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르도 라틀리프(29·서울 삼성)의 얼굴에 웃음꽃이 번졌다. "한국 여권을 갖고 싶다"는 폭탄 선언으로부터 1년, 드디어 특별 귀화에 성공한 라틀리프는 '라건아'라는 이름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대한민국 농구대표팀의 유니폼을 입을 수 있게 됐다.
라틀리프는 25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임페리얼팰리스호텔에서 '특별 귀화 기자회견'에 참석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소감을 밝혔다. 라틀리프는 "대학 졸업 이후 곧바로 한국에 와서 뛰면서 이 나라를 좋아하게 됐다. 한국에서 커리어를 마치고 싶었다"며 "그러다 보니 이 나라를 대표해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2014년부터 (귀화를) 생각해 오다가 지난해 인터뷰를 통해 밝히게 된 것"이라고 귀화를 결심한 계기에 대해 밝혔다. 이어 그는 "한국은 '사랑'이다. 2012년 처음 왔을 때 팬들과 모든 국민들이 나를 따뜻하게 맞아 줬다"며 "그 사랑을 국제 대회에서 메달로 보답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라틀리프 귀화의 모든 것은 지난해 1월 1일, 전주 KCC와 원정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 나선 그의 입에서 시작됐다. 새해 첫날 군산까지 내려가 치른 원정경기에서 26득점 13리바운드로 더블더블 활약을 펼치며 수훈 선수로 선정된 라틀리프는 기자회견장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았다. "삼성에서 우승하겠다"는 대답을 기대했던 취재진은 이 자리에서 그에게 KBL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를 물었다. 그러나 라틀리프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패스포트(여권)"라고 답해 좌중을 당황하게 했다. 곧바로 이어진 "귀화를 원하냐"는 질문에도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예스"라고 답했고, 이 발언이 그의 특별 귀화 추진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다. '한국 여권' 발언 이후 약 9개월의 시간이 지난 뒤, 대한민국농구협회와 KBL이 라틀리프의 특별 귀화 추진에 합의했고 이후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했다. 도중에 배임 혐의가 있다는 청원서가 접수돼 법무부의 조사를 받고 무혐의 판정을 받는 등 우여곡절도 있었다. 결국 라틀리프는 '한국 여권' 발언 이후 1년여 만인 이번달 22일 면접에 통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농구선수로는 통산 네 번째 특별 귀화다. 라틀리프는 앞서 특별 귀화에 성공한 문태종(43·오리온) 문태영(40·삼성) 김한별(32·삼성생명)과 달리 한국계 선수가 아니다. 한국인 혈통이 없이 한국 국적을 받은 농구선수는 라틀리프가 첫 사례가 되는 셈이다.
라틀리프의 귀화는 국제 대회 때마다 골밑 경쟁력에서 약점을 보였던 한국 대표팀에 큰 보탬이 될 예정이다. 대표팀을 이끄는 허재(53) 감독도 "라틀리프 합류로 골밑에서 큰 힘을 얻게 됐다"고 기대감을 밝힌 바 있다. 라틀리프는 이날 오전 대한민국농구협회가 발표한 2019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아시아 예선 최종엔트리 12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날 방열(77) 대한민국농구협회장으로부터 대표팀 유니폼을 건네받은 라틀리프는 "한국 대표팀은 내가 합류하기 전부터 좋은 팀이었다. 국가대표로 대표팀 경기를 잘 치르고 코트 안팎에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싶다"며 "골밑에서 내 역할을 확실히 하고, 어린 선수들을 이끌 수 있는 리더가 되겠다"고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