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도라(박정우 감독)'의 개봉이 조금 더 빨랐다면 어렵게 얻은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 여주인공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 수도 있었을까. 긍정적으로 본다면 배우 김주현(30)의 이름과 얼굴은 알렸으니 절반의 성공이라면 성공이다.
2007년 영화 '기담'으로 데뷔한 김주현은 2017년 데뷔 10년을 맞는 중고신인이다. 흔히 말하는 '친구따라 갔다 내가 데뷔한 케이스'다. 하지만 연예계에 큰 관심이 없었고 배우 생활에도 별다른 욕심과 미련이 없어 활동에 집착하지 않은 채 10년을 보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봤던 오디션에서 합격, 2014년 드라마 '모던파머'를 통해 다시 배우의 삶으로 돌아왔다. 당시 인연을 맺은 이하늬의 추천으로 '판도라' 오디션을 치른 김주현은 150억 대작의 여주인공으로 관객 앞에 서는 기회까지 얻었다.
이쯤되면 오디션의 신이자 배우의 길을 걸어야 하는 운명이다. "연기를 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죠. 거기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대작을 마친 후 스스로와 다짐한 당찬 포부다. 2016년 전화위복을 겪어야 했던 김주현의 2017년은 꽃길만 펼쳐지길 응원하는 바다.
- 뚜껑을 열어보니 150억 대작의 여주인공이다.
"이렇게 큰 작품은 처음이었다. 긴 호흡의 촬영도 처음이었다. 개인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여 마음이 무겁다."
-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가.
"해냈다는 것에는 일단 만족한다. 너무 어색하거나 동떨어진 인물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더라. 다행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아쉬움도 크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끝낸 나에게 칭찬해 주고 싶기도 하다." - 부모님도 영화를 보셨나.
"'고생 많이 했겠다. 근데 너 왜 저렇게 살이 찐거야?'라고 하시더라.(웃음) 일부러 살을 찌워야겠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그 수치를 넘어섰다. 급하게 빼긴 했는데 엄청 빵빵하게 나왔더라."
- 큰 작품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했을 것 같다.
"엄청 컸다. 연기적인 욕심은 나는데 그것보다 작품의 사이즈가 크고 함께 나오는 선배님들도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분들이라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촬영을 할 땐 후배가 아닌 동료로 편하게 대해 주셨다. 끝날 때 쯤엔 가족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 박정우 감독이 중간 역할을 잘 해줬다던데.
"김영애 선생님과 (문)정희 언니 같은 경우는 감독님께서 미리 인사를 시켜 주셨다. 영화 속 연주는 와일드하고 거칠고 상황을 이끌어 가야 한다. 주눅이 들면 연기를 할 때도 바로 보이는데 신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 점을 알고 미리 신경써 주셨다."
- '판도라'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처음에는 회사에서 오디션을 잡아준 줄 알았다. 근데 '판도라' PD님께서 말씀하시길 눈여겨 보고 있던 찰나 이하늬 선배님의 추천을 받았다고 하시더라. 내가 '모던파머'라는 드라마를 했는데 이하늬 선배님과 같이 나왔다. 선배님은 박정우 감독님의 전작인 '연가시'에 출연해 '판도라' 팀과도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영화사 측에서 시나리오를 보내 주셨고 1차 미팅을 한 다음에 정식 오디션까지 치렀다."
- 오디션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줬나.
"작품도, 캐릭터도 너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연주의 이미지를 담고 가야지'라는 마음에 깔끔하게 하고 갔는데 그 땐 지금보다 더 마르고 여성스러운 이미지가 강했는지 처음엔 감독님이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하셨다고 하더라. 당신이 생각했던 이미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저 친구 볼 일 없겠다' 말씀하셨다고 하니까.(웃음)"
- 근데 마음이 바뀐 것인가.
