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 힐만 SK 감독은 지난 7일부터 열린 NC와의 홈 3연전 내내 김동엽과 한동민을 4·5번 타순에 배치했다. 결과는 대성공. 두 선수는 1~2차전에서 3홈런을 합작했고, 3차전에선 8타수 5안타(1홈런)를 폭발시키면서 팀의 시즌 첫 연승을 이끌었다. 개막 6연패 부진 탈출 원동력은 중심 타선의 폭발력이었다.
김동엽과 한동민은 '야구판 미생'이다. 김동엽은 2015년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9라운드 지명됐다. 전체 지명 선수 100명 가운데 86번째였다. 드래프트에 도전장을 낸 마이너리그 유턴파 4명(남태혁·정수민·나경민) 중 지명 순위가 가장 밀렸다. 전 한화 포수 김상국의 아들인 김동엽은 천안북중 졸업 후 일본 미야자키 나치난학원으로 2년간 야구 유학을 떠났다. 마이너리그 경험(하위 싱글A)까지 더하면 KBO리그 데뷔 전 한·미·일 야구를 모두 접한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하지만 신인 지명을 앞두고 열린 트라이아웃 때 부상 여파로 제대로 뛰지 못하면서 팀들의 외면을 받았다. 지명 후 그는 "아버지가 '뒤 순번에 뽑혔으니 창피하지 않냐'고 하시더라. 더 열심히 했더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한 것에 대한 평가이니 스스로 반성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SK 유니폼을 입은 김동엽은 오른손 파워 히터로 성장했다. 지난해 150타석에서 6홈런을 때려냈다. 장타율이 0.517. 9일 NC전을 마친 후 그는 "(신인지명 당시와) 똑같은 마음가짐이다"고 말했다.
6일 광주 KIA전부터 9일 인천 SK전까지 4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낸 한동민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경성대를 졸업한 한동민은 2011년 열린 드래프트에서 김동엽과 같은 9라운드 지명(전체 85위)을 받았다. 송태일 SK 스카우트 팀장은 "대학 3학년까지는 유망한 선수였다. 하지만 4학년 때 극심한 타격 부진을 겪어 순번이 뒤로 밀렸다"고 기억했다. 이어 "신인 지명 때 5라운드 아래 선수는 어떤 장점 하나를 가지고 결정을 한다. 한동민은 수비 면에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힘있는 타격을 했다. 훈련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낮은 지명 순위는 한동민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팀에 합류한 뒤 내가 9라운드 지명을 받을 만한 실력이라는 게 느껴졌다. 야구판은 넓고, 선수는 많더라"며 "내가 너무 건방을 떨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열심히 했다. 이만수 전 감독님이 기회를 많이 주셔서 여기까지 야구를 하게 된 것 같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동민은 상무야구단에서 뛴 2년 동안 퓨처스리그 홈런왕을 놓치지 않았고, 지난해 팀에 복귀해 단숨에 기회를 잡았다. 김동엽과 한동민의 활약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선수가 있다. 바로 박정권이다. 그 역시 전주고 3학년이던 1999년 열린 드래프트 9라운드(전체 65위)에서 쌍방울에 지명됐다. '9라운드 지명 대선배'다, 쌍방울 입단 대신 동국대 진학을 택했고, 지명권을 승계한 SK에 2004년 입단했다.
첫 세 시즌은 스포트라이트와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도약했고, 2007년부터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SK 왕조'의 한 축을 담당했다. 2015년 겨울에는 FA(프리에이전트)로 4년·총액 30억원(계약금 14억원·연봉 4억원)에 잔류하며 성공시대를 써내려갔다. 힐만 감독 부임 후에는 주장을 맡아 후배들을 이끌고 있다. 개인기록과는 별개로 젊은 선수들이 많은 SK 팀 내부에서 중심을 잡아준다.
그는 김동엽과 한동민에 대해 "평소에도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후배들이기에 나란히 잘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 앞으로도 좋은 활약으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출발은 미미했지만, 누구보다도 인상적인 결과를 만들어가고 있는 세 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