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축구연맹(이하 축구연맹) 제11대 총재 선거에 단독 출마했던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선거 이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단독 후보인 나는 30억, 40억의 타이틀 스폰서 비용을 갖고 후보의 중량감이 있느냐 없느냐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신 교수의 단독 출마와 낙선은 K리그 총재직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바로 K리그 총재의 '역할론'이다.
그동안 K리그 총재직은 기업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역대 총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정몽준 현 아산재단 이사장이 1994년부터 1998년 8월까지 초대부터 4대까지 총재직을 맡아 기틀을 마련했고, 그 뒤를 이어 유상부 전 포스코 회장이 6년간 총재직을 역임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는 곽정환 통일그룹 회장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2년간은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맡았다.
이후 정몽규 회장이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오는 27일~28일 사이로 예정된 총재 선거 결과에 따라 연임할 가능성도 높은 상태다.
기업인들에게 축구연맹 총재직을 맡기는 이유는 명확하다. 수익 구조가 빈약한 K리그를 원활히 운영할 만큼의 '빅 머니'를 끌어올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이번 11대 총재 선거의 화두로 떠오른 타이틀 스폰서 확보가 대표적이다. 축구연맹 정관은 총재 후보자의 조건에 대해 "학식과 덕망, 경험이 풍부한 자로서 연맹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조건은 다르다. 최소 35억~40억원 규모에 달하는 타이틀 스폰서를 확보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필수인 셈이다. 물론 리그를 이끌어 나가는 데 있어 경제적 능력, 더 나아가 경영 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조건이다. 하지만 리그의 수익성을 키우고 자생력을 갖춘다면 굳이 총재가 수십억원의 타이틀 스폰서 비용을 끌어오지 않아도 된다.
다시 말해 지금 축구연맹에는 '전문 경영인' 총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신 교수를 비롯해 많은 축구계 관계자들이 지적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최근 중계권 계약으로 '대박'을 친 일본 J리그 역시 전문 경영인에게 리그 운영을 맡겨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 낸 사례다. J리그는 '체어맨'이라 불리는 이사장을 리그 대표자로 삼는데 제4대 '체어맨'까지는 경기인, 기업 구단을 소유한 기업인 등이 주로 맡아 K리그와 비슷한 노선을 걸어왔다.
그런데 2014년, 기업 경영인 출신의 무라이 미츠루가 취임하면서 변화를 맞았다.
무라이 이사장은 경기인 출신도, 기업 구단 관계자도 아니었다. 인재 서비스업을 하는 리크루트에서 본사 임원과 계열사 대표를 지낸 경영자인 그는 2008년부터 J리그 이사로 활동하다가 퇴임 후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전문 경영인의 시각을 앞세워 취임 후부터 리그 경영 기반 확대에 사활을 걸었고, 2014년 12월 메이지 야스다 생명과 4년 동안 타이틀 스폰서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또한 2015년 3월에는 통합 중계 채널인 스카파(스카이 퍼펙트 커뮤니케이션)와 해외방송 중계권 판매 계약을 체결했고, 2016년 말에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대로 영국 퍼폼과 향후 10년간 2조3000억원 규모의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전문 경영인이라고 단순히 돈만 벌어 오는 건 아니다. 축구팬인 무라이 이사장은 J리그 홈페이지에 칼럼을 연재하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는 이 칼럼을 통해 퍼폼과 체결한 중계권 수익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경영인의 시각에서 팬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변화의 필요성에 직면한 K리그가 눈여겨볼 만한 롤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