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논란이 됐던 자살보험금 미지급액을 전액 지급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의 중징계 방침에 결국 백기를 든 셈이다. 여기에는 삼성생명의 지주사 전환과 대표 연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남은 곳은 한화생명 한 군데다.
삼성생명, 결국 1608억원 지급키로
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2011년 이전에 청구된 보험금을 포함한 자살보험금 1608억원을 전액 지급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2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의결할 예정이다.
삼성생명은 국내 빅3 생보사로 불리는 곳 중 하나로 자살보험금 미지급액이 가장 많다.
삼성생명은 지난 2012년 9월 6일부터 2014년 9월 4일까지 2년 동안 미청구된 자살보험금 400억원만 지급하겠다고 고수해 왔다. 2011년 1월 24일부터 2012년 9월 5일까지 발생한 미지급금 200억원은 자살예방재단에 기부하는 형태로 사회에 환원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사실상 전체 금액의 24%(400억원) 수준만 내놓겠다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2011년 1월 24일 이전에 청구된 금액은 소멸시효 2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주지 않겠다고 고집을 불러왔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23일 자살보험금 전액을 지급하지 않은 삼성생명에 3개월 영업정지 처분과 김창수 대표에 문책성 경고를 내리자 꼬리를 내렸다. 교보생명과 한화생명에도 각각 2개월과 1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지주사 전환·대표 연임 의식한 듯
자살보험금 지급을 할 수 없다며 오랫동안 버텨온 삼성생명이 갑자기 백기를 든 것은 현재 전체 그룹 분위기와 대표 연임 등의 상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삼성은 그룹 경영을 총괄하던 미래전략실을 폐지하고 지주사 체제 전환에 나섰다. 이를 위해 삼성은 전자·금융·물산 3개의 중간지주사를 설립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삼성생명은 금융지주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지주사가 되기 위해서는 금융 계열사 지분을 30% 이상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삼성생명은 지난해부터 삼성카드, 삼성증권 지분을 사들여 왔다. 현재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카드와 삼성증권 지분은 각각 71.86%, 30.10%다. 남은 것은 15%만 보유하고 있는 삼성화재해상보험의 지분 매입이다.
하지만 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게 되면 지주사 전환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보험업법 감독규정에서는 대주주 자격 요건으로 '최근 1년간 기관경고 또는 최근 3년간 시정명령이나 업무정지 이상 조처를 받은 적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연임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생명은 오는 24일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김 대표의 연임건을 의결할 방침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으면 김 대표의 연임은 물 건너가게 된다.
가뜩이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비선실세' 최순실씨 측에 뇌물을 준 혐의로 부재한 상황에서 삼성 내 주요 계열사 대표의 공백은 삼성생명은 물론 그룹 전체에도 좋지 않다고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한화생명도 뒤따를듯
삼성생명에 이어 한화생명도 자살보험금 전액 지급으로 선회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의 중징계에 가장 먼저 꼬리를 내린 곳은 교보생명이다. 교보생명은 제재를 피하고자 1143억원의 자살보험금을 전액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눈치를 보던 삼성생명도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1050억원의 자살보험금 미지급분을 갖고 있는 한화생명이다.
한화생명 측은 "현재 경영진과 내용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자살보험금 지급 논란은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금호생명(현 KDB생명)이 자살을 재해사망에 포함한 재해사망특약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보험사들은 해당 상품의 약관까지 베낀 '미투 상품'을 우후죽순처럼 내놨다.
일반적으로 보험사들은 고객의 자살에 대해서는 일반사망보험금만 지급해 왔지만 이 상품에 가입한 고객들에게는 일반사망보험금의 2~3배 수준인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보험사들은 2010년 부랴부랴 자살을 재해사망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이미 280만명 이상이 해당 상품에 가입한 뒤였다.
자살보험금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14년 금감원이 자살보험금을 약관대로 지급하지 않은 ING생명을 제재하면서다. ING생명을 비롯한 생보사들은 제재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수차례 법정공방을 거친 끝에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빅3만 미지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