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한국GM을 두고 정부와 GM이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국GM 모회사인 GM이 철수설을 흘리며 정부를 압박해 지원을 이끌어 내려고 하자, 정부는 돈을 달라고 하기 전에 경영 정보부터 투명하게 밝히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협력 업체를 포함해 약 30만 명의 일자리가 달린 이번 협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GM, 일자리 30만 개 볼모로 정부 수혈 요구
11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GM은 최근 한국GM의 경영이 어렵다며 한국 정부에 지원을 요구했다.
지난 7~10일 GM의 한 고위 임원이 한국을 찾아 30만 대 이상을 수출할 수 있는 신차를 한국GM에 배정하는 것을 조건으로 정부와 산업은행(이하 산은)에 유상증자를 요청했다.
GM이 제안한 유상증자 계획은 2조~3조원을 목표로 GM과 산은이 한국GM에 대한 보유지분 비율대로 자금을 투입하자는 것이다.
3조원은 2014년 이후 작년까지 한국GM에 누적된 순손실(최소 2조5000억원 이상 추정)과 비슷한 규모다. 한국GM은 2014~2016년 3년간 약 2조원에 가까운 손실을 냈다. 작년에도 2016년과 비슷한 6000억원 정도의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GM의 지분은 GM이 76.96%, GM과 협력 관계를 맺은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6.02%를 갖고 있다. 2대 주주인 산은은 17.02%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GM이 최대 3조원의 유상증자를 하려면 GM과 상하이차가 2조5000억원을, 산은은 5000억원을 투입해야 한다.
GM은 한국GM에 대한 산은의 대출 재개도 요구했다. 자본잠식 상태인 한국GM은 신용등급이 낮아 국내외 금융회사에서 차입이 불가능했다.
또 GM은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 혜택을 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GM은 정부에 요청과 함께 압박도 했다.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일 애널리스트 등과 콘퍼런스콜에서 한국GM과 관련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어떤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성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합리화 조치나 구조조정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에 ‘지원이 없으면 철수하겠다’는 일종의 협박을 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정부 “경영정상화 방안부터 내놔라”
GM의 요구에 정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당장 정부가 나서 수천억원대의 혈세를 투입한다고 해도 GM이 정상화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GM은 2013년 쉐보레 브랜드를 유럽에서 철수한 뒤 한국GM의 수출 물량이 24만 대가량 급감했다.
내수시장도 신통치 않다. 한국GM의 전체 판매량은 2014년 63만532대에서 지난해 52만4547대로 10만 대 넘게 감소했다.
GM의 과거 행보 역시 정부의 지원을 부담스럽게 하고 있다.
앞서 GM은 유럽과 호주에서 정부 지원금을 받아 놓고도 전면 철수한 전례가 있다. 만약 GM이 우리 정부의 지원을 받고도 철수한다면 자금 지원 결정 배경을 두고 책임 소재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GM의 요청을 무시할 수는 없다.
현재 한국GM의 직간접 고용 인력이 30만 명에 달하는 만큼, GM이 철수를 강행할 경우 대량 실업 사태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일자리 문제 하나만을 놓고 판단하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GM의 재무상태, 경영정상화 방안, 자동차 산업 전반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한국 철수를 전략적 카드로 활용해 정부 지원을 얻어 내자는 게 GM의 전략의 분석된다”며 “GM이 먼저 경영정상화 방안 등을 수립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정부도 지원을 본격적으로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정부가 한국GM에 대한 금융위원회 등 당국의 회계감리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간 업계에서는 본사 GM이 한국GM을 상대로 ‘고리대금’ 장사를 해 왔다거나 부품·제품 거래 과정에서 한국GM이 손해를 보고 이익을 본사나 해외 GM 계열사에 몰아줬다는 등의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한국GM의 경영 투명성을 우선 확인해야 지원의 명분과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우리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한국GM의 회계장부를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GM은 국내 자금 조달이 불가능한 상황, 매출원가율 산정 방식 차이 등을 고려하지 않은 ‘오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