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흥(62) 대한체육회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와 한 때 '체육대통령'으로 불린 김종(56)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에 흔들리는 한국체육계의 현실이 참담한 듯했다. 취임 100여일 째에 접어든 지난 12일 올림픽회관 집무실에서 만난 이기흥 회장은 "우리 체육인들의 반성과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5일 제40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총 투표수 892표 중 294표(32.95%)를 얻어 선출됐다. 1991년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이 분리된 뒤 25년 만에 합쳐진 첫 통합 체육회의 수장이 된 순간이었다. 그에게 2017년 '정유년'을 시작하는 마음가짐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엉망진창이 된 한국체육계를 수습하고 2018 평창겨울올림픽 등 굵직한 대회까지 챙겨야 한다.
일간스포츠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해 국내 프로스포츠단체장(연맹)을 만나 한국체육계 현실을 짚고 향후 대책 등에 대해 듣는 '신년 기획시리즈 인터뷰'를 진행한다. 다음은 이기흥 회장과의 일문일답.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신년 사자성어로 꼽았다. "한국은 빨리 성과만 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잘못 되면 갈등을 유발하고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큰 그림을 그리자는 뜻으로 우공이산을 택했다."
-국내 한 스포츠학자는 "2016년 한국 체육은 망했다"는 표현을 했다. "국정농단의 '최순실 게이트'와 일부 인사에 의해 한국체육계가 뿌리째 뽑혔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설명한 것 같다. 체육인들 스스로 자성과 쇄신, 그리고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체육계도 과거의 고질적 부패와 관행을 청산해야 한다. 2016년은 우리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보고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체육행정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가르쳐 준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김종 전 차관과는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안다. 공과를 꼽는다면. "개인적으로 김종 차관을 잘 안다. 이번 통합 과정 외에도 안팎의 여러 석상에서 만났다. 서로 의견이 상충되는 부분도 물론 있었다. 김종 전 차관은 기본적으로 일을 빨리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번 사태같은 우를 불러왔다. 물론 그렇게 빨리 움직이지 않았다면 통합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민주적이고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못했다. 같은 체육인으로서 안타깝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크게 마련이다."
-체육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당시 체육단체 통합이라는 당면한 목표를 앞에 두고 통합 일정을 서두르기 위해 정부가 선택한 회유책으로 생각한다. 민간단체의 성격을 많이 갖고 있는 체육단체의 특성상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최대한 공감대를 늘려가는 방향으로 통합 일정을 추진했어야 했다. 그러나 무리한 일정으로 체육단체를 압박하거나 단체운영에 차질을 초래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연초부터 계획된 사업시행을 앞두고 갑자기 예산지원을 취소하는 등의 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6년의 상처를 뛰어넘기 위해서 한국체육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자성과 반성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스포츠로 사회 통합을 이뤄야 한다. 다시 신뢰 받기 위해 우리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특히 폭력과 입시부정, 도핑, 회계부정, 심판비리 등은 하루 빨리 근절돼야 한다. 제도와 시스템이 같이 변해야 실효성이 있다. 체육계의 여러 비리 가운데는 '생계형'이 있다. 생활을 위한 최소 경비 문제 등이 함께 해결돼야 한다."
-평창겨울올림픽 조직위가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기업들이 평창겨울올림픽 후원을 망설이고 실제로 잘 이뤄지고 있지 않다. 약속한 기업도 지키지 않아서 안타깝다. 빨리 정치가 안정되고 우리 사회의 갈등이 해소돼야 한다. 국민도 평창겨울올림픽 성공과, 최순실 게이트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로 봐주길 바란다. 기존 체육회 후원사의 마케팅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잠재 기업들이 평창겨울올림픽 후원사로 참여하도록 돕겠다."
-대한체육회가 스포츠전문 케이블TV를 통해 아마추어 종목 등을 중계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2010년부터 인터넷 중계방송 'KOC TV'를 통해 비인기종목 인터넷 중계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2016년 정부가 예산지원을 중단했다. 우리는 스포츠전문 케이블TV 설립을 위해 인터넷 중계방송 실시 뒤 케이블TV 설립을 추진할 생각이다. 현재 대부분의 매체가 프로경기 위주로 중계방송을 하고 있다. 아마추어 경기 대회와 생활체육 종목 등에 대한 홍보가 어렵다. 보편적 시청권도 제한받고 있다. 체육회는 올해부터 인터넷 중계방송을 실시해 아마추어 경기 대회와 생활체육 종목 등의 콘텐츠를 제공할 예정이다."
-미래기획위원회는 첫 작품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사회 없이 독단적으로 만들었다는 비판 의견도 있다. "회장에 당선된 뒤 우리 체육계의 현안문제를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회장 자문기구로 설치했다. 가급적 체육인을 배제하고 각계 전문가 12명으로 꾸렸다. 우리 사회 전문가들의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회장 자문기구이기 때문에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
-이기흥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신념은. "불교경전 화엄경에 나오는 '상즉상입(相卽相入)'이다. 삼라만상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융합해 작용하며 무한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4년 뒤 '정말 일 열심히 하다 갔다'는 말을 듣고 싶다. 남은 여력과 제 모든 것을 완전 연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