"이미지는 그랬는데 대화를 하면서 눈빛을 보니까 '너 할 수 있겠구나'라는 느낌이 드셨다고 하더라. 정식 오디션을 볼 땐 카메라 세팅이 다 돼 있었고, 시나리오에 있는 신 3~4가지를 정도를 연기했다. 감독님께서는 이미 결정하고 보셨던 것 같다. 사실 이름도 얼굴도 알려지지 않은 신인을 캐스팅 한다는 것이 감독님 입장에서도 부담이 됐을 수 있고, 또 반대 하시는 분들도 많았을텐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 큰 프로젝트를 마친 소감은 어떤가.
"촬영을 하면서 감정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상황이 많았다. 진짜 많이 힘들었다. 날씨가 엄청 덥기도 했고 사실 혼도 조금 났다.(웃음)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내 29살 때의 기억이 보이니까 마음이 먹먹하더라. 인생에서 기억될 한 장면을 거쳤다고 생각한다."
- 어떤 지적을 받았나.
"대형 버스를 직접 운전해야 해서 면허증을 취득했다. 연습을 정말 많이 했는데 촬영할 때 긴장이 되니까 시동이 자꾸 꺼지더라. 꺼지면 다시 처음부터 찍어야 하는데 보조 출연자 분들이 엄청 많은 신이었다. 나도 많이 예민했고 감독님께서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순간 몸이 굳어버렸던 것 같다."
-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나.
"일단 영화에서 연주가 어떤 인물인지 전체적인 견해를 많이 들었고, 사투리 연습부터 운전, 스쿼트 연습 등 사전 준비를 했다. 운동까지 시키시더라. 찰영 한달 전에는 이런 외적인 준비를 했고, 그 후에 대화를 나누면서 감정선을 잡아갔다. 차근차근 하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어렵지는 않았다."
- 실제 성격과는 얼만큼 비슷했나.
"쉴 때 내 모습을 보면 신발 벗고 가죽 점퍼만 옆에 걸어놓은 채 입 벌리고 있다. 영혼이 이탈되는 것처럼.(웃음) 그런 면에서 많이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 많이 고생스럽지 않았나.
"사실 그 땐 '고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보다 연기적인 고민이 더 많았다. 몸이 힘든 것은 집에 가서 느꼈다. 현장에서는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밥차가 오면 밥도 엄청 잘 먹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성격적으로 예민해진 부분은 있는데 할 땐 잘 먹고 잘 찍었다.(웃음)"
- 가장 공들인 장면이 있다면.
"마지막에 재혁(김남길)을 보내는 장면이었다. 울지 말고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주가 갖고 있는 강인함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주도 불안한 사람이지만 그 이상으로 책임감이 크다. 의지했던 재혁의 손을 결국 놓아줘야 하는 그 감정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했다."
- 대부분 김영애·문정희와 호흡을 맞췄다.
"사실 대화에 끼기에는 어려웠다. 정의 언니 같은 경우는 오히려 영화가 끝나고 나서 가까워졌다. 현장에서는 선배님들이 나를 많이 챙겨주는 입장이었다. 연기 실수를 하면 '괜찮아. 다시 해봐. 감독님 냅둬요. 주현이 혼자 해보게 냅둬'라면서 편도 들어 주셨다."
- 기억에 남는 조언도 있나.
"어떤 장면은 테이크가 딱 끝나면 나 스스로 '잘했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선배님들도 똑같이 느끼시더라. '주현아, 잘했어'라고 칭찬을 해주시면 반 자동적으로 '아니에요'라는 대답이 나갔는데 정희 언니가 '아니에요라고 하지마. 잘한건 그냥 감사하다고 받아들이면 돼'라고 다시 말씀해 주시더라. 너무 편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 남자친구였던 김남길은 어땠나.
"사실 선배님을 뵙기 전에 선배님이 나온 전작들을 못 봐서 급하게 검색을 해 봤다. 근데 사진 속 선배님의 이미지와 실제 선배님은 많이 다르다. 굉장히 재혁과 비슷하다. 정 많고 사람들을 잘 챙기신다. 내가 막내니까 내가 제일 성실할 줄 알았는데 선배님이 더 하시더라. 또 주연의 책임감을 많이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