참을 선언한 뒤에 미국 진출을 택했다. 애틀랜타와 30만 달러에 계약하고 약 한 달간 교육 리그에서 뛰었지만, MLB 사무국은 배지환과 애틀랜타 구단 사이의 계약을 승인하지 않았다. 청소년 대표까지 뽑혔으면 틀림없이 발전 가능성이 있는 선수다. 그는 계약 무효화로 최근 일본 독립리그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다. 처음부터 한국 프로야구의 문을 두들겼다면 지금쯤 행복하게 운동할 수 있을 텐데 얼마나 손해인가.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돌아오면 여러모로 KBO 리그에서도 쉽지 않다. 해외파 특별지명 2년 유예 기간이 필요하고, 군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고교를 졸업한 뒤에 곧장 프로 구단에 입단한 동기생들과 비교하면 대략 7~8년 정도 늦게 뛰게 된다. FA(프리에이전트) 자격 획득이 늦어져 금전적으로도 손해가 클 수밖에 없다. 뒤늦게 KBO 리그 무대를 밟더라도 성공을 보장할 순 없다. 다시 돌아온다고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그나마 봉중근 류제국(이상 LG) 송승준 채태인(이상 롯데) 등이 고교를 졸업한 뒤에 미국에 진출했으나 KBO 리그로 돌아와 나름 성적을 올렸다.
미국 무대를 가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면 좋다. 다만 아무리 야구를 잘해도 잘 판단해야 한다.
요즘 들어 에이전트가 우후죽순 많이 생겼는데 이들의 '달콤한 제안’에 너무 현혹돼선 안 된다. 부모들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특히 중간에서 아마추어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도자는 선수와 부모가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개인적인 욕심 없이 조언해야 한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해외로 건너가 실패해서 돌아오는 경우가 너무 많다. 젊은 선수의 야구 인생이 걸린 중요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한순간의 진로 결정으로 '예비 스타’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확 바뀔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