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신세계 등 이른바 '유통 공룡'들이 영토 확장에 애를 먹고 있다. 성장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백화점과 복합쇼핑몰 등의 신규 출점으로 돌파구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시민단체와 현지 상인들의 반발에 무산되거나 보류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여기에 '골목상권·소상공인 보호'를 내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한동안 신규 출점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신세계 영토확장, 지역반발에 줄줄이 '제동'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지난 12일 부천시와 체결하기로 한 '부천백화점부지 매매 계약'을 연기했다. 매매 계약 연기는 이번이 4번째다.
신세계 관계자는 "백화점 건설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복합쇼핑몰이라는 인식으로 주변 지자체와 상인들의 반대가 심하다"며 "반대하는 지자체와 상인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계약을 연기했다"고 말했다.
앞서 부천시는 2015년 상동 영상문화산업단지 내 관광쇼핑단지(7만6034㎡) 우선협상대상자로 신세계를 선정하고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포함한 복합쇼핑몰을 건립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면서 인천시 부평구 등 인근 지자체와 지역상인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이에 부천시와 신세계는 지난 1월 이마트 트레이더스와 복합쇼핑몰 건립을 제외하고 백화점만 입점하는 내용으로 사업계획을 변경했다.
그러나 지역상인들은 규모가 큰 백화점이 들어서면 복합쇼핑몰과 같이 지역상권이 붕괴된다는 이유로 백화점의 단독 건립 역시 반대하고 있다. 광주 신세계 복합쇼핑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광주신세계는 지난 2015년 5월 광주시와 광천동 일대 34만여㎡에 특급호텔을 신축하고 기존 백화점·마트 등을 새롭게 증·개축하기로 투자협약(MOU)을 맺었다. 하지만 주변 상인 반발 등으로 사업규모를 40%가량 준 21만3000여㎡로 수정했지만 여전히 정치권 등의 반발 속에 광주시의 인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밖에 신세계는 경기 군포와 전남 여수 이마트 트레이더스 조성 사업에서 지역 중소상인들 반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롯데, 상암 복합쇼핑몰 사업 '난항'…법적 분쟁까지
롯데그룹도 신규 출점에 애를 먹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상암과 전주 등에서 잇따라 신규 출점에 제동이 걸렸다.
롯데쇼핑은 2013년 4월 서울 상암동 부지 2만644㎡를 복합쇼핑몰 건립을 위해 서울시로부터 1972억원에 사들였다.
하지만 서울시는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쇼핑몰 건립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롯데 복합쇼핑몰 건립 소식에 인근 시장 상인들이 거세게 반발했다는 것이 이유다.
이에 롯데는 올해까지 백화점과 영화관·업무시설·대형마트 등이 결합한 대규모 복합쇼핑몰을 지을 계획이었지만,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 조차 못했다.
이와 관련 롯데는 최근 서울시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서울시 도시계획 심의 미이행에 따른 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전주에서도 롯데 복합쇼핑몰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전주시는 종합경기장 자리에 쇼핑몰·영화관 등을 갖춘 컨벤션센터와 호텔 등을 짓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2012년 롯데를 민간사업자로 선정했다.
롯데가 종합경기장 부지의 절반을 사용하는 대신 외곽에 육상경기장과 야구장 등을 따로 건립해준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지역상권 붕괴 우려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자 현 시장이 전임 시장 때 계획한 방안을 유보해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답답한 유통공룡들
이렇듯 시민단체와 지역 상인들과의 반발로 신규 출점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서 유통 대기업들의 신 성장 동력은 난관에 봉착한 모양새다.
여기에 지난 10일 '골목상권 보호'를 공략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들 유통 대기업들의 영토확장 계획은 더욱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당시 소상공인과 자영업에 대해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는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제' 도입을 주장했고, 스타필드(신세계), 롯데몰(롯데)과 같은 유통대기업이 운영하는 복합쇼핑몰의 입지 제한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지방자치단체 역시 유통 대기업 규제 기조를 내세운 새 정부의 '눈치보기' 차원에서 쉽사리 신규 출점 허가를 내주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 김만수 부천시장은 부천 신세계백화점 매매 계약 연기와 관련해 "새 정부가 출범한 상태에서 바로 계약을 체결하면 정부에 미운 털이 박혀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페이스북에서 밝힌 바 있다.
이에 유통 업계에서는 "현실과 맞지 않고 실효성도 없는 규제에 불과하다"고 고개를 젓고 있다. 새 정부 출범과 관련해 골목상권 보호 쪽으로만 치중하다 보면 백화점이고, 쇼핑몰이고 어디든지 입점 자체가 힘들게 되고, 유통시장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유통 업체 관계자는 "서민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소상공인과 골목상권 보호를 앞세운 정책은 환영하지만 유통 대기업이 '절대악'으로 묘사되는 건 자칫 업계 죽이기로 귀결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