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완벽 그 이상의 완벽함을 보여준 '깐느박' 박찬욱 감독이다. 개막부터 폐막까지 '매너의 정석' 박찬욱 감독이라 모든 날이 좋았다.
올해 칸 영화제는 심사위원장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을 비롯해 배우 윌 스미스, 제시카 차스테인, 판빙빙, 영화감독 아네스 자우이, 마렌 아데, 파올로 소렌티노, 작곡가 가브리엘 야드, 그리고 박찬욱 감독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다.
이에 따라 박찬욱 감독은 일찌감치 칸으로 출국, 공식 개막식 전 날인 16일(현지시간) 심사위원들이 참석한 오후 만찬 현장에서 포착되는가 하면, 17일에는 포토콜과 심사위원 기자회견, 레드카펫 등 모든 개막식 행사에서 모습을 드러내 한국 영화인의 자존심을 곧추 세웠다. 칸 영화제의 빅픽처가 틀림없다. 무려 다섯 편의 한국영화를 초청시킨데 이어 심사위원까지 한국의 거장을 앉혔다. 사심픽이건 고정픽이건 칸이 선택한 박찬욱 감독은 옳았고, 그것이 이번 영화제라 더욱 뜻깊은 그림이 완성됐다.
박찬욱 감독은 한국인으로서는 네 번째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부름 받았다. 고(故) 신상옥 감독이 1994년에 한국인 최초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09년에는 이창동 감독, 2014년에는 배우 전도연이 심사위원으로 칸을 찾았다.
박찬욱 감독이 공식적으로 칸을 방문한 것 역시 네 번째. 박찬욱 감독은 2004년 '올드보이'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2009년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이후, 2016년 한국 영화로는 4년 만에 '아가씨'를 경쟁부문에 진출시키면서 완벽한 칸 영화제의 터줏대감이 됐다.
또 박찬욱 감독은 칸 영화제 70주년을 맞아 칸 영화제를 빛낸 영화인들이 함께 한 자리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세계 유명 영화인들 사이에서도 박찬욱 감독은 수더분한 미소로 빛나는 존재감을 자랑했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그 이상의 활약을 보였다. 칸 심사위원으로서 빽뺵한 공식일정을 소화함과 동시에, 충무로 어른으로서 한국 영화와 영화인들을 챙기는 남다른 품격을 보인 것.
박찬욱 감독은 심사를 위해서라도 꼭 봐야하는 경쟁부문 진출작 '옥자(봉준호 감독)', '그 후(홍상수 감독)' 뿐만 아니라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받은 '악녀(정병길 감독)'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변성현 감독)' 공식 스크리닝, 한국 영화의 밤 행사 등에 모두 모습을 드러내며 배우들은 물론, 현지 관계자들을 감동케 했다.
특히 '악녀'와 '불한당' 스크리닝에 자리한 박찬욱 감독은 그 의미도 남달랐다.
8년 전 김옥빈과 '박쥐'로 칸 영화제를 방문했던 박찬욱 감독은 어엿하게 성장해 여배우 원톱 느와르 영화로 칸을 찾은 김옥빈을 딸처럼 응원했다. 뤼미에르 극장 한 켠에 울려퍼진 "옥빈아!"라는 한 마디는 형언할 수 없는 뭉클함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김옥빈은 "딸을 시집보내는 아빠의 모습 같았다"며 울컥한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불한당' 팀의 감동은 더 했다. 변성현 감독이 개인 논란으로 칸 영화제에 불참, 배우들은 감독없이 큰 행사를 치러야 했다. 설경구의 표현처럼 '애비없는 자식'들이나 마찬가지. 그런 '불한당' 팀을 두 팔 벌려 맞이한 사람이 바로 박찬욱 감독이다.
박찬욱 감독은 '불한당' 공식 스크리닝 행사에 일찌감치 도착해 뤼미에르 극장 앞에서 대기, 레드카펫을 걸어 들어오는 배우들을 아빠 미소로 흡족하게 바라봤다. 이 같은 모습은 외신 카메라에도 찍혀 눈길을 끌었다. 뒤늦게 박찬욱 감독을 확인한 배우들은 화들짝 놀라했고, 박찬욱 감독은 한 명 한 명씩 포옹해 주며 그들을 다독였다. 박찬욱 감독은 퇴장 때도 '불한당' 팀을 인솔, 감독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채워주며 '불한당' 팀에게 더할나위없는 추억을 선물했다. 칸 영화제 측은 26일(현지시간) 공식 홈페이지에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를 게재하며 "칸의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도 남다른 아우라를 뿜어낸다. 그가 자리에 앉으면 평온한 기운이 감돈다. 말을 할 때도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가장 부드러운 톤으로 내뱉는다"고 표현했다.
또 "이처럼 조용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2004년 심사위원대상), '박쥐'(2009년 심사위원상) 등의 영화를 만든 사람이라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며 "자세히 살펴보면 박찬욱 영화 속의 폭력은 독특한 면이 있다. 섬세함, 긴장감, 고요함이다"고 설명했다.
박찬욱 감독은 "요즘 떠오르는 영화 감독들은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 세대 감독들이 만든 단편 영화제를 통해 발굴됐다. 단편 영화에서 대표작까지 그들의 발전상을 보면, 작품의 독창성을 보고 있으면 굉장히 뭉클하다. 정말 우리가 가진 자부심의 근거다"고 말했다.
이어 "내 영화 경력은 칸 영화제 수상 전후로 나뉜다. 가장 큰 영향을 준 감독이 '하녀'의 김기영 감독이다"며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지난해 69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영화 '아가씨'에 깊은 영감을 주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수 많은 후배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 존재로 자리매김한 박찬욱 감독. 박찬욱 감독은 스스로 자신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며 충무로 넘버원 거장임을 다시금 확인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