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잃은 K리거의 국내 U턴이 현실이 됐다. 그동안 한국인 축구선수 사이에 중국 슈퍼리그(CSL)와 중동리그는 황금알을 낳는 곳으로 불렸다. 아시아 축구의 맹주인 한국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이들 국가들에 '가르침'의 대상이자 아시아쿼터를 이용해 기량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자원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 축구의 힘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CSL과 중동리그가 아시아쿼터를 축소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K리거들의 국내 U턴이 가속화되고 있다.
◇ 현실이 된 '중국파'의 대거 U턴
그 출발점은 중국이었다.
중국축구협회는 올해부터 CSL의 외국인 선수 출전 규정을 기존의 아시아 출신 1명 포함한 총 5명 보유 및 출전 규정에서, 아시아쿼터와 상관없이 5명 보유 및 3명 출전으로 규정 변경을 결정했다. 더불어 자국 선수들을 위한 팀당 출전 명단에 23세 이하 선수 2명을 의무적으로 포함하고 1명은 반드시 선발 라인업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규정도 함께 신설했다.
이는 토종 중국 선수를 보호하고 걷잡을 수 없이 이상 행보를 보이는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서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CSL은 전 세계에서도 A급에 속하는 선수를 수억원에 달하는 주급을 주며 영입했다. 팀 성적은 나아졌을지 몰라도 토종 선수는 발 붙일 곳이 없어졌고 실력이 늘지 않았다. 중국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에서 하위권을 전전했다.
하지만 중국축구협회의 이 같은 자구책은 슈퍼리그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들에게 직격탄이 됐다. 그동안 한국 선수들은 아시아쿼터라는 제도 덕분에 중국 등에서 출전 시간을 보장받았다. 공격보다는 착실한 수비와 끈질긴 정신력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규정 개정으로 각 소속팀에서는 한국 선수보다는 득점력이 뛰어난 유럽이나 남미 출신 공격수를 경기에 더 내보내기 시작했다. 홍정호(28·장쑤 쑤닝) 정도를 빼놓고 슈퍼리그에서 '개점휴업'을 하는 K리거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슈퍼리그의 텃새에 참다못한 한국인 선수들은 적극적으로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슈틸리케팀'에 합류한 장현수(26·광저우 푸리)는 지난 1일 "누군가 다치지 않으면 경기에 투입될 수 없는 어려운 현실이다. 이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미 구단으로부터 "언제든지 떠나라"는 확답도 받았다고 했다.
김형일(33)은 올해 초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김영권(27)이 부상으로 이탈하자 대체자로 6개월 단기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 규정 변화로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고, 김영권이 조기 복귀를 하면서 구단과 계약을 해지했다. 김형일은 국내 복귀는 물론이고 해외 리그 진출까지 저울질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는 후문이다.
◇ '중동파' 복귀도 시간문제
K리거에게 젖과 꿀을 선사해 왔던 '오일머니'도 이제 옛말이 될 처지다.
산유국으로서 막대한 돈을 틀어쥔 UAE와 카타르 등 중동리그는 이명주(27·알 아인)와 남태희(26·레퀴야), 한국영(27·알 가라파), 박종우(28·알 자지라), 송진형(30·알 샤르자) 등 한국 선수들을 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그러나 UAE축구협회는 2018~2019시즌부터 아라비안 걸프리그의 아시아쿼터 제도를 폐지하거나 일부 수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걸프리그는 올 시즌까지 외국인 선수 3명 외에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원국 소속 선수 1명을 추가로 보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2년 뒤에는 챔피언스리그(ACL) 외국인 출전 엔트리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갈 전망이다. 아시아쿼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게 되면 비싸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한국인 선수보다는 유럽 등 이름값이 높고 실력 있는 외국인을 영입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카타르의 스타스리그도 장기적으로 UAE와 같은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국제정세 변화로 인한 자금 악화, 테러 위험성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스타스리그를 떠나는 선수들도 늘어날 수 있다. 국내외에서 활약하는 선수를 관리하는 한 에이전트는 "한국 선수들의 호시절이 오래갈 수 없다. 국내 등 다른 리그를 모색할 시기가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 성대한 여름 이적 시장… K리그는 '군침'
K리그 팀들은 넘쳐나는 중국과 중동리그 자원으로 모처럼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선수 보강 계획이 있는 팀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더 넓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파들은 국가대표급 역량을 갖춘 선수들이 즐비해 팀에 영입했을 때 효과가 더 클 전망이다.
최근 수비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수원 삼성이 대표적이다. 이정수(37)의 은퇴와 김민우(27)의 부상, 민상기(26)의 군 입대로 중앙이 텅 빈 수원은 중국 슈퍼리그에서 U턴할 자원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서정원(47) 수원 감독은 장현수와 김기희(28·상하이 선화) 등 중국리그에서 위태로운 수비수들의 명단을 들자 "생각만 해도 좋다"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올 시즌 초입부터 고전을 이어 가고 있는 황선홍(49) FC 서울 감독 역시 공격수와 미드필더진을 보강하기 위해 여름 이적 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다. 데얀(36)과 박주영(32)의 창끝이 갈수록 무뎌지는 상황 속에서 슬슬 대안을 찾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황 감독은 "최근 여름 이적 시장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나 역시 그 부분에 대해 갈망하고 있다. 모든 채널을 다 열어 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명주를 향해 "관심이 있다. 대표팀 소집이 끝난 뒤 연락을 취할 것"이라고도 했다.
각 팀에 가장 인기가 있는 선수는 윤빛가람(27·상하이 선화)이다. 전북 현대와 서울, 제주 유나이티드가 그를 영입하기 위해 뛰어들었다는 후문이다. 최강희(58) 전북 감독은 "구단과 조율을 거쳐 윤빛가람을 영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에이전트를 통해 전달할 계획"이라면서 공개 '러브콜'까지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