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하게 말없이 그저 표정으로 모든 것을 말할 것 같은 배우 정만식(42)은 의외로 수다스럽고 장난끼 많고 호탕한 웃음소리가 매력적인, 카페에 가면 고심하는 척 늘 달콤한 카라멜 마끼야또를 주문하는 그런 남자다.
사생활을 잘 공개하지 않는 여느 배우들과 달리 정만식은 인터뷰 때마다 아내에 대한 애정과 자랑을 빼놓지 않는다. 스스로 '장모님의 복덩어리'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남자가 몇이나 될까.
왠지 무섭고 짙은 인상 때문일까. 어두운 작품을 통해 많이 볼 수 있었던 정만식은 '7번방의 선물(이환경 감독)'에 이어 '그래, 가족'으로 오랜만에 딱 정만식다운 따뜻한 영화를 선보였다. 성적은 아쉽지만 새로운 장르를 선택했다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인터뷰 ②에서 이어집니다.
- 오성호는 백수지만 현실은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다.
"밖에서 누가 그렇게 이야기 하면 철없다고 하지. 명확한 직장도 없고 달마다 들어오는 돈도 없어. 근데 이상하게 사기는 당하고 친구를 또 좋아해. 정은 많아서 사기 친 친구를 많이 때리지도 못해. 그 점도 나와 비슷하다."
- 친구가 많은 편인가.
"친구들이 나를 힘들어 하고 무서워 하긴 한다. 이상하게 내 말에 토를 안 달더라. 특히 서울 친구들.(웃음) 내가 사람을 많이 좋아하는 편이라.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늘 즐겁다."- 그래도 사기는 안 당하겠지.
"맞다. 그건 아니다. 누가 나한테 사기를 치겠나. 우리 회사 대표한테도 '사기 치려면 쳐. 그 후에 네가 어떻게 될지는 장담 할 수가 없어. 내가 어떻게 변할지는 나도 몰라. 그러니까 그러지 말자'라고 했다.(웃음) 신뢰다. 신뢰."
- 화가 많은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
"실제로 화를 잘 내지는 않는다. 대학로 극단 후배들도 내가 화내는 모습을 거의 못 봤다. 일부러 잘 안 보이기도 하고. 아는 아이들만 아는데 화가 나면 난 호흡 자체가 굉장히 다운된다. 소리를 지르기 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그만해'라고 한 마디 하는 스타일이다. 웬만하면 몸이 앞서게 하고 싶지는 않다."
- 연기는 자의에 의해 시작한 일인가.
"아니다. 누나와 형이 추천해 줬다. 어렸을 때부터 생활력 강한 것이 내 장점이었다. 아버지 어머니도 '넌 생존력이 좋다'고 하셨다. 어디다 데려놔도 잘 살 수 있다. 맨 몸으로 나가서 두 달에 한 번 집에 들어갈 때도 꼭 가방 하나는 들고 갔으니까."
-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네.
"한 번은 형이 '러시아 가서 유학할래? 가는 비행기만 해 줄게'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거기가서 뭐해'라고 했더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약을 팔든 불법 행위를 해서라도 넌 잘 살 수 있잖아'라고 했다. 좀 어이 없었지만 아주 수긍 못할 부분은 아니었다. 내 생존력에 대해 과하게 많이 신뢰했다."
- 그러다 연기에 발을 들였나.
"사실 아직도 잘 이해는 안 간다. 내가 누나 한 명에 형 둘인데 집이 엄청 가난해서 모두 예체능에 끼가 있었지만 펼치지 못했다. 특히 작은 누나는 연기하는 것을 좋아해 대학때 연극반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 누나와 형이 먼저 내 끼를 발견해 줬다.
17살 때부터 계속 내 미래에 대해 묻더라. 아무 생각도 없고 비전은 더 없었다. 그러다 스무살이 되고 꿈 없이 술이나 마시고 다니니까 대학은 안 가도 된다면서 연기를 해 보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해 24년을 연기로 먹고 살았다."-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나.
"내가 마흔에 결혼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대학 안 가길 잘했다. 후회하지 않는다.' 내 최종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인데 우리 와이프는 박사다. 일본 오사카 예술대학 외국인 여성 최초 박사가 된 분이다. 후회할 것이 뭐 있나. 여전히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고졸이 박사도 만났는데. 진짜 성공한 인생이지."
- 이런 성격이 은근히 보여서일까. 의외로 핑크셔츠가 잘 어울리더라.
"난 내 몸을 보고 너무 싫었다. 어린이 집 버스에서 내리는 장면이 있지 않나. '뭐 저 따위 몸이 다 있나' 했다.(웃음) 우리 와이프 외에는 귀엽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근데 그런 모습이 나도 모르게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막내인데 어디 가겠나."
- 입담이 좋다. 예능 출연 생각은 없나.
"회사한테는 미안한데 필요 이상으로는 원하지 않는다. 예능에 출연하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알아봐 주고 주가가 올라가고 일도 많아지고 좋다. 하지만 연기하는데는 그렇게 크게 장점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내 생각은 그렇다. 예능의 모습이 너무 익숙해 지면 극 인물로 여겨지기가 어렵다. 그래서 홍보 외에는 안 하고 싶다."
-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 파일럿 프로그램을 한 번 한 적이 있다. '피터팬'이라고. 고정으로 성사되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배우가 예능에 너무 꽂히면 위험하다. 많은 선배들을 보면서 느끼는 바 이다."
- 영화는 결국 관객과의 소통이 최우선시 돼야 한다.
"100명 중 단 한 명 만이라도 '나 저런 사람 본적 있어. 저런 이야기 들은 적 있어. 난 이런 것을 느꼈어'라고 말해 준다면 성공이라고 본다. 모두를 감동시킬 수는 없다. 그건 억지고 강요다. 한 명이라도 같은 공감대를 나눴다고 하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