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하게 싸운다. 이유는 '사랑'이다. 이해 관계가 얽히고 설킨 조폭 세계를 그리지만 결국 모든 것은 사랑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주한 남자 때문에 여자가 움직이고 여자가 위험에 빠진다.
영화 '미옥'은 충무로를 대표하는 여배우 김혜수가 원톱 주연으로 나선 느와르물로 알려지면서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작품이다. 많아 봤자 시즌별로 한 편 씩 등장하는 여성 영화인 만큼 개봉만 해도 반가운 상황에서 김혜수가 택한 작품이라 하니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개봉 전 상반기 칸 국제영화제의 인정을 받은 '악녀'와 비슷하지 않을까 우려됐던 것도 사실이지만 뚜껑 열린 '미옥'은 느와르보다는 오히려 멜로에 가까워 관객들을 당황시킨다. 굳이 따지자면 흘러가는 스토리 자체는 '악녀' 보다 최근 개봉한 '침묵'과 비슷하다. 그 쪽도 이 쪽도 다 사랑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악녀' 김옥빈에게 주어졌던 사랑과 복수, 모성애, 그리고 '침묵' 최민식이 선보인 사랑과 부성애를 '미옥'에서는 이선균·김혜수가 나눠 가졌다. 사랑과 복수가 이선균 쪽에, 김혜수는 거친 액션과 대비되는 모성애를 품었다.
김혜수와 이선균은 인터뷰를 통해 각자 우려되는 부분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놨다. "모성애가 등장하고 필요해도 이 영화에서 만큼은 최대한 드라이하게 그려졌으면 싶었다"는 김혜수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고, "'미옥'이라는 제목에 김혜수표 느와르를 기대한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생각했던 그림이 아닌데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지 궁금하다"는 이선균의 걱정 역시 이해되는 지점이다.
9일 개봉한 '미옥'은 오프닝 스코어 5만3289명을 기록, 박스오피스 2위로 출발했다.
출연: 김혜수·이선균·이희준 감독: 이안규 줄거리: '범죄조직을 재계 유력 기업으로 키워낸 2인자 현정과 그녀를 위해 조직의 해결사가 된 상훈, 그리고 출세를 눈앞에 두고 이들에게 덜미를 잡힌 최검사까지 벼랑끝에서 마지막 기회를 잡은 세 사람의 전쟁 장르: 느와르·범죄·액션 등급·러닝타임: 청소년관람불가·91분 개봉: 11월 9일 신의 한 수: 도전 정신과 캐스팅. 찰떡같은 캐스팅의 승리인지, 아니면 이 배우들이 연기를 해서 찰떡같이 보이는 것인지 캐스팅 하나는 구멍없이 완벽하다. 연기력 역시 나무랄 구석이 없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고, 숨막힐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고, 짜증날 정도로 찌질하다. 김혜수·이선균·이희준을 비롯해 조연, 심지어 짧게 등장하는 우정출연 배우들까지 영화를 풍성하게 채우는데 한 몫 한다. 낯설지만 신선한 얼굴들도 반갑다. 스토리의 흐름을 떠나 인물 설정 자체도 나쁘지 않다. 보스 김혜수, 분출할 수 있는 모든 예민미를 사랑에 쏟아붓는 이선균, 정의로운 척, 내가 다 맞는 척, 아무렇지 않은 일상인 척 연기하며 사람 열받게 만드는데는 도가 튼 이희준은 캐릭터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든다. 그 중에서도 작정하고 캐릭터화 시킨 김혜수는 가히 명불허전이다. 김혜수의 비주얼과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액션을 구경하는 것 만으로도 의미와 가치는 충분하다. 느와르 특유의 '허세 멋'이 있기는 하지만 공들인 분위기도 만족스럽다. 각 캐릭터의 성격과 설정, 느낌을 아지트로 재표현해 내면서 자연스러운 몰입도를 높인다. 91분의 러닝타임은 그야말로 신의한수. 지루함이 느껴질 때 쯤 아련하게 끝난다. 유머러스한 에필로그가 먹먹함을 융화시킨다. 감사하게도 영화관을 찝찝한 마음으로 떠나지는 않게 된다. 신의 악수: 찝찝하지는 않지만 그 이상의 오글거림이 있다. '어떡하지'라는 한탄이 여러 번 튀어 나온다. 좋지만 나쁘다. 무슨 영화를 봤는지, 어떤 영화를 봤는지 명확하게 기억에 남지만 기억에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 함정이다. 반전이 있는 척 없고 뻔한 클리셰가 난무한다. 어디서 한 번쯤 본 듯한 음지의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느낌이다. 왕년에 흥했던 느와르의 안 좋은 점만 답습한다. 그 때는 한 장면 한 장면이 로망이되고 흥했을지언정 2017년에 내놓기에는 다소 무모하다. 김혜수로 홍보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나현정(김혜수)보다 임상훈(이선균)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임상훈의 인생을 그리면서 임상훈 시선에서 바라보는 나현정을 그린다. 능력있는 나현정이지만 주체적이지는 못하다. 임상훈의 계획에 끌려다니는 모양새다. 그 속에는 그놈의 '모성애'도 빠지지 않는다. 언제쯤이면 여성 캐릭터가 중심인 영화에서 능력있는 여성과 대등한 남성이 등장해 성별 구분없이 멋들어지게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미옥'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여지없는 결핍 덩어리에 찌질함을 감추지 못한다. 이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 자체와는 다른 문제다. '소중한 여인'에서 '미옥'으로 제목을 바꾼 것마저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