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말라도 너무 말랐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는 물론이고 극장가 역시 관객들의 발길이 뚝 끊겨 보릿고개에 직면했다.
대다수 영화인이 보이콧을 선언하는 파행을 겪은 뒤 재기에 나선 부산국제영화제는 여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지난 12일 막을 올렸지만 영화인들의 참여도는 여전히 저조하다. 지난해보다 나아졌다곤 하나, 예년 같은 축제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다. 해운대 백사장 위 배우들의 무대 인사 행사에 모여든 인파는 절반으로 줄었고,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던 해운대 포장마차촌도 손님이 없어 한적했다. 작품을 출품하지 않아도 다른 영화인들과 만나 술 한잔 기울이기 위해 부산을 찾던 예년의 분위기와는 달리, 일정이 있어야만 하루 이틀 시간을 내 머무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포장마차촌 앞에서 이정재·하정우와 우연히 만나고, 황정민이 부산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은 이제 오래전 일이 돼 버렸다.
분위기가 썰렁하다 보니 깜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최고의 스타로 불릴 정도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부산을 찾아 영화제 관계자들을 독려하고, 젊은 영화인들 그리고 시민들과 만났다. 대통령의 방문으로 인파가 몰려 떠들썩했던 영화의전당은 대통령의 일정이 끝나자 다시 한산해졌다.
그럼에도 영화계는 부산국제영화제라는 빅 이벤트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관심이 쏠려 있는 사이, 극장가 또한 썰렁한 분위기가 됐다. 추석 연휴 대목을 맞아 '킹스맨: 골든 서클(매튜 본 감독)' '남한산성(황동혁 감독)' '범죄도시(강윤성 감독)' 등 대작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연휴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갑게 식었다.
'킹스맨: 골든 서클'은 물론이고 '희생부활자' 같은 신작들마저 하루 2만여 명의 관객 동원에 그치고 있다. '범죄도시'만 꾸준히 관객을 모으며 흥행 독주 중이다. 지난해 추석 연휴 직후도 역시 비수기였지만, 올해보단 관객이 많았다. '밀정'이 꾸준히 관객의 선택을 받았고, '벤허'가 하루 5만 명 전후의 관객을 모았다.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릴 당시 상황과 비교해도 초라하긴 마찬가지다. '맨 인 더 다크(페드 알바레즈 감독)' '럭키(이계벽 감독)' 등의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며 높은 화제를 몰고 다녔다.
문제는 부산국제영화제의 2018년, 극장가의 남은 4분기가 과연 보릿고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다. 극장가에선 12월 대목에 '신과 함께(김용화 감독)' '1987(장준환 감독)' 등의 기대작들이 나오기 전까진 '토르: 라그나로크' 등의 외화를 제외하곤 별다른 흥행작이 나오지 못할 것으로 관측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위기를 쉽게 헤쳐 나가기 어려워 보인다. 공식 일정이 없어도 부산을 찾던 과거와는 영화인들의 인식 자체가 아예 달라졌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부산시와 갈등이 아직 완벽히 해결되지 못했다. 영화인들은 영화제 기간만 되면 습관처럼 부산을 찾았는데, 갈등이 계속된다면 이처럼 '당연한 분위기'도 점차 사라질 것이 